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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에세이 | 나의 역사 15

문장을 이으려는 똥 고집, 적절하지 않은 예시

이 글 자체도 적절하지 않은 예시가 될 것 같지만, 나는 원래 묘하게 엉뚱하고 묘하게 고집스러운 면이 있는 것 같다. 아내도 다 좋은데 가끔씩 나오는 똥고집에 난감할 때가 있다고 하니 그렇다. 이 묘한 행동은 관종인가 엉뚱함인가는 잘 모르겠지만 특이한 곳에서 이상한 의미를 찾기도 하고 생각과 다른 말들을 뱉어내기도 한다. 지금도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중이지만 인간의 본성이 어디 쉽게 변할까. 첫 번째로 위험에 처했던 곳은 대학교 입학 후, 오리엔테이션이었던가. 자기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다. 원래도 남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을 어려워했던 나에게 강의실을 가득 채운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머리가 하얗게 되었었는데.. 나는 이런이런 성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지낼 수 있도록 하..

취미 : 독서

예전부터 책을 좋아했었던 것 같다. 물론 읽는 행위보다는 책 그 자체가 좋았다. 다양한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모습이나 뒤죽박죽 이어도 멋있어 보였다. 시골이라 뛰어 놀기 바빴던 유년시절에는 그렇게 책과 친하지 않았다. 성향도 이과 체질이라 수학 경시 대회나 과학상자 조립 대회에 참가하는 일이 보통의 일이라 교과서 이외에 책을 잡을 일은 크게 없었다. 유일하게 가장 많이 봤던 책은 형이 부상으로 받은 과학대백과사전으로 엄청 두꺼운 책이었다. 그곳에는 이런저런 과학에 대한 얘기가 들어 있었고 우주에 대한 호기심은 그때부터 생겼던 것 같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많은 정보를 만나는 지금의 아이들에 비하면 한참 늦게 접한 것 같다. 당시에는 읽음으로써 익히는 것보다 경험하면서 더 많이 익혔던 것 같다. 그 시기..

당신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좌우명[座右銘] 은 늘 가까이 두고 스스로 경계하거나 가르침으로 삼는 말 어린 시절 나는 꿈과 함께 좌우명을 세우라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는 늘 장래희망에 대한 글짓기나 그림을 그렸었는데 고학년이 되어서는 자신의 좌우명을 세워보자는 시간을 가지곤 했었다. 그때도 지금도 가장 흔한 좌우명은 '하면 된다'가 아닐까 싶다. 조금 다른 말로는 '포기하지 마라' 정도가 있다. 초등학교 때 예시로 든 좌우명은 '최선을 다한 후에 결과를 기다리자'라는 '진인사대천명'을 풀어놓은 말이라 든 지 '서 있는 천재보다 달리는 바보가 낫다.'라든지 노력을 추구하는 좌우명들이 많았다. 학창 시절이 이 아무래도 공부에 열중하라는 지도 교사의 생각이기도 했고 그 당시에는 노력하면 뭐든 이뤄질 것 같은 생각도 ..

거주지의 불안함

성인이 되기 전, 4번 정도의 이사를 했던 것 같다. 대부분 동네에서 동네로 이동하는 수준이었고 단 한 번만 지역을 옮겼다. 적지 않은 횟수지만 그렇게 기억날만한 이사의 기억은 없다. 시골이었기도 했고 전세나 월세의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집의 안정감은 나에게 굉장히 소중한 기억이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고 나서도 첫 번째 목표는 언제나 집이었다. 노는 것을 딱히 즐기지 않는 성격이라 취미로 했던 사진에 대한 지출 이외에는 크게 없었던 것 같다. 외모에도 크게 취미가 없었다. 연애에 대한 생각도 크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저 기술에 대한 욕심과 전자기기에 대한 욕심 두 가지뿐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 매달 부어주시는 적금 이외에도 추가적인 수입이나 남는 돈은 주식을 샀던 것 같다. 그때 샀던 삼성전..

취미 : 인라인

대학원을 다닐 때에 인라인은 한참 붐이 일었다. 동네마다 인라인 동호회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공원에는 인라인 트랙도 만들어졌다. 강의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는 형이 가져온 FILA 인라인을 돌려 신어가며 인라인을 즐겼다. 한참 재미를 붙이니 아무래도 인라인을 장만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롤러블레이드의 에어로 9를 샀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다 같이 인라인을 즐기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라이딩만 하는 것을 거부했던 우리는 슬라럼이라는 것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슬라럼은 콘을 세워두고 그 사이를 지나가며 여러 가지 기술을 구사하는 인라인 종목 중에 하나다. 피시, 스네이크, 크로스, 백크로스를 지나서 여러 가지 기술들을 익혔다. 슬라럼의 꽃이라는 '크레이지'를 완벽하게 익히지 못한 채 우리는 졸업을 하게 되..

