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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182

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 검은숲

아름다운 미스터리. 내가 읽은 미스터리 책 중에서 이런 장르가 있었던가. 64의 섬세하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긴장감을 느끼며 요코야마 히데오라는 작가의 대단함을 느꼈었다. 그런 와중에 '빛의 현관만큼 좋지는 않네요'는 후기는 눈에 확 들어왔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64가 평가절하를 받는지 궁금했다. 설정은 한 인물을 찾는 과정을 그렸지만 그 속에서 그려지는 주인공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고뇌는 작가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던 것일까. 여행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무려 7년의 세월을 들여 다듬었다. 스토리는 동일하지만 원래의 문장은 10 퍼센트도 남지 않았다는 그의 말에 작가도 자신에게 필요한 그 한 작품을 위해 피나게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주인공 아오세는 건축가다. 댐에서 틀장이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 건축 현..

레지스탕스 (이우) - 몽상가들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의 인상은 서부의 총잡이들과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 일 거라고 생각했다. 흥미를 위한 소설일 것이라고 착각한 것에는 북커버의 역할도 있었다. 한동안 다른 책들 사이에 끼여 있었고 지금에서야 페이지를 열어보게 되었다. 책을 덮고 나서야 표지의 그림이 더욱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복잡한 감정이 들게 만드는 초상화는 어째서인지 깊은 슬픔이 있었다. 문학을 책으로만 배운 작가의 오랜 열정이 가득한 이야기에 여운이 돌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이 책은 지금에 유행하는 트렌드에서 꽤 많이 벗어나 있다. 오히려 고전에 가까운 느낌을 받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등과 같은 철학적 질문과 함께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사회 저항의 문장마저 담고 있다. 그 배경이 학교 안에..

소년이 온다 (한강) - 창비

어느 책에서 소년이 하늘을 나는 듯한 멋진 문장을 만난 나는 그렇게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제목과 글귀는 세월호와 연관되었나 싶었지만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추천 도서에서 이 책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제주 4.3을 담은 로 한강 작가의 스타일을 알고 있는 나는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쉽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마치 죽은 정대의 혼을 시점으로 한 듯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은 무언가를 초월한 존재가의 무덤덤한 혼잣말인 듯했다. 잔인했던 그날의 모습들은 감정적인 단어들을 절제한 채 그렇게 쓰여 내려갔다. 잔인하게 죽은 이들의 시신을 모으고 신원을 확인하는 장면들은 슬픔을 꾹꾹 눌러 참아내는 모든 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시점은 인물 사이를 넘나들며 시대의 위치도 변한다. 마치 ..

아홉살 인생 (위기철) - 청년사

서른을 목전에 두고 느낀 갑작스러운 변화를 느끼며 작가는 아홉 살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아직 많이 어리고 귀엽기만 할 나이 아홉 살은 넉넉하지 못한 살림으로 빨리 철들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천진난만함 속에 섞여 있는 아이의 고뇌는 나이 든 지금의 나에게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부산에서 결혼한 여민의 부모는 서울로 상경하여 친구 집에 얹혀 산다. 어린 나이에 얹혀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여민은 다른 아이들보다 눈치가 빠르게 된 것 같다. 어미를 잃은 강아지가 길가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집으로 가져 오지도 버리지도 못한 아이의 갈등은 그런 면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아이의 모습에서 유년 시절의 즐거움과 더불어 가난한 시절을 회상..

(서평) 씨앗을 뿌리는사람의 우화 (옥타비아 버틀러) - 비채

씨앗, 우화 그리고 SF. 그것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미래 그리고 희망이다. 희망을 바라기 때문에 현실은 절망적일 것이다. 그런 생각 속에 첫 장을 넘겼다. 너무나 익숙하지만 절망적인 모습들이 펼쳐져 있었다. 이 책의 장르를 SF로 구분할 수 있을까? 수년 후에 이 책은 일반 소설이 되어 있을 것이고 수 십 년이 지난 뒤에는 고전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고작 2 ~ 5 년 후로 설정한 시대의 모습은 지금보다 그저 더 암울해져 있을 뿐이었다. 자신의 터전에서 더 살 수 없음을 자각한 주인공이 자신의 터전을 잃고 방황하며 사람들과 유대를 형성하고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곳까지의 여정을 담은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을 일반 소설의 장르에 넣을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

