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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182

(서평) 하자키 목련 빌라의 살인 (와카타베 나나미) - 작가정신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그렇게 즐기지 않지만 굉장한 긴장감이나 놀라울 정도의 추리가 돋보이는 작품들을 많이 읽었던 것 같다. 그런 장르를 하드보일드 장르라고 한다. 이 작품은 하드보일드의 대척점에 서 있어서 소프트 보일드라고 하기도 하고 코지 미스터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끔찍한 살인 사건이 2건이나 발생하지만 자연스럽게 풀어져나가며 마무리까지 훈훈한 이 작품은 작가정신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미스터리 장르여서 조금 긴장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홀로 있는 깊은 밤에 꺼내기 살짝 망설여지는 것이 미스터리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살인 사건임에도 그렇게 긴박하지 않다. 2건이었지만 연쇄 살인 사건도 아녔으며 범죄자의 메시지나 복선들이 나타나지도 않았다. 가장..

너에 대한 두근거리는 예언 (류잉) - 아르테

풋풋하면서도 달달한 청소년 시절의 이야기에 조금의 판타지적 요소가 담겨 있어 여러 가지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청춘 로맨스는 감정에 대해서 조금 더 직설적이고 솔직한 것이 매력인 것 같다. 이 작품 역시 사랑에 대한 아픔보다는 행복이 많은 글이었다. 작품 초반에 나오는 짧은 타임리프는 한참 필사 중인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소환했고 잠깐의 실망을 주었지만, 청춘 로맨스 특유의 발랄함으로 모든 것을 잊게 만들었다. 고민과 사색이 필요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 파고드는 청춘이라는 감정은 읽는 내내 미소를 끌어내었다. 그들에게는 갈등이고 아픔이고 행복이었지만 나에게는 추억이어서 그런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귀엽게만 느껴졌다. 그래 청춘 소설의 문법은 이런 거였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만나게 된 미래. 그..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 엘리

을 읽고 나서 나는 테드 창에 대해서 궁금증이 생겼다. 다른 sf소설과는 결이 많이 다른 면이 있었고 굉장히 어렵게 적는다는 느낌도 있었다. 아이비리그 중 하나인 브라운 대학 컴퓨터 공학과를 졸업해서 그럴까?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전작인 이 책을 더 많이 추천했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이 책은 테드 창이라는 작가의 진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테드 창의 글은 기본적으로 어렵다. 문장이 어렵게 꼬여 있는 것이 아닌 내용 그 자체가 어렵다. 굉장히 심오하면서도 전문적이다. 때로는 철학적이다. 어느 글은 수학적인 지식을 어느 글은 언어학적 지식을 그리고 또 어느 글은 신학적 지식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집요하도록 깊게 파고든다. 그 안에서 철학적인 얘기를 한다. 그의 SF는 지금에 집중되..

숨 (테드 창) - 엘리

SF 팬이라면 아이작 아시모프는 교과서처럼 테드 창의 소설은 참고서처럼 읽는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여러 장르를 섭렵하느라 테드 창의 책은 처음 열어보게 되었다. 자칫 어렵게 다가올 수 있는 구성이지만 굉장히 치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정성 들여 읽어야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책은 9개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초단편부터 중단편까지 길이는 가지각색이다. 그나마 최근에 발간된 책임에도 그렇게 먼 미래를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의 얘기를 꺼내어 놓음으로써 나에게 SF라는 정의를 다시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Science Fiction은 가까운 미래나 아주 먼 미래를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 책은 SF는 과학을 이용한 픽션이라는..

(각색)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5

좁은 길을 빠져나가자 타카토시는 손가락으로 길 건너를 가리키며 '저기야'라고 말했다. 길 건너에는 미나미야마 사이클이라고 적힌 자전거 가게가 있었다. 오늘 이때쯤 나를 데려다준다고 얘기해 준 타카토시의 부모님께서 운영하는 자전거 가게였다. 차도를 건너 열려 있는 입구로 들어서자 중년의 여성분이 우리를 돌아보았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가게라 분명 타카토시의 어머니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는 타카토시를 대신해 빠르게 인사를 했다. "어서 와요" 라며 고운 미소로 화답해 주셨다. 타카토시의 어머니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몇 대의 새 자전거 사이로 거꾸로 고정된 자전거가 있다. 그 바로 옆에 작업용 융단과 작업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기름 냄새가 났다. 타카토시는 제법 오래되어..