니 취미 내 취미 : 바느질과 뜨개질

아내는 손재주가 좋다. 처제가 자기는 똥 손이라며 손재주 유전자가 전부 언니에게 갔다며 투덜거리기도 한다. 그림을 잘 그렸지만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서 내가 나중에 나이 들면 미대 보내준다고 종종 얘기하곤 했었다. 그 외에도 손으로 하는 것은 곧잘 했다. 미싱으로 이것저것을 만들기도 했고 손뜨개로 옷이나 장갑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결혼 전에는 웹디도 잘했고 원단을 다루는 회사여서 원단을 정리하는 것과 더불어 바느질도 곧잘 했다. 육아에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있지 못하는 지금이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나는 그런 것들을 같이 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때도 잘하고 싶은 것이 많았으면 했던 나는 아내가 하던 취미를 위해서 바느질 도구를 사고 이래저래 열심히 해봤던 것 같다. 퇴근을 하고 기숙사 구석..

나, 이대로 괜찮을까?

나는 시골 어느 가난했던 집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늘 못해 준 것들 때문에 미안해 하지만 사실 나는 부족함 없이 자랐다고 느끼고 있다. 누나와 형들이 워낙 똑똑해서 자식들 중에서는 아린 자식이 되었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그렇게 부족함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조금 다른 길을 갔던 나는 그 격차를 줄여 보이고 싶어서 부단히 애쓰며 살았던 것 같다. 수능 점수가 꽤 많이 낮게 나왔지만 멈추고 싶지 않아 재수를 하지 않았고 커리어를 멈추고 싶지 않아서 전문 연구요원으로 군을 마쳤다. 포기할 때까지 실패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과 내가 하는 일에 실패는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2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했던 것 같다. 사수의 빠른 퇴사는 나에게는 더 중요한 업무를 맡을 수 있는 찬스였고 그렇게 나는 주요한 일들을 해결하..

취미 : 사진

취업을 한 그 해에는 회사에서 동호회 문화를 권장하는 트렌드가 있어서 회사에서도 동호회 가입을 권장했다. 처음에는 주된 취미였던 인라인 동호회를 찾았지만 그렇게 열성적인 라이더는 없었다. 그렇다고 탁구 동호회도 마땅치 않았다. 그런 와중에 카메라 동호회에 친한 형이 가입을 권유하여 가입하게 되었다. 회장이었던 형이 이직을 하고 나서는 잠깐 회사를 탈출할 때까지 7년 정도를 회사 사진 동호회를 이끌었던 것 같다. 사진 동호회는 다른 동호회와 다르게 조금 특수성이 있었다. 회사 행사 사진을 서포트(서포트라고 하기엔 주력이었지만)하는 일이 많았다. 대신에 다른 동호회와 다르게 개인 활동을 인정해 주었다. 파주에서 지내던 4년 정도는 파주 포토라는 사회 동호회에서도 활동했었다. 사진 동호회에는 주력 멤버 4-5..

어떤 차(茶)를 좋아하세요?

학교 뒤에 살았던 나는 곧잘 학교에 갔다. 운동장은 시골에서 꽤나 좋은 놀이터이며, 교무실은 신기한 것이 많은 공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교무실에서 자주 갔었던 것 같다. 도시로 이사하고 나서부터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시골 학교여서 그런지 주말에 당직을 하시는 선생님들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하나의 효과였는지도 모르겠다. 8살 때. 그날도 선생님을 도와드렸다. (실제로 짐이 되었는지, 도움이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무슨 연유였는지 선생님은 커피를 타서 주셨다. 꽤나 달콤했던 기억인 것으로 보아 설탕을 엄청 타 주셨던 것 같다. 나는 신문물을 접한 즐거움으로 집에서 자랑을 했지만 이내 야단을 맞고 말았다. 커피를 내가 떼를 써서 얻어 마신 것도 아닌데, 마치 독약에 기웃거린 사람처럼 신나게 혼이 났다. 그..

퇴사 인사

현장의 주먹구구식의 업무에 매일매일이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리딩을 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은둔형 개발팀 스타일인 나에게 팀장이라는 직책은 매일이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래도 좋은 리더가 되고 싶어서 참 많은 공부를 했지만 기본적으로 선택 장애가 있어서 팀장 실격 사유가 참 많았던 것 같다. 그래도 홀로 고공 분투하던 시절이었고 잘 따라주던 팀원들 덕분에 잘 해낼 수 있었다. 그런 팀장의 무게를 벗어날 일이 생겨 이렇게 이탈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부서의 이동뿐만 아니라 지역적인 이동이 있었기 때문에 팀원들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팀을 옮기고 초반에는 그동안에 생긴 문제점을 문의하는 통화가 많았지만 그 회수를 점점 줄어갔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나니 가끔씩 연락 오는 전화는 조금씩 무섭다. 열의 아..

