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어낼 만큼 작고 얇은 책이다. 다양한 이야기가 작품 속 작품의 형태를 뗬다가 그것을 얘기하는 인물로 넘어갔다. 그것은 이내 세대를 넘어가기도 했고 서로 다르지만 비슷한 인물에 투영되기도 했다. 인생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살아내지만 공통된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작품들 속 느슨한 연결을 이용해 독자의 생각을 파고든다. 빠르게 바뀌는 작품 속에 내용은 기억에서 사라지고 메시지만 남았다.
당연하지 않은 일들은 누군가의 한 발짝으로 쉽게 무너져 내린다. 작은 시골 마을 <해인> 그곳은 평생을 이어져 온 작은 마을이었고 사라진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고 그렇게 끝난다. 헛된 꿈을 꾸지 않고 마을 속에서 성실하게 살아내는 것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다정한 유전>이다.
도시의 한 복판에 위치한 어느 집. 그곳에서는 젊은 시절 아이를 가져 꿈을 포기하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있다. 그곳을 벗어나지 않고 아이를 제대로 키워내는 일. 아이를 너무 만나고 싶었고 아이와 함께 한 시간이 너무 좋았던 사람이었지만 그곳에서는 비어있는 마음처럼 공허함이 있다. 아이는 그 구멍을 자신이 낸 것 같아 마음이 저릿하다.
어떻게든 마을을 떠나고 싶었던 민영.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진영. 두 사람의 사이의 대비는 극명했지만 진영 역시 마을을 떠나고 싶었다. 백일장 출전 기회를 두고 벌어진 작품 경쟁에서 소설은 자연스레 새로운 스토리로 넘어가곤 했다. 또 그렇게 여러 아픔을 지닌 여성들이 등장한다. 작품 속으로 들어갔다가 현실로 나왔다가 다른 시점으로 변했다가 하면서 복잡해지는 머리는 '이게 누구 이야기였지?'라고 헷갈려 버린다. 하지만 그 질문을 놓아버렸을 때 비로소 편히 읽을 수 있었다.
짤막하게 나눠진 작품 속에 묘하게 연결된 이야기들. 여러 개의 이야기이면서도 하나의 이야기였다.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조각조각 생각이 나지만 설명하려고 하면 힘들다. 그저 알을 깨고 나오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또한 쉽게 변하는 일이며 자신을 가두려 하지 않은 마음만 있다면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한 시대, 작은 공간의 <다정한 유전>은 이렇게 퍼져 나가더라도 여전히 다정한 것임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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