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 열린책들

야곰야곰+책벌레 2023. 1. 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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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머 씨가 실종된 뒤 비로소 그의 이름을 알만큼 그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그는 특이한 사람이면서도 무언가와 치열하게 다투는 듯했지만 사람들에게는 그저 특이했을 뿐이고 괜히 관심두지 말아야 할 인물이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는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이야기며, 잠깐잠깐 등장하는 좀머 씨는 등장 비중에 비해 관심을 일으킨다. 제목 덕분에 독자는 좀머 씨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을 듯하다.

  독일 이름 '좀머'는 생각보다 평범한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글로 읽은 '좀머'는 책의 내용과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뭐'라고 읽는 느낌이랄까. 우리 주위에는 사람의 관계보다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소위 아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죽겠어요.'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 말을 싫어한다. 틀에 박힌 빈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가 우박이 쏟아지는 날 걷고 있는 좀머 씨에게 그런 말을 했다. 진정으로 걱정한 나머지 나온 말이 평소에 '빈 말'이라고 냉소했던 그 말이었다. 저자는 우리가 소외된 사람에게 대해 관심이 있더라도 결국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그런 것들이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좀머 씨의 대답은 벌어진 사이를 매울 수 없음인지, 자신이 넘어야 할 시련이라고 생각했던 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어려운 얘기는 잠시 접어두고 보더라도 이 책은 너무 잘 쓰인 작품이다. 아이 특유의 엉뚱함과 색다른 시선을 가졌음은 물론이고 문장이 말끔하고 경쾌하다. 그리고 귀엽기까지 하다.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말을 걸어줘서 황홀해하는 모습과 함께 가자는 말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동. 그 애를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유난히 맑은 하늘에 감사했지만 약속이 취소되어 버리자 '풍경이 굳어 버렸다''라는 표현은 너무 좋았다.

  피아노 레슨을 받다고 일어난 오해. 그 오해로 인한 세상에 대한 분노. 내가 세상을 버림으로써 세상에 일격을 가하겠다는 어린 날의 위험한 심리. 그리고 그 통쾌함을 느낄 나 자신이 세상에 없음을 알게 되는 깨달음. 그때 나타나는 좀머 씨.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 혼자만의 신음을 그리고 죽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빵을 먹는 모습. 홀가분해지고 싶은 갈망과 절망 속에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좀머 씨는 결국 호수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자신의 생을 마감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며 아무것도 못하는 주인공의 반응에 대해 나눔을 해야 할 것 같지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한 명의 사람이 사라졌지만 모두가 잠깐의 관심을 보이는 척할 뿐 누구도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쥐스킨트는 훌륭한 작품을 써냈지만 많은 상을 거부하고 은둔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런 그는 소설 속에 좀머 씨에 자신을 투영하고 있는 걸까? 평소엔 관심도 없다가 작품 하나 괜찮다고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그가 하고 싶은 말이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일까. 그렇게 관심이 시들면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것이 또 자신의 모습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자신을 담아낸 건 아닐까.

  조금 더 확장해 보면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사회 문제에 대해 뉴스에서 떠들어 댈 때만 잠깐의 관심을 가지고 쑥덕대다 이내 기억에서 사라지는 현재의 모습을 얘기하는 건 아닐까. 뭘 해야 하나 생각이 들다가도 쉬이 움직이지 않는 몸은 주인공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세상이 뭐 같다고 욕하고 있지만 더 힘든 사람에 대해서는 조금 신경 쓰질 않고 있는 게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좀머 씨가 부단히 움직이는 그 모습은 사회 약자가 세상에 대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닐까. 그 모습이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이는 것이 아닐까.

  너무 밝고 경쾌한 삽화와 문장이 쇠덩이 같이 무거울 것 같은 질문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게 만들지만 문득문득 밀려오는 감정은 묵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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