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서평) 대지와의 키스 (케이시) - 플랜비

야곰야곰+책벌레 2023. 2. 25.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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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릭터의 설정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의 의도인지 알 수 없는 중2병과 같은 주인공의 행동과 문장들, 그리고 필요 이상으로 나열되는 글들에서 느껴지는 불협화음이 읽기 어려운 장르가 아님에도 읽기 어려운 상황을 종종 만들어내곤 했다. 약간은 공감할 수 없는 남성상에서 지속적인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처음엔 그저 괴짜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했나 싶었다. 그렇게만 판단하자니 작품에 대한 실망이 들었다. 분명 반전은 있을 거라며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어느 남성의 고독과 철학을 얘기하려다 불현듯 미스터리로 전환하는 이 작품은 케이시 작가님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0125>라는 작품으로 처음 만난 저자는 예쁘고 귀여운 이야기를 잘 써내는 작가로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작품에서도 작가는 애정에 관한 부분이라든지 여성이 주도한 장면 등을 묘사할 때에는 여전히 좋은 문장을 보여줬다. 어떤 상황에서로 감정선을 잡아가는 걸 잘하는 작가구나라는 느낌이 있다.

 이전 글을 너무 재밌게 읽어 장르 전환에 주관적인 감정이 투영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치밀함도 양들의 침묵의 썸뜩한 분위기도 없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우 작가님의 '레지스탕스'를 닮아 있지만 그 묵직함이 아쉬웠다.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탓일까. 글 속에 녹아있는 작가의 노력이 전달되지 않는다.

  문제는 남자 주인공에 대한 설정이라고 할까. 어디까지 내용을 드러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느낀 점은 작가가 그려놓은 큰 세계와 반전을 이해하는 노력을 얼마나 많은 독자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약간의 걱정이랄까. 남자는 굉장히 철학적이려고 애를 쓰지만 중2병에 걸린듯 허세에 취한 모습을 계속 보여 준다. 저자는 왜 이렇게까지 묘사할까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다. 의도가 없다고 생각하기엔 너무 허술한 느낌마저 들었다.

  책을 다 덮고 나서야 주인공은 정신분열 상태였던 게 아닌가 싶었다. 어디선가 한 번씩 들었던 수많은 문장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이 뭔가 싶었지만, 정신분열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주인공의 일관적인 허세를 읽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싶었다. 

  사실 이 책은 대단한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책을 덮는 순간에 책을 둘러싼 세계가 다른 세계였음을 인지하게 된다. 책 속의 세상은 주인공이 그려낸 공상의 세상이었을 뿐이며 어떻게 보면 정신 분열의 세계였다. 위험 천만한 세상에 대한 투쟁은 내면의 처절한 저항이었을까. 대단한 반전에 대한 메시지가 여전히 전달되지 않음은 아쉬움이 있긴 하다.

  사건 진술서로 밝혀지는 본래의 사건을 읽어가며, '뭔 소리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면 남자 주인공에서 그려진 세상과 사건이 그만의 세상이 아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반전은 대단히 성공했지만 흥미롭다고 하기엔 여기저기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야기보다 플롯과 반전에 너무 많은 힘을 준 탓일까. 큰 줄거리보다 중간중간에 나오는 짧은 대화, 씬의 전환에서 오히려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덮고 난 뒤에야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줄거리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구성을 하고 있다. 그게 독자에게 좋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고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다. 일단 책을 펼쳤다면 끝까지 읽어보고 판단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한다. 행여 마지막까지 그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더라도 주인공이 쉴 새 없이 던지는 명언들과 지식 대방출 덕분에 소설 이외에 많은 것들을 얻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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