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우조선해양 노동자와 기업 간 사이의 합의가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하지만 회사의 어려움을 알고 자진적으로 30%의 임금을 깎았던 당시에 비해 훨씬 못 미치는 5% 상당의 임금인상만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8000억 상당의 손해 배상을 노동자들에게 요청했다. 정부는 오랜 시간 기다려줬다며 공권력 동원을 암시하는 강경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 정부가 마르고 닳도록 얘기하는 법과 원칙에 약자는 없는 것일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 70일 남짓. 대우조선 하청 노동자들이 임금 복원을 기다린지는 6여 년의 세월이 지났다. 누가 더 오래 기다렸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국가의 부국 강병을 위해서 백성이 희생해야 한다는 낡은 생각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일은 교묘하게 변질되어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연봉 인상을 바라는 부르주아 노조로 국민들의 비판을 받는다. 연세대에서는 청소부 노동자의 근무 개선의 문제를 학교 측이 노력하지 않는 듯했다. 길어진 투쟁의 결과는 학생과 노동자 사이의 충돌로 변질된 모습만 남아 있다. 오늘은 태풍에 작업 중 숨진 미화원에게 위로를 못할 망정 책임 회피를 위해 대형 로펌을 선임한 광진구청의 뉴스가 세상에 튀어나왔다. 로펌 착수금으로 위로하면 안 될까? 우리 사회는 왜 점점 괴물의 모습을 하게 될까? 상자 속 굶주린 바퀴벌레를 놓아두면 결국 서로를 뜯어먹게 되는 잔인한 벌레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더 연대해야 하는데도 기득권으로 향해야 하는 화살촉은 어느새 서로를 겨누고 있다.
이런 시기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고 노회찬 의원이다. 죽기 전 정치자금법 위반의 죄의식을 견디지 못해 결국 목숨을 던졌지만 설령 그것을 받았더라도 개인의 사익을 위해 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 건 그가 살아온 인생에 비추어 본 개인적 사심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분이 계셨다면 그들의 곁에서 함께 하고 계시지 않았을까. 조금이나 힘이 되는 정치인이 되지 않았을까 안타까움이 든다. 노회찬 의원의 4주기에 슬픈 뉴스들과 함께 회상해 본다.
많은 연설들이 회자되곤 하지만 당대표 수락 연설이 이렇게 오랜 시간 관심을 받은 적은 없다. 노회찬 의원의 정의당 당대표 수락 연설은 정의당 본연의 가치를 잘 보여 준다. 새벽 4시에 출발하는 이 버스는 6411번을 달고 있다. 늘 같은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 앉는다. 누가 어디에서 타고 어디에서 내리는지 모두가 알고 있다. 단지 버스 바깥의 사람들만 이들이 누군지 모른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세상에 존재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존재. 그분들은 아침 일찍 출근하는 직장인들도 알아채기 힘든 더 이른 시간에 수많은 빌딩들로 스며들어 업무를 시작하는 많은 곳들을 말끔하게 해 둔다. 그들이 출근하는 직장과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직장이 다르지 않을 텐데 투명인간처럼 살아간다. 뉴스도 보지 못한 채 잠들어야 해서 세상 돌아가는 일도 잘 모르고 그저 고단한 삶을 이어나갈 뿐이다. 그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 같은 사람들을 찾을 때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대한민국을 움직인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정의당의 존재 이유라고 얘기한 그의 연설은 지금 들어도 눈가가 뜨거워진다.
노동자 쉼터에서 국회까지 걸어서 고작 5분의 거리. 노동자 대표 정당이 국회에 입성하기까지는 50년의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난 몇 해 동안의 정의당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여성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싸움을 해 나가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아직도 세상에는 어둠 속에 묻혀 묵묵히 일하는 세상의 투명인간들이 많다.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정의당이 되었어야 했다. 노동자의 지지마저 잃어버린 정의당은 당 존재의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진보 세력의 대표 논객이라고 하면 유시민 작가가 있다. 그는 팩트와 논리적은 언변으로 상대를 압도한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노련한 풍자로 위트를 잃지 않고 상대를 압도하는 노회찬 같은 논객도 필요하다. 풍자와 해학은 우리가 가진 좋은 문화 중에 하나가 아닌가.
얼마 전에 사이먼 시넥의 '인피니티 게임'을 읽었다. 그렇고 보면 오랜 시간 사랑받는 정치인들 역시 '무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대선 패배 후 쇄신하고 똘똘 뭉쳐야 할 민주당은 공천권 때문에 사분오열 중이고, 대선과 총선에서 대승을 이끈 국민의 힘은 이준석 죽이기에 바쁘다. 정부 또한 권력 구조 조정으로 바쁘다. 대의를 가지고 뛰는 사람은 눈에 잘 보이질 않는다. 어려운 시기에 정치인의 눈은 어디로 향해 있는가?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는 곳을 직접 수색할 사람은 없을까? 어렵고 힘든 시기 노회찬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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