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소설의 원형이라고 한다면 단연 <드라큘라 백작>을 떠올리게 된다. 세상에 믿지 못할 사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영생하는 존재에 대한 상상은 이 작품을 만들어 냈다. 영생에 대한 집착은 인간의 오랜 숙원이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텔로미어라는 수명을 관장하는 DNA 조작들을 발견하였고, 바닷가재나 조개류 등은 몇 백 년을 산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과학적 사실이 부족한 시절에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영생을 이룬다는 생각은 실제로도 믿었다. 악마와 연결되기에 자연스레 피와 흡혈박쥐로 연결되었던 것 같다.
영화나 만화로 늘 보아왔던 드라큘라였고, 뱀파이어였지만 글로써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은 고전 명작이라고 불릴만했고, 800페이지가 넘는 책 속에 얼마나 섬세하게 담아 두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드라큘라가 그저 이미지로 너무 가볍게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프랑켄슈타인>과 함께 이 책은 공포의 대상 그 자체보다 글 속에 녹아 있는 문장이 훌륭했다.
조너선 하커가 드라큘라 성으로 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고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상태에서 첫 번째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드라큘라 백작은 고향을 떠나 더 많은 인간이 살고 있는 영국에 나타난다. 우연히 루시라는 환자를 진료하던 반 헬싱 교수는 드라큘라의 존재를 눈치챈다.
과학은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부정한다라고 얘기하는 반 헬싱 교수는 미지의 것과 싸우기 위해서는 인간의 편향적인 사고를 깨트려야 한다고 얘기했다. 수많은 미신들은 그저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믿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말이 좋았다. 결국 죽은 줄 알았던 루시가 흡혈하는 영생의 존재임을 동료들에게 확인시켜 줌으로써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거대한 존재에게 대항하기로 하는 뜻을 모을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에서 드라큘라 백작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그와의 대결을 다루는 장면 또한 그렇게 치열하고 복잡하지 않다. 그럼에도 선명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섬세한 묘사에 있다. 놀라지 말라는 듯 조금씩 세세하게 묘사하는 글 속에서 나도 모르게 끌려들어 가다가 스산한 느낌을 받는다.
압도적인 몰입감을 주는 것 또한 작가의 치밀한 심리 묘사 때문이다. 문장은 각자의 일기, 쪽지, 편지 등과 신문과 전보 등을 날짜 순으로 나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장체는 심리적인 묘사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조금은 쓸데없는 기록이었나 싶을 정도의 글에서 소름 끼치는 문장을 만나기도 한다.
평범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 저항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죽음에 대항하는 그들의 용기와 행동에 어느새 제3의 용사가 되어 함께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호러 영화에서 갑자기 악귀가 튀어나오듯 하는 요즘 작품들과 달리,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주위를 뒤덮듯 그렇게 조용히 공포가 밀려온다. 여운이 남는 공포는 조금 독특하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전과 결국은 동료 한 명을 잃은 슬픔으로 마무리된다. 드라큘라 백작을 쫓으며 남긴 수많은 기록들. 그것이 원본이든 사본이든 사람들은 쉬히 믿지 않을 것이다. 그 기록들을 남기듯 책은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이미 알고 있는 공포스러운 존재를 끌어들여 만든 호러 소설이 아닌 정말 세상에 없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던 작품이었다.
이 책은 소설일까 정말 드라큘라 백작과 싸운 이들이 남긴 속 기록일까? 결국 읽는 자의 몫이다. 믿음은 믿는 자의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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