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아홉살 인생 (위기철) - 청년사

야곰야곰+책벌레 2022. 5. 1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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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을 목전에 두고 느낀 갑작스러운 변화를 느끼며 작가는 아홉 살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아직 많이 어리고 귀엽기만 할 나이 아홉 살은 넉넉하지 못한 살림으로 빨리 철들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천진난만함 속에 섞여 있는 아이의 고뇌는 나이 든 지금의 나에게 더 큰 메시지를 전달해 준다.

  부산에서 결혼한 여민의 부모는 서울로 상경하여 친구 집에 얹혀 산다. 어린 나이에 얹혀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여민은 다른 아이들보다 눈치가 빠르게 된 것 같다. 어미를 잃은 강아지가 길가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집으로 가져 오지도 버리지도 못한 아이의 갈등은 그런 면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아이의 모습에서 유년 시절의 즐거움과 더불어 가난한 시절을 회상하게 만들었다.

  가난은 그저 가난한 것이고, 불쌍한 사람은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는 여민 어미의 얘기는 산꼭대기에 살면서도 이웃을 이해하고 반듯하게 살아가려는 여민 부모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한 때 깡패를 했지만 아내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며 어려운 이웃을 살피던 여민 아비의 모습은 경제적 가난과 마음의 가난을 생각해 볼 부분이었다. 가난하지만 가난하지 않았던 여민은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 못했지만 남다른 생각을 가진 아이였고 그래서 작가의 어린 시절을 투영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받을 수 있었다.

  산동네에서 생기는 일은 사람 사는 이야기와 그리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노는 이야기, 인지하지 못할 만큼 어색한 좋아하는 감정. 동네의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사, 전학, 죽음 등에 관한 이야기. 꽤 긴 시간을 살아야 느낄 수 겪을 수 있는 많은 이야기는 여민의 아홉 살 인생에 담겨 있다.

  첫 만남부터 서열을 정하고자 했던 베트콩 마니아 기종이, 홀로 살다가 죽은 토굴 할머니, 자기중심적이지만 여린 마음의 우람. 취준생 골방 철학자. 1960년대 산동네의 모습이지만 다양한 인간의 삶이 담겨 있다. 아이의 귀엽고 순수한 에피소드는 즐겁고 행복했지만 그 속에는 슬픔과 안타까움도 있었다. 

사람은 서로 만나고 힘을 보태고, 그리고 강해진다.
그러한 세상살이 속에 사람은 결코 외톨이도 고독한 존재도 아니다.


  가난했지만 사람 사는 냄새로 가득했고 그 이야기는 너무 재밌어 단 숨에 읽어버렸다. 아홉 살의 이야기는 아홉 살이라는 이유로 무시되는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아홉 살의 인생을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슬픔도 고통도 피한다고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아홉 살의 여민에게는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나는 알게 되었다.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맹장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조차

기필코 차지하려 드는 멍텅구리들이
세상에 뜻밖에도 많다는 사실을.

  가난했지만 행복해 보였던 아홉 살 인생. 지금 나도 가난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지만 내가 차지하려고 하는 것들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변화의 앞에 선 모든 아홉 살 들에게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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