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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 (유홍준) - 눌와

야곰야곰+책벌레 2022. 11. 1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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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알게 되면 더 즐겁다. 그것이 예술이든 스포츠든 학문이든 무엇이든 통하는 말이다. '안목'은 세상을 보는 눈이다. 우리에겐 위대한 문화가 있지만 그것을 알아보는 눈이 없다면 남의 것만 탐하고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안목'은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국보순례', '명작순례'를 잇는 3번째 책이다. 한국 미술사가 전공인 유홍준 교수는 우리에게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더욱 유명하다. 전공을 뒤로하고 건축과 조형물을 다뤘던 유홍준 교수는 '안목'을 통해서 미술과 서예 등을 다룬다. 

  우리에겐 뛰어난 화가와 서예가뿐 아니라 이를 즐길 줄 아는 평론가도 있었다. 예술은 높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감상자가 있을 때 더욱 발전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뛰어난 미술 평론으로 알려진 남태응을 들 수 있다. 조선 전기의 의례적인 화평이나 그림을 시로 읊는 제시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미술비평은 화론을 이끌었다. <청죽화사>는 그의 호 '청죽'과 그림의 역사라는 뜻의 '화사'를 붙여 만든 그의 첫 화론 책이다. 그런 <청죽만록>이라는 8권의 책도 집필하였는데, 그의 안목에 탄복할 수밖에 없다. 이런 비평가들이 있었기에 영정조 시대는 문예부흥기를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눈여겨봐야 하는 인물은 강세황이다. 그는 단원 김홍도를 길러는 인물이다. 그는 조선 최고의 미술평론가라는 칭송을 받고 있는데 근 40년을 서화가로서, 그리고 미술평론가로서 활동을 했다. 대가는 겸손하다고 하였던가. 그가 김홍도를 발굴하고 키워내었어나 나이을 잊고 벗으로 지냈을 정도다.

내가 단원과 사귄 것은 전후하여 모두 세 번 변하였다.
처음에는 단원이 내게 그림을 배웠고,
중간에는 사포서에 같이 있었고,
나중에는 그의 그림에 내가 평을 썼다.

  단원에게 강세황이라는 스승이, 표암에게는 김홍도라는 제자가 있었다는 것은 실로 행운이 아닐까 싶다. 우리 역사에 실로 아름다운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다.

  우리 근대 사회에 들어서면 그동안 잃어버렸던 문화제를 찾는 노력이 애국의 일처럼 여겨졌다. 물론 여기엔 그저 돈벌이로 모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우리의 유산이 하나라도 더 남아 있는 것은 감사할 이다. 위창 오세창 선생은 한국 서화사를 집대성한 위인과 같다. 그는 진품과 가품을 감정하는 능력도 탁월해 제자들에게 알려주며 우리 유산을 모으는데 힘을 쏟았다. 우리 예술품을 모으는 것은 애국과 같았기에 어려운 살림에도 거금을 들이며 수집을 이어나갔다. 육당 최남선 선생의 '기미독립선언문'을 감수한 것도 위창 오세창 선생이다. 오세창 선생은 최남선 선생이 한자를 잘못 쓴 걸 보고는 '요즘 젊은 애들은 한문을 잘 몰라서 큰일"이라고 했다 한다.

  추사 김정희의 작품의 이야기를 읽으면 또 한 명의 훈훈한 일본인을 만나게 된다. 후지쓰카 치카시는 한국에 교수로 재직하며 추사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그는 틈만 나면 추사와 북학파의 작품을 수집하였다. 그 속에는 추사의 <세한도>도 있었다. 전쟁이 끝나가며 후지쓰카는 작품을 모두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갔고 <세한도>만은 소장하고 싶었던 소전 손재형은 한 달을 후지쓰카에게 문안을 드리며 결국 받아왔다. 하지만 그는 정계에 진출하며 자금을 모으다가 마지막에 <세한도>까지 처분하였으나 수장가 손 세기의 아들 손창근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하면서 국가의 손으로 돌아왔다.

  반세기가 지난 2006년 후지쓰카 치카시의 아들 아키나오는 94세에 아버지의 소장품을 모두 과천문화원에 기증했다. 이 자료는 도쿄대학도서관이 계속 원했으나 먼저 속에 묻히는 것보다 연구되길 바란다며 한국으로 기증했다. 

그동안 자료를 처리하지 못하여 죽지 못했으며,
추사 관련 자료가 지금까지 나를 살게 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키나오가 기증한 자료는 모두 1만여 점에 달한다. 오늘날 과천 추사 기념관이 있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키 나오는 병상에서 훈장을 받고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미술사에서 새롭게 만나는 인물과 작품은 책을 읽는 내내 즐거움이었다. 청자와 백자의 절묘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가 하면 간결하고 힘 있는 추사체 또한 좋았다. 미술품과 공예품을 모았던 수집가들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거상으로 모은 돈을 우리 문화유산을 모으는데 모두 투자한 간송 전형필 같은 분도 있었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이중섭 화가의 힘들었던 생활을 보면 마치 일본 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감각도 느낄 수 있었다. 잊힌 고려인 화가 변월룡, 한국판 키스 해링을 보는 듯한 오윤 화백의 작품, 몽실 언니로 더 잘 알려진 박수근 화백의 '아기 보는 소녀' 등 눈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조선 총독부의 수장이기 전에 청자, 백자를 닥치는 대로 가져간 장물아비 '이토 히로부미'는 청자를 고종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이 나라의 고려 때의 작품이요'라고 얘기하니 고종이 '이 나라에서 이런 물건을 만들리 없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무지함은 약탈의 대상이 되며, 자긍심을 잃게 만든다. 우리 유산을 보는 '안목'을 길러 서양 화가들의 작품에만 감탄하지 말고 우리 것을 잘 알고 잘 즐길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나는 수묵으로 그린 그림이 좋다. 이번 책을 통해서 더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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