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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A : 시대를 함께한 좋은 아티스트

야곰야곰+책벌레 2022. 6. 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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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지'의 생각이 강한 시절에 나에게 처음으로 반기를 든 사람은 '서태지'였다. 새로움이 가득한 음악들은 '어. 나 이런 거 좋아했었네'라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내 머릿속엔 '도전하는 음악은 좋은 음악이다'라는 라벨 하나가 붙었다. 그리고 작사를 직접 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메시지가 있는 음악은 좋은 음악이다'라는 범주까지 넓어지게 되었다. 스스로 편견을 버리고 많은 장르의 음악을 듣게 되었지만 처음 보는 유형이 나타났으니 그녀가 바로 'BOA'다.

  15세의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의 모습은 생경했다. 데뷔 앨범 ID:Peace B는 나쁘지 않은 노래였고 춤도 곧잘 추었다. 그 당시 립싱크와 표절에 민감하던 나였기 때문에 그녀의 무대를 립싱크라는 포장을 씌어 애써 평가절하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보다 어린아이의 노래를 들어야 한다는 묘한 열등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아이돌이 흔해서 오히려 아이들의 음악이 더 좋은데, 그때는 묘한 심리가 작용했던 것 같다.

  그녀를 다시 보게 된 것은 일본에서의 활동에서였다. 그 당시에는 일본 방송을 자주 챙겨 보던 시절이라 일본에서 활동하는 BOA의 모습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일본의 인기 토크쇼 'hey hey hey'에 출현한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당찼다. 많이 힘들 텐데 잘 이겨내고 있었다. 국내 경기에서는 욕해도 국가전을 하게 되면 응원하는 심리처럼 일본에서 해내고 있는 BOA를 응원하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기게 되었다. BOA는 일본 무대에 잘 적응했고 점점 웃을 만한 에피소드가 많아졌다. 조마조마하던 처음의 느낌과 다르게 즐겁게 마주하게 되었다.

  그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던 한국인은 윤하와 윤손하가 전부였다. '겨울 연가'가 히트를 치고 '소녀시대', '카라'가 일본에 상륙할 때에는 BOA는 그곳에 있었다. 혈혈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어른들과 함께 연습을 하고 NHK 아나운서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일본어를 배웠다. 데뷔 무대에서 음이탈이라는 큰 사고를 안고도 힘겨움을 안고 그렇게 일본의 아이콘들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일본 사람들 중에는 BOA가 일본인인 줄 아는 사람이 많다. 워낙에 원어민에 가까운 일본어를 구사하기도 했거니와 다른 이들과 다르게 한국 일본 양국에서 동시 데뷔를 했기 때문에 그녀의 성장을 함께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한국의 '벚꽃엔딩'처럼 일본에서 크리스마스만 되면 탑 10에 진입하는 '메리 크리'라는 국민적 노래를 가진 가수가 되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해서인지 전성기 때보다 더 원숙한 기량을 보여주는 BOA는 여전히 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한 명의 장수하는 아이돌 일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 활동하던 모습을 오랜 시간 지켜본 사람으로서 아이돌 중에 '존경'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은 BOA라고 얘기할 수 있다. 나에게는 가수나 아이돌 이면에 '개척자'라는 이미지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올해 35세의 BOA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졌다. 춤꾼으로 인식이 되었던 어렸을 때와 달리 이제는 보컬리스트로서의 BOA를 만날 수 있다. 그녀만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매력이 넘친다. 나이가 들어서 오히려 더 매력과 넘치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이사님인 BOA. 언제까지 춤을 출 수 있을까 걱정하며 춤추는 할머니로 늙고 싶다고 했던 그녀의 바람이 이뤄지길 응원한다.

  시대를 함께한 소중한 아티스트 중에 한 사람임을 얘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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