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에세이 | 나의 역사

(에세이) 고집

야곰야곰+책벌레 2022. 4. 1. 11:47
반응형

  엄마에게 야단을 맞으면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딸아이의 행동을 보며 결혼 초기에 부부 싸움을 할 때의 나의 모습이 생각나곤 한다. 그런 나의 모습이 많이 답답했던 아내는 딸아이의 행동에 대해서도 여전히 답답해하며 고집부린다고 한다. 나는 그런 상황이 되면 왜 말을 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게 될까?

  내가 9살 정도의 일이었던 것 같다. 시골에서 놀이는 산으로 들로 뛰어노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놀이에 필요한 것들은 언제나 자연에서 구했다. 그 중 하나는 새총이라고 불리는 물건이었다. 톱과 낫을 들고 시냇가에 있는 이름 모를 나무의 ‘Y’ 모양을 하고 있는 부분을 잘라 기저귀 용 노란 고무줄을 엮어 만드는데,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새총을 하나씩 가지곤 학교 소각장으로 가서 빈 병이나 깡통을 올려두고 사격 연습을 했다. 연습은 땅에서 골라 주운 돌로 하고 실제로 사냥을 나갈 때에는 굵은 철사를 잘라 따로 가져 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위험한 행동이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새총에 능숙한 동네 형들이었다. 우리는 그저 무리에 끼여 놀이를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사건이 있던 날도 여느 날처럼 동네 형 둘과 동생 한 명과 함께 산을 함께 돌아다니고 있었다. 산을 헤치고 내려오는 길에 멀리서 오는 버스를 발견하곤 버스를 향해서 쏘아보자고 한 명의 형이 제안을 했다. 그냥 해 본 말이었고, 아무도 버스 창문이 깨질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 함께 새총을 쏘자 버스 창문 하나가 와장창 깨졌다. 버스는 섰고 우리는 얼음이 되었다. 버스 기사 아저씨도 놀랐겠지만 어느 아주머니 한 명이 내려 엄청난 소리로 호통을 쳤다. 내 기억에 그 아주머니는 옆에 서 있던 형의 어머니였다.

 

  누가 쏘았냐고 다짜고짜 화를 내는 어른들 사이에서 형들과 동생은 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흙 가루를 쏘았다고 했다. ‘쏘았다’ 라는 말에 옳거니 했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나를 범인으로 몰아세우는 아주머니가 보였고 나는 그냥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것 같다. 경찰서로 데리고 가야 한다느니 그 말만 기억이 난다. 9살의 짧은 지식으로도 가루로 버스 창문이 깨질 리가 없었다고 생각했는지 옆에 동생에게 물었다. 그제야 자기는 구슬 만한 흙더미를 쏘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두 형들도 의심이 안 가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정직함’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중학교 글짓기 시간에도 이 일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쁜 것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정직하지 말아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 뒤로는 솔직해야 할 때 말을 거두는 버릇이 생긴 것 같다.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진실을 지키면서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무의식 중에 반응하는 것 같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완전히 납득할 수 없으면 말이 잘 나오질 않는 것 같다.

  지금도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는다. 거짓말을 입으로 내지 않으려는 마음속의 깊은 고뇌의 표현이기도 하다. 아내는 그런 내가 여전히 답답해 하지만 그런 일을 겪고도 거짓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주머니는 호들갑을 떨며 우리 어머니에게도 얘기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나는 야단을 맞은 기억이 없다. 친구들도 무서워하던 분인데도 잠깐 겁을 먹었지만 그렇게 지나갔고 어머니께서 일을 어떻게 처리하셨는지 도 모른다. 그런 기억이 남을 속여 내 안위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까지는 이어지지 않은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기억이 없는 딸아이는 그저 아빠를 보고 배운 걸까? 아빠가 자존심이 강해서 사과를 잘 못한다고 생각할 수 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옛날이야기를 해주며 고집에 대한 얘기를 나눠 봐야겠다..

반응형

'글쓰기 + > 에세이 | 나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니 취미 내 취미 : 바느질과 뜨개질  (0) 2022.05.25
취미 : 사진  (0) 2022.05.16
어떤 차(茶)를 좋아하세요?  (0) 2022.05.03
퇴사 인사  (0) 2022.04.30
취미 : 탁구  (0) 2022.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