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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서평+독후감)/소설 167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 민음사

빨강은 정열, 피 그리고 이슬람교의 색이다. 빨강은 색은 3요소이기도 하고 자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색이기도 하다. 빨간 물감의 재료인 버밀리온은 기원전 300년 중국에서 이미 '진사'라는 이름을 가진 광물을 이용하여 만들고 있었다. 이슬람교의 혈연을 나타내는 빨간색은 중국을 통해 전달되었고 그들의 문화 역시 페르시아와 더불어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은 오스만 제국의 중심 도시며, 동서의 문물이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그야말로 문화의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문화의 소용돌이 속에 전통과 변화의 바람,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예술가들의 번뇌는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 된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막강한 파워는 주변 나라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 살림

로맨스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던 책. 기대하며 책을 열었지만 책은 기대 이상이었다. 작품은 로맨스이기도 성장 소설이기도 스릴러이기도 했다. 인간의 고독에 다루기도 했고, 인종 차별과 편견에 대한 얘기도 잊지 않았다. 자연과 생태계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남겼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어디 즈음이라고 얘기하는 장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소설의 장르 또한 어느 즈음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작품은 너무 아름답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얼마나 서정적인지 느낄 수 있다. 역자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눈에 선하다. 그리고 해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국 어느 마을의 갯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다. 평생을 야생에서 생활한 동물행동학 박사인 저자는 일흔의 ..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 열린책들

좀머 씨가 실종된 뒤 비로소 그의 이름을 알만큼 그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는 특이한 사람이면서도 무언가와 치열하게 다투는 듯했지만 사람들에게는 그저 특이했을 뿐이고 괜히 관심두지 말아야 할 인물이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는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이야기며, 잠깐잠깐 등장하는 좀머 씨는 등장 비중에 비해 관심을 일으킨다. 제목 덕분에 독자는 좀머 씨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을 듯하다. 독일 이름 '좀머'는 생각보다 평범한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글로 읽은 '좀머'는 책의 내용과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뭐'라고 읽는 느낌이랄까. 우리 주위에는 사람의 관계보다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소위 아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여유가 없는 사람..

(서평) 광개토태왕 담덕 4 : 고구려 천하관 (엄광용) - 새움

광개토태왕의 일대기를 그리는 소설 담덕 4번째의 이야기는 역모가 실패하자 담덕을 해하려 했던 해평과 이를 피해 마동과 함께 물살에 휩쓸려 서해 바다로 떠내려간 담덕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4권은 조금 각색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광개토태왕의 넓은 안목과 세계관을 형성하는 중요한 사건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이야기로 전개되었던 추수와 두충이 담덕과 연이 닿으면서 하나의 스토리로 묶이는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위대한 대왕으로 불리는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의 이야기인 '담덕'은 새움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바다에서 표류하던 마동과 담덕은 어느 상선에 의해 구조된다. 보살핌을 받아 기력을 회복한 둘은 어리지만 훌륭한 무술로 상단의 대행수를 해적으로부터 구하게 된다. 상단과 함께 백제 땅을..

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스) - 열린책들

사실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려면 제대로 해라는 말처럼 무언가를 하게 되면 늘 깊이에 대한 평가는 따라붙는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도 예외 없다. 얼마나 깊어야 깊은 것인지, 굳이 깊이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늘 있다. 최근에는 이를 옹호한다는 듯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도 있지 않는가. 얼마나 탁월해야 하나. 그것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창작의 끝없는 욕구는 필요한 부분이지만 깊이 또한 자신의 그릇만큼 만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4편의 단편 소설로 되어 있다. 얇은 책에 비해서 엄청난 가격을 자랑하지만 짧은 글이 장편 소설만큼의 생각을 주는 글이라 일단 이해하기로 했다. 깊이에의 강요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전형적인 문제점을 드러내고 ..

