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 20번 <범수 가라사대>는 5학년 따님이 강추하는 책이다. 집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아빠, 이거 재밌어'라고 얘기하며 권해주는 몇 안 되는 책이다. 오래간만에 여유를 부리며 책을 편다. 이 시리즈는 깔끔한 삽화와 더불어 60페이지 안팎의 소설책으로 처음 소설을 접하는 아이들에게 추천할만한 시리즈다.
범수는 중2다. 중2는 외계인과 소통한다는 그 나이기도 하면서 허세를 장착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깊은 사색을 하는 나이의 친구들에게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폄하하는 것이 일상이기도 하다. 질풍노도의 시기이면서 반항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범수는 꽤나 진지하다.
칸트의 데미안을 읽어서 일까 알을 깨고 나온 범수는 칸트처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려 한다. 자신의 밟을 옭아매는 전족 같은 운동화를 벗고 슬리퍼를 신고 등교를 했다. 범수 엄마는 그런 범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범수 엄마 친구들은 사춘기에 허세가 들었다며 걱정하기도 했다. 외출증을 끊어 집에 와서 양치를 하며 가는 범수가 이해가지 않았다. 범수에게는 하나의 산책 길이었다.
복장 검열하는 선생님께 슬리퍼는 큰 이슈가 되지 못했는지, 범수는 슬리퍼를 계속해서 신고 다녔다. 그리고 엄마 친구 연희의 결혼식에 축사를 맞았던 범수는 엄마와 자신의 관계가 왜 틀어졌는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엄마는 왜 그렇게 구속을 원하는지 고민스러웠다. '군종 속의 고독', '뼛속까지 스미는 고독' 같은 단어는 범수가 사용하니 멋있어 보이면서도 왠지 웃음이 나기도 했다.
범수의 축사. 결혼은 어느 순간 구속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운동화가 갑자기 그런 느낌을 주듯 그러다 보면 '고독'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 땐 혼자만의 산책이 필요한데 그것이 슬리퍼든 쓰레빠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결혼에 대해 알아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연희 이모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라는 말로 결혼식 축사를 하는 범수가 너무 멋져 보이기도 했다.
허세 없는 사색이 어딨을까?라는 작가의 마지막 질문 또한 좋았다. 자존감은 사색의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뇌가 다시 정렬하는 사춘기. 허세는 어쩌면 중요한 건지 모르겠다. 쓸데없는 사색은 없을 거다. 그들이 우주와 대화를 하고 있다고 해도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내가 범수 엄마가 되어도 범수 엄마 같은 마음이겠지만 범수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딸내미의 강추 작품. '범수 가라사대' 너무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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