취미 : 탁구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시골의 초등학교. 변변찮은 놀이가 없으면서도 모든 것이 놀이였던 시절이었다. 그중에도 사라진 유치원 내부에 설치되어 있던 탁구대는 늘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놀이였다. 학교를 지키던 주사 아저씨가 열어줘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기회가 닿을 때면 동네 형들이랑 (가끔은 아저씨도 함께) 열정적으로 탁구를 쳤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동아리를 찾아보던 중에 탁구가 눈에 띄어 가입했다. 바로 옆에 우슈 동아리의 에이스로 보이는 분이 시범을 보이고 있었는데.. 너무 멋져서 내가 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어린 날의 기억 속에 나는 탁구를 꽤 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동아리의 선배들은 나름 제대로 배운 사람들이었고 한 기수 누나들에게 조차도 비빌 수 없는 실력에 나의 상태를 알아차..

(에세이) 고집

엄마에게 야단을 맞으면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딸아이의 행동을 보며 결혼 초기에 부부 싸움을 할 때의 나의 모습이 생각나곤 한다. 그런 나의 모습이 많이 답답했던 아내는 딸아이의 행동에 대해서도 여전히 답답해하며 고집부린다고 한다. 나는 그런 상황이 되면 왜 말을 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게 될까? 내가 9살 정도의 일이었던 것 같다. 시골에서 놀이는 산으로 들로 뛰어노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놀이에 필요한 것들은 언제나 자연에서 구했다. 그 중 하나는 새총이라고 불리는 물건이었다. 톱과 낫을 들고 시냇가에 있는 이름 모를 나무의 ‘Y’ 모양을 하고 있는 부분을 잘라 기저귀 용 노란 고무줄을 엮어 만드는데,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총을 하나씩 가지곤 학교 소각장으로 가서 빈 병이나 깡통을 ..

(에세이) 나는 43세에 은퇴를 꿈꾼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에는 마흔이 되면 다른 일을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야 그럴 것이 아직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체력이 남아 있고 배워서 또 나아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흔이 되면 나는 무엇을 할까? 라며 상상도 종종 했었다. 글을 적고 싶기도 했었고 그림도 잘 그리고 싶었다. 한 때는 사진작가도 되려 했다. 무언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생각이 즐거웠다. 물론 지금의 일도 재미있다. 누나나 형이 모두 의대를 갈 때에도 나는 당당하게 제어공학을 선택했다. 수능을 엄청 망쳤을 때에도 모두 재수를 권했지만 나는 그대로 집 근처 대학에 장학금 받으며 들어갔다. 한 해 더 노력했으면 더 좋은 대학에서 더 깊은 공부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면접도 엉망진창이었는데, 어..

(에세이) 나의 세월은 조금 긴 편이다.

나는 정말 깡촌이라고 불일 만한 곳에서 태어났다. 조금 더 정확히 얘기하면 사천시와 하동군의 경계가 만나는 부근이다. 하루에 버스가 2대 ~ 4대 정도 다녔다. 동네에서 같이 놀던 동생은 나와 흙놀이를 하다가도 버스만 나타나면 버스를 구경하러 달려가곤 했다. 30 ~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많이 다니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예전보다 나아진 점이 있다면 집집마다 자동차가 예전보다는 많아졌다는 것이다. 아내는 내가 TV를 보기 위해서 산 중턱에 있는 안테나를 조절하러 산을 탔다는 말을 하면 다른 세상 얘기를 듣는 기분이라고 한다. 나는 회사 대표님과 얘기해도 장모님과 얘기가 통할만큼 그분들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다. 젊은 사람과 있으면 할 얘기가 잘 없을 수 있지만 나는 그분들의 어린 시..

(에세이) 나의 역사 기록하기

10월 글쓰기를 한참 연습하려고 했는데 밀려드는 서평에 잠시 주춤했다. 사실 많이 읽어야 표현이 더 풍부해질 것 같아서 좀 닥치는 대로 읽었다. 책 쓰기는 20대부터 버킷리스트에 담겨 있었지만 40대가 되어서야 시작하게 되었다. N 잡을 핑계 삼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두드러지게 많이... 사실 핑계도 있다. 지난해까지는 나는 정말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스템이 변하고 있는 회사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가를 몸소 체험했다. 그런 팀장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실무도 하고 관리도 하고 보고도 해야 하는 참 다이내믹한 자리였다. 출근하면 회의에 끌려 다니다가 짬이 나면 이런저런 보고서, 계획서 등등 각종 문서를 만들기 바빴다. 현장에서 팀원들에게 연락이라도 오면 프로그램을 펼쳐 열고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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