(서평) 마음을 치료하는 당신의 물망초 식당 (청예) - 팩토리나인

마음을 치유하는 상점을 소재로 다룬 소설은 많다. 얼마 전에 읽은 을 소재로 한 작품이나 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 중에 나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 작품은 이다. 소설은 아니지만 테크닉과 품평의 깊이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따뜻한 스토리를 모두 품고 있는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이 생각나 작품이 비교되어 버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책은 그것과 결이 조금 달랐기 때문에 괜찮지 않았나 싶다. 음식으로 사람을 치유하며 성장하는 요리사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 책은 책나누미님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꽤 유명한 음식점 은 순수 예약제로 운영되는 프라이빗 키친이다. 그곳의 후계자 수업을 받는 문망초는 어머니로부터 미션을 받게 된다. 7명의 편식을 해결하라는 것..

다정한 유전 (강화길) - 아르테

단숨에 읽어낼 만큼 작고 얇은 책이다. 다양한 이야기가 작품 속 작품의 형태를 뗬다가 그것을 얘기하는 인물로 넘어갔다. 그것은 이내 세대를 넘어가기도 했고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인물에 투영되기도 했다. 인생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살아내지만 공통된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작품들 속 느슨한 연결을 이용해 독자의 생각을 파고든다. 빠르게 바뀌는 작품 속에 내용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메시지만 남았다. 당연하지 않은 일들은 누군가의 한 발짝으로 쉽게 무너져 내린다. 작은 시골 마을 그곳은 평생을 이어져 온 작은 마을이었고 사라진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고 그렇게 끝난다. 헛된 꿈을 꾸지 않고 마을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다. 도시의 한 ..

범수 가라사대 (신여랑) - 창비

창비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 20번 는 5학년 따님이 강추하는 책이다. 집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아빠, 이거 재밌어'라고 얘기하며 권해주는 몇 안 되는 책이다. 오래간만에 여유를 부리며 책을 편다. 이 시리즈는 깔끔한 삽화와 더불어 60페이지 안팎의 소설책으로 처음 소설을 접하는 아이들에게 추천할만한 시리즈다. 범수는 중2다. 중2는 외계인과 소통한다는 그 나이기도 하면서 허세를 장착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깊은 사색을 하는 나이의 친구들에게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폄하하는 것이 일상이기도 하다. 질풍노도의 시기이면서 반항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범수는 꽤나 진지하다. 칸트의 데미안을 읽어서 일까 알을 깨고 나온 범수는 칸트처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려 한다. 자신의 밟을 옭아매는 전족 같은 운동화..

안락사회 (나우주) - 북티크

삶의 질을 향상을 향해 우리는 매일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간다. 기술은 발전하고 세상은 풍요로워졌지만 제대로 즐길 새도 없이 또 앞만 보고 나아간다. 아등바등 사는 지금의 시대에서 우스개 소리로 말하던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들어'라는 얘기는 더 이상 농담 같지 않은 얘기가 되어 가고 있다. 먹을 만큼의 식량을 구하곤 남는 시간을 오롯이 쉬었던 선사시대의 인류보다 지금이 더 나은 걸까?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한 2018년을 제외하면 한국은 OECD 내에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매년 13, 000여 명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있다. 하루에 35명이 넘는 사람이 세상과 작별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사망 원인 1위이면서 노년층의 자살도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 사..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 창비

여수와 순천 옆에 붙어 지리산 아래 붙어 있는 구례군. 나에게는 자연드림에서 달걀을 살 때마다 만나는 아주 친근한 곳이기도 하다. 구례에 살던 작가의 아버지는 여순 사건 때 빨갱이로 낙인찍힌 채 살아왔다. 작가 또한 빨갱이의 자식으로 긴 세월을 지내왔다. 4년간의 짧은 사회주의 활동이었지만, 남한에서 용서될 수 없는 사상이었던 시절이었기에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아버지의 죽음은 빨갱이라는 낙인에서 해방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빨갱이의 딸인 작가가 빨갱이 아버지를 놓아주고 진정한 아버지를 만나게 되는 과정이었다. 뭉클하다가도 웃음 짓게 되는 내용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마지막엔 나를 무장 해체시키며 눈물이 찔끔 나게 만들어 버렸다. 아버지의 해방 일지라고 적혀 있지만 이것은 작가의 해방 일지라고도 할 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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