(각색)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4

어제 어떻게 잠들었는지 기억나질 않지만 슬픔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를 보자 말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 그래?" 나는 '아니야'라고 고개를 저었다. 탄바바시에서 요도야바시행 특급을 탔다. 차량 내부는 텅 비어 있었다. 어제의 이별이 실감 나질 않아 그를 계속 쳐다봤다. 나를 사랑해주는 그의 모습을 오래 간직해 두고 싶다. 내 시선이 너무 오래 머물렀는지 그는 조금 묘한 표정을 지었다. "히라카타는 어떤 곳이야?" 그가 얘기해 준 대로 라면, 오늘은 타카토시의 본가에 가는 날이다. "히라카타 파크라는 유원지가 유명해. '히라파'라는 별명으로 요즘 인터넷 뉴스에도 가끔 나와." 그의 말은 머릿속으로 되뇌어 본 말과 비슷했다. 나는 감탄한 듯 '오오.'라고 답했다. 이제 츠타야에 대해서 얘기할 것이다..

(각색)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3

함께 상점가에서 쇼핑을 했다. 그의 방에 돌아와 요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는 나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은 민망했지만 그에게는 마지막 모습일 거라 생각하니 아무렇지 않은 듯 요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와 처음 마주한 식사. 그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산조를 걸었다. 그는 둘이서 자주 다니던 가게와 걸어 다닌 길을 하나하나 안내해 주었다. 손을 잡는 것이 그새 자연스러워졌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는 그러는 내내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그런 눈길이 부끄러워 여러 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전철을 탔다. 그와 내가 처음 만나게 될 전철이었다. 나에게는 마지막 날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려 그에게 물었다. "타카토시는 여기에 앉아 있었어?" "응..

(각색)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2

어제의 나에게는 익숙했겠지만 지금의 나에겐 모든 것이 새롭다. 넓지 않은 방이었지만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앞으로 자주 오게 될 방이었다. 방을 한 바퀴 돌아보다 커피가 보였다. 그를 쳐다보며 "차 끓여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응"라고 대답했다. 머그컵은 쉽게 찾았는데, 커피포트가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 "포트는 없으니까 그 냄비로 물을 끓여야 해"라고 그가 말했다. "아하" 냄비에 물을 끓여 커피를 만드는 건 처음인데, 재밌다. 냄비에 물을 붓고 레인지에 올린 뒤, 머그컵을 나란히 놓았다. "커피는 어느 정도 넣죠?" "보통" 보통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아 커피 가루를 넣은 컵을 그에게 내밀었다. "... 이 정도?" 그는 컵에 담긴 가루를 살피곤, "응. 이런..

(서평) 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기욤 뮈소) - 밝은세상

오랜만에 읽는 기욤 뮈소의 작품이라 사실 조금 갸우뚱했다. 기욤 뮈소가 글을 이렇게 적었던가?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세밀한 묘사보다는 닮은꼴을 얘기하고 알 수 없는 결말을 내어 놓고 마무리해 버렸다. 디오니소스 신화를 이용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예술인 집단을 글에 녹여낸 이 작품은 밝은 세상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BNRF(국제 도주자 수색대)에서 리더를 맡고 있던 록산은 BANC(특이 사건 국)으로 전출된다. BANC는 원래 독특한 사건을 주로 맡는 조직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한직이 되어 있다. 범죄를 해결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록산에게는 좀이 쑤시는 공간이 될 터였지만 이내 사건이 터지고 만다. 센 강에 나체로 투신한 여인을 하천 경찰대가 구하면서 범죄 집단과 록산의 싸움은 시작된다...

(각색)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1

그 해 열다섯 살 때의 일을 떠올리며 계단을 올랐다. 3층의 좁은 통로에 녹색 문이 늘어서 있었다. 다섯 번째 문. 그 방에는 어제의 내가 살았기에 낯설지 않다. 오늘은 아침부터 따스하고 화창하다. 5월 23일. 오늘은 20살의 그를 처음 만나는 날이다. 그에게는 마지막 날.. 이 되겠지. 벅참과 긴장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별을 앞에 두고 있는 그에게 설렘을 보여서는 안 된다. 숨을 가볍게 내쉬고는 40일간의 나의 손길이 닿았을 문을 눈을 감은채 살짝 밀었다. 눈을 뜨고, 처음 마주하는 20살의 교토. 스스로를 격려하듯 살짝 웃어보곤 걷기 시작했다. 아침 6시. 내가 이 세계로 올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밤 12시가 되면 나의 세계에서 여행 온 이들이 잠시 머무는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 스스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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