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시작과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종결짓는 전쟁.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으로 유명한 이야기. 그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악티움 해전이 있다. 승자의 이야기로만 채워진 사료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아우구스투스가 철저하게 조작했던 승자의 기록을 살펴본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새로운 제국이 시작되는 시대의 영웅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살펴본다.
승자의 기록을 비틀어 다른 역사적 사건들의 전개와 비교하며 악티움 해전에서의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재조명해 보는 이 책은 책과 함께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와 안토니우스의 사료는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려 있다. 옥타비아누스는 정보를 자기편으로 만들 줄 아는 정치가였다. 17세부터 양아버지인 카이사르의 권력만큼을 가질 거라 얘기했고 또 이뤄냈다. 이 야심 찬 인물은 처일의 말처럼 "나 자신이 역사를 쓰고 있다."를 실천하는 듯하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모든 역사를 자신에 끼워 맞췄다. 게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측의 자료는 전무하다. 진짜 이야기는 아무것도 모른다.
키케로나 플루타르코스, 카시우스 디오도 모두 자신이 듣고 보고 한 내용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옥타비아누스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었고, 안토니우스는 무능력하고 클레오파트라의 여색의 취한 인물로 저평가된다. 그러나 한 제국의 선봉에 서 있는 거의 실세에 가까웠던 인물인 안토니우스가 그렇게 저평가할 수 있을까라는 점에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서로마의 아폴론과 동로마의 디오니소스의 대결로 비유할 수 있는 둘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게다가 아우구스투스를 있게 했고, 안토니우스와도 결혼했던 옥티비아의 지략과 결단. 클레오파트라의 강인함과 매력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다. 역사는 두 명의 대결로 얘기하고 있지만 어쩌면 네 명의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랑과 권력 사이에서 이성과 감성이 섞으며 진행되었던 역사. 혹자는 로마 제국의 탄생을 혹자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을 혹자는 옥티비아의 킹 메이킹 얘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우구스투스는 로마제국을 아주 긴 시간 통치해 낸 첫 번째 황제이다. 그의 이야기와 업적은 후세에 전해지며 퍼져나가야 했을 것 같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우구스투스와 안토니우스도 클레오파트라에게 완패한 듯하다. 지금의 시대에도 클레오파트라의 매력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 매력적 이과 강인한 여왕은 단순히 섹슈얼리티로 사람을 유혹한 것이 아니다. 그녀만이 풍기는 아우라는 사람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이 여성은 완벽하게 이집트어를 구사했으며 이집트의 여신 이시스와 동일시되었다. 이집트의 완벽한 부흥을 목전에 두기도 했으나 결국 안타깝게 왕국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
옥타비아누스의 포로가 된 여왕은 결국 자살로 생을 마무리한다. 가장 여왕다운 면모로 포로가 되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되길 거부한다. 그리고 왕손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쩌면 옥타비아누스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신이 자연스럽게 사라짐으로써 안토니우스와의 세 자식을 살려낸다.
책은 악티움 해전의 전후 사정을 면밀히 검토하며 사료에 제시된 내용을 뒤틀며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제국의 통일을 이뤄냈을 만큼 걸출했던 인물들이 사료에 적힌 모습 이상의 전략을 펼쳐 보인 것이라면 어떨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역시 어떤 것도 진실을 확인할 수 없다. 모든 진실은 역사 속에 묻혔기 때문이다.
저자는 안토니우스에 대한 재평가를 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사료에 의한 옥티비아누스의 해석은 이미 많아서 이기도 할 것이지만, 약자의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그 시대를 가장 제대로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책에서 승자는 클레오파트라다. 그녀의 매력은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다.
성적 매력으로만 소비되는 현대적인 콘텐츠에 그녀가 가졌던 강인함, 결단력 그리고 여왕으로서의 도도함이 더해지니 누구라도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남자의 세상이었던 로마 시대에도 특별 지위를 부여받았던 옥티비아, 걸출한 왕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강력한 여왕 클레오파트라. 역사 속에 수없이 반복되는 영웅들의 이야기보다 그녀들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고 관심을 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독서 (서평+독후감) > 역사 | 문화 |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명과 전쟁 (아자 가트) - 교유서가 (0) | 2023.06.21 |
---|---|
(서평) 우리 본성의 악한 천사 (필립 드와이어, 마크 S.미칼레) - 책과함께 (2) | 2023.04.30 |
(서평) 비잔티움의 역사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 더숲 (1) | 2023.02.24 |
(서평) 에라스무스 평전 (스테판 츠바이크) - 원더박스 (0) | 2022.11.16 |
안목 (유홍준) - 눌와 (0) | 2022.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