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은 정열, 피 그리고 이슬람교의 색이다. 빨강은 색은 3요소이기도 하고 자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색이기도 하다. 빨간 물감의 재료인 버밀리온은 기원전 300년 중국에서 이미 '진사'라는 이름을 가진 광물을 이용하여 만들고 있었다. 이슬람교의 혈연을 나타내는 빨간색은 중국을 통해 전달되었고 그들의 문화 역시 페르시아와 더불어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은 오스만 제국의 중심 도시며, 동서의 문물이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그야말로 문화의 용광로 같은 곳이었다. 그 속에서 일어나는 문화의 소용돌이 속에 전통과 변화의 바람,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예술가들의 번뇌는 이 작품의 주요 내용이 된다.
16세기 오스만 제국의 막강한 파워는 주변 나라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많은 민족이 모여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고 그것은 오스만 그 자체였다. 여러 문화들은 개개의 문화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오스만 문화라는 그것으로 특징을 드러내 보인다. 이것은 장인 오스만의 말이다.
신이 세상을 내려다보는 모습은 인간이 보는 모습과 사뭇 다르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수많은 사람과 말이 뒤엉킨 전쟁의 모습도 신이 보기엔 두 패거리가 싸움을 하는 모습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아주 오래된 오스만이라는 하나의 개성을 지키기 위해 개개인의 화가들은 그 속에 자신의 기술을 녹여낸다. 그림 속엔 개인의 상상이 드러나면 안 된다. 그것은 합쳐진 하나의 문화에선 어우러지지 못한 하나의 결점이 될 뿐이다. 화풍과 스타일은 전통을 넘어 종교를 무너트리는 행위에 불가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화가는 자신의 스타일을 녹여낸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자신만의 특징을 남긴다. 손으로 그려내는 수많은 그림을 통해 어느 순간 의식하지 않아도 손은 그림을 그려내지만 그것에는 자신만이 가진 무언가가 있다. 오스만의 대가들은 오랜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눈이 멀게 되는데, 그것은 더 이상 상상하지 않고 눈앞에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이 보아온 그리고 그려온 그 자체를 흐트러짐 없이 그릴 수 있는 경지인 것이다.
이 정도의 신념을 가진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가진 4명의 세밀화 가는 술탄의 명을 받은 에니시테의 지시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에니시테는 전체의 그림을 보여주질 않고 각자의 화가에게 특정한 그림을 그릴 것을 주문한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을 맞추면 그림이 완성되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그림이 결합되는 순간 그 그림은 오스만의 것이 아니라 베네치아 화가들의 것이었다. 이에 혼란을 겪은 엘레강스를 살인자는 죽이고 만다.
1권에서 화가들의 혼돈은 신의 시선으로 그리는 것과 개인의 시선으로 그리는 것 사이의 혼란이었다. 그림은 늘 신의 시각으로 그려야 했지만 그것은 어느 누군가의 기억이며 누군지도 알 수 없다. 그것은 이야기에 집중한다. 그것은 술탄의 이야기 일 것이다. 하지만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은 특별한 기억이다. 그림에 그려지는 존재의 영속성을 부여하는 행위다. 서명을 남기는 것은 화가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는 것이다. 이야기가 아닌 각자의 존재에 대한 기억이 된다.
변화를 막을 수는 없다. 베네치아 화가들의 화풍은 그들 자체로 이미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그것을 오스만의 화가들이 모를 리가 없다. 종교와 전통을 지키는 것과 자신의 욕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은 그 시절의 예술가들에게는 가장 큰 고뇌였을 것이다. 그것을 장인 오스만은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술탄의 보물창고에 들어가 범인을 색출하는 작업보다 오래된 그림을 하나라도 더 보려고 했던 모습. 그리고 어느새 바늘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된 모습은 전통을 충분히 가지고 새로운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던 최후의 수단이었는지도 모른다. 보지 못한 것을 그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니까.
살인자도 마찬가지다. 그 또한 변화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가 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술탄이 베네치아 총독에게 보낼 그림이 어설픈 따라쟁이 그림이라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설픈 그림에 대한 선물은 오스만이 더 이상 오스만스럽지 않게 되고 결국 무시당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그 그림을 막아야만 했다.
문화와 역사, 범인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그리고 사랑에 대한 얘기가 담겨 있다. 우물 바닥에 시체의 대화로부터 시작하는 이 책은 단숨에 흥미를 일으키고 카라와 세큐레의 사랑으로 관심을 옮겨가게 만들지만 어느 순간부터 화가들 사이의 관점과 생각을 읽는 재미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름의 밝히지 않는 살인자의 얘기를 곳곳에 넣어 긴장님과 흥미를 유지하고 잡고 말 거야 라는 생각으로 살인자를 찾아낼 즈음에 밝힌 살인자의 얘기에 괜히 감동받는 아이러니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없다. 도시를 떠나가다 죽임을 당하는 마지막 모습에 슬프기까지 하다.
노벨상 수상작들은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따분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많았지만 이 책은 충분히 대중적이다. 발매 한 달 만에 11만 부가 팔린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마치 세밀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문장을 이어가는 작가의 필력에 감탄이 되다가도 조금만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다시 읽어야 하는 불편함은 있었다. 그래서 같은 분량을 지닌 다른 책 보다 읽어내는 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마치 대화를 나누는 듯한 문체와 화가들이 그린 그림에 등장한 개, 말, 어둠, 나무 등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동서양의 문화의 대립각을 세우거나 동양이나 서양의 흔한 설정을 하지 않은 점이 좋았다. 문화는 융화되면서 변화하고 또 정착하고 전통이 되고 한다. 작가는 대립각을 이용한 자극이 아닌 통합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양의 것이든 서양의 것이든 모두 내 것이라고 얘기한 신의 이야기가 그것을 얘기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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