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 허밍버드

뱀파이어 소설의 원형이라고 한다면 단연 을 떠올리게 된다. 세상에 믿지 못할 사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영생하는 존재에 대한 상상은 이 작품을 만들어 냈다. 영생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오랜 숙원이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텔로미어라는 수명을 관장하는 DNA 조작들을 발견하였고, 바닷가재나 조개류 등은 몇 백 년을 산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과학적 사실이 부족한 시절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영생을 이룬다는 생각은 실제로도 믿었다. 악마와 연결되기에 자연스레 피와 흡혈박쥐로 연결되었던 것 같다. 영화나 만화로 늘 보아왔던 드라큘라였고, 뱀파이어였지만 글로써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고전 명작이라고 불릴만했고, 800페이지가 넘는 책 속에 얼마나 섬세하게 담아 두었는..

프랑켄슈타인 (메리 셸리) - 허밍버드

만화나 영화 속의 프랑켄슈타인은 괴짜 박사가 만든 괴물로 소비되었다. 여기저기 시체를 이어 붙여서 생명을 불어넣어 온 몸에는 바느질 자국이 존재했고 인간보다 더 크고 더 센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 와중에 프랑켄슈타인이 괴물로 인지되고 있었고 그리고 굉장히 무서운 호러 소설로 인지되고 있기도 했다.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배경은 유명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유명한 작가인 부모를 가진 메리 셸리는 글 쓰는 것이 무엇보다 익숙했지만 작가가 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글 쓰는 것보다 몽상을 좋아했다. 그의 남편은 그녀에게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녀는 그저 단편적인 글짓기나 편집 정도만 했다. 그러는 와중 바이런 경의 모임에서 괴담에 관한 글짓기를 했는데, 자정이 넘어 잠자리에 누어 빠진 공상이 너무 선..

今会,いにゆきます(지금 만나러 갑니다)(市川拓司)- 小學館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를 나는 사실 드라마로 가장 먼저 만났다. 영화를 보았지만 배역을 맡은 사람과 이야기는 드라마 쪽이 좋았다. 영화 쪽 남자 주인공은 일본 역사 사극에서의 무사 이미지가 강해서 몰입이 어려웠다. 책도 구매했고, 욕심에 원서까지 구매를 했다. 벌써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얘기다. 공황 장애를 앓고 있는 주인공 타쿠미와 그를 사랑하는 아내 미오. 누가 봐도 귀여울 수밖에 없는 유우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행복한 가정을 꾸린 그들에게 행복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유우지를 낳고 얼마 있지 않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나기 전 미오는 타쿠미에게 자신은 '아카이브' 별로 떠나고 둘이 잘 지내는지 비가 오는 계절에 만나러 올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타쿠미는 유우지에..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 문학동네

어느 분의 깊은 후기를 읽고 마음에 들어 손에 쥐게 되었다. 굉장히 철학적인 제목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두껍지 않은 책은 나를 방심시켰지만 첫 페이지부터 만난 괴테는 쉽지 않은 책임을 얘기하고 있었다. 마지막에 닿아 역자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소설이었지만 작가 자신을 주인공에 대입한 자전적 느낌이 강했다. 마치 에세이를 읽는 듯했다. 35년 동안 압축기를 사용해서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고 있는 주인공은 세상과 단절된 채 더러운 지하실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폐지를 압축한다. 그 속에는 엄청난 양의 책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는 그런 책에 이끌려 따로 보관해두고 읽고 또 읽고 하며 교양을 쌓아간다. 고독한 노동 속에서 책은 그에게 즐거움을 주었을 것이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

64 (요코야마 히데오) - 검은숲

12년 베테랑 기자가 10년을 공들여 만든 경찰 소설이다. 굉장히 공포스럽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안고 책을 읽었지만 잔인한 부분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700페이지나 되지만 읽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일상적인 모습에 지루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긴장감이 있었다. 하나의 미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천재적인 형사의 모습이 아닌 그 앞에서 나약하기도 하고 집요하기도 한 경찰이라는 조직의 갈등과 고뇌를 서술하고 있다. 미스터리 소설이기 이전에 조직을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분류하는 것이 더 옳을 듯하다. 쇼와 64년(1989년) 한 소녀가 유괴되어 끝내 시체로 발견되는 미제 사건이 발생한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사건은 해결되지 못하고 공소시효는 1년을 남긴 상태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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