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소설을 추천해 달라고 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던 책. 기대하며 책을 열었지만 책은 기대 이상이었다. 작품은 로맨스이기도 성장 소설이기도 스릴러이기도 했다. 인간의 고독에 다루기도 했고, 인종 차별과 편견에 대한 얘기도 잊지 않았다. 자연과 생태계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남겼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어디 즈음이라고 얘기하는 장소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소설의 장르 또한 어느 즈음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작품은 너무 아름답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얼마나 서정적인지 느낄 수 있다. 역자가 얼마나 고생을 했을지 눈에 선하다. 그리고 해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미국 어느 마을의 갯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다.
평생을 야생에서 생활한 동물행동학 박사인 저자는 일흔의 나이에 이 책을 썼다. 그녀가 평생 동안 자연에서 보아왔던 모습을 디테일하게 녹여냈다. 무언가 멋진 뜻을 가진 문장이거나 스토리의 맥락을 알 수 있는 문장에 밑줄을 긋곤 했는데, 이 책은 문장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서 밑줄을 긋게 된다. 풍경의 묘사는 더없이 서정적이고 그 묘사는 주인공 카야의 마음을 그대로 투영한다. 은유가 너무 좋다.
작품은 어느 시골 마을, 그곳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갯벌 근처 홀로 서 있는 판잣집이 중심이다. 시골의 모습이 변하는 것처럼 작품 또한 아주 천천히 흘러간다. 연표로 속도를 내곤 하지만 글 자체는 더없이 잔잔하다. 마치 휴양지에서 느긋하게 풍경을 만나는 느낌이랄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작가는 논픽션을 작성하던 학자답게 의심 드는 부분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시대의 설정이나 위치의 설정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 또한 자연스레 배치했다. '어떻게 그랬지?'라는 의문이 생기지 않도록 해줘서 그런지 이야기에 더욱 몰두할 수 있었다. 인간의 행동을 자연의 상태에 빗대는 표현 또한 절묘했다. 인간의 본능적인 모습과 학습된 모습의 경계를 체이스와 테이트를 등장시키면서 대조시켰다.
어린 카야를 위해 몰래 도왔던 점핑과 메이블. 그리고 셈을 못하던 카야가 가져온 돈에 웃돈을 얹어 내어 주었던 세라 할머니, 그리고 갯벌 판자촌에 홀로 사는 카야를 쓰레기 취급했던 대부분의 사람들. 인간 군상을 드러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줬다.
갯벌에는 수많은 생물체가 살아가며 자연과 인간의 경계에 서 있다 볼 수 있는 카야의 존재는 인간에게 당하기만 하면서도 결국엔 도움을 여러 사람 덕분에 안정을 찾아갔지만 자신을 배신한 사람은 응징했다. 그것은 수많은 생태학적 지식으로 복선을 깔아 두지만 자연에서 그런 것처럼 그것 또한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사라진다.
다수의 인간에 한 명에서 쏟아내는 작은 공격이 한 사람이 뿜어낸 필살의 공격보다 크기가 작을까?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일까? 많은 생물이 늪에 발자국을 남기지만, 밀물과 썰물이 지나가면 모든 것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간다. 점점 고조되었던 스토리는 어느새 안정을 찾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된다. 카야 마음 또한 그렇게 평안하게 된다.
마지막에 던지는 작가의 메시지에 대한 답은 개인의 몫이다. 인간이 아닌 동물적인 행동에 대한 반응은 자연적인 것인지 인간적이지 못한 것인지에 대해 말이다.
너무 좋았던 작품. 최대한 적게 드러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짧은 후기로 마무리 한다.
'독서 (서평+독후감)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 아이리스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 은행나무 (0) | 2023.02.21 |
---|---|
내 이름은 빨강 (오르한 파묵) - 민음사 (0) | 2023.02.11 |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 열린책들 (0) | 2023.01.08 |
(서평) 광개토태왕 담덕 4 : 고구려 천하관 (엄광용) - 새움 (1) | 2023.01.01 |
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스) - 열린책들 (0) | 2022.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