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안락사회 (나우주) - 북티크

야곰야곰+책벌레 2022. 10. 2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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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질을 향상을 향해 우리는 매일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간다. 기술은 발전하고 세상은 풍요로워졌지만 제대로 즐길 새도 없이 또 앞만 보고 나아간다. 아등바등 사는 지금의 시대에서 우스개 소리로 말하던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힘들어'라는 얘기는 더 이상 농담 같지 않은 얘기가 되어 가고 있다. 먹을 만큼의 식량을 구하곤 남는 시간을 오롯이 쉬었던 선사시대의 인류보다 지금이 더 나은 걸까?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한 2018년을 제외하면 한국은 OECD 내에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다. 매년 13, 000여 명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있다. 하루에 35명이 넘는 사람이 세상과 작별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사망 원인 1위이면서 노년층의 자살도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 사회는 '안락한 사회'인지 '안락사하는 사회'인지 모를 지경이다. 평범하게 사는 내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모든 삶은 소중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사회 속에서 결핍을 느끼며 사람이라도 삶에 대한 그들의 치열함은 존중받아야 한다. 치열함의 결과가 '안락사'가 아닌 '안락함'이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감정이 전해진다.

  '안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작가의 친필로 적힌 나에게 묻는 문장은 소설 속에 등장할 그런 아픔으로부터 해방된 삶이었으면 좋겠단 바람이었을까. 유난스럽게 시큰한 감정을 느끼며 첫 장을 넘겼다.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는 엄마, 경제적 자유를 가지고 싶었던 지난날을 가진 교사, 취준생, 끗발 날리고 싶었던 남자, 철거민, 유기견, 번 아웃되어버린 삶. 8편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비추고 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이 마치 위선이라고 느낄 만큼 위태로운 감정들이 적혀 있다. 그런 삶을 살지 않았던 내가 어떤 위로의 말을 남기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다. '그랬구나' 이상의 공감이 어려운 아픈 이야기들이었다.

  자칫하면 우울함이 독자를 집어삼킬 수도 있었을 텐데, 작가는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감정을 미화하지도 않고 다듬지도 않은 채 문장 하나하나를 독자의 가슴에 꼽아댄다. 그 격한 문장은 오히려 감정적이지 않고 건조한 느낌마저 든다. 수건을 입에 물고 악을 한번 쓴 뒤 '뭐. 그렇단 얘기야'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쿨함이 왜 전달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작품 속 우울함에 빠져들지 않고 읽어낼 수 있었다.

  소설이지만 줄거리를 논할 필요는 없다. 바로 옆 사람의 이야기 일지도 모르니까. 세상은 평범함의 기준을 끊임없이 끌어올리면서 왜 평범하게 살지 못하냐며 채근한다. 평범하지 못함을 게으르다거나 능력이 없다고 비난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플러스보다 마이너스가 많은 삶이 있을 수 있다. 지쳐 주저앉기라도 하면 근성 없다고 손가락질한다. 그들의 삶과 기억은 해마의 특정 부분을 잘라내고 싶을 정도로 절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용은 개천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대치동에서 나는 거다', '영재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뒷배가 있고 없음은 인성에도 영향을 준다.

  '아파서 쉬러 왔다'라고 당당히 말하고 '미쳐 있을 때가 좋았지'라며 푸념하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아주머니의 모습은 이제는 흔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감정을 가진 채로 살아가기엔 너무 힘든 세상이다. 감정은 이제 인간이 살아가는데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우리의 DNA가 어떻게 움직일까? 실제로 사이코패스는 인류 진화의 방향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성적이면서도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감정적 치우침은 생존에 불리한 것이다. 우리는 인조인간을 만들고 있지만 인조인간이 만들어지기 전에 감정을 잃어버린 인간이 먼저 될지도 모르겠다.

  측은지심이라 했던가? 유희나 감동의 도서들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하는 것은 세상이 그만큼 각박하다는 반증일지 모른다. 그런 시대에 당당히 마주하는 이 책은 특별함이 있다. '나 좀 아픈데?'라고 무덤덤하게 전해지는 메시지에 '그랬구나' 이상의 위로도 할 수 없었던 작품. 아프지만 손 내밀어 달라고 얘기하지 않는 작품. 나의 치열함에 침을 뱉지 말라고 하는 작품. 너무나 감정적이었지만, 너무나 이성적이었던 묘한 작품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담긴 해설 글은 불필요해 보였다. 해설하지 않아도 된다. 읽으면서 느끼면 된다. 느끼는 것을 모두 표현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필요한 이가 있다면 그 또한 나쁘지는 않겠지만, 미안하게도 나에게는 감동 파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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