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없는 모두가 피해자인 끔찍한 역사다. 야만은 전쟁터를 휩쓴다. 하지만 이기기 위한 절박함은 인간에게 새로운 발전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민족이 섞여 문화와 과학이 발전하기도 할 뿐 아니라 전쟁 그 자체를 위해 기술은 엄청난 가속력을 얻는다. 전쟁은 소모전이다. 만든 것을 끊임없이 소비하고 또 빠르게 생산해야 한다. 짧은 순간에 더 획기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 전쟁이 끝나면 남아 있는 것들의 활용을 또 고민해야 한다. 전쟁은 약과 닮았다. 약이면서 독이다.
전쟁 속에서 태어난 수많은 약들의 에피소드를 얘기하는 이 책은 동아시아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전쟁하면 폭탄과 폭격기, 탱크, 군함 같은 전쟁 물자가 생각날지도 모르겠지만, 핵과 더불어 비대칭 무기로 불려지는 생화학 무기가 사실 엄청 무시무시하다. 페스트나 탄저균, 천연두 한 시대에 큰 사건을 일으킨 이것들은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어디에선가 보관되어 있다. 코로나가 우한 연구소의 관리 미숙으로 퍼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도 이와 같다. 2차 세계 대전에서는 일본의 악명 높은 737 부대는 페스트를 어떻게 잘 뿌릴까 하는 실험도 했다. 하지만 그 장군은 전쟁이 끝나고도 잘 먹고 잘 살았다. 미국은 그 실험 자료를 가져갔고... 하...
전쟁하면 화학약품을 빼놓을 수 없다. 일본의 오옴진리교가 뿌린 사린 가스 테러나 몇 해전에 김정은의 형인 김정남의 살해에도 화학약품은 사용되었다. 지금의 전쟁에도 언제 화학무기가 사용될지 알 수 없다. 백신과 치료제를 계속 만들고 있는 것 또한 이를 대응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또한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또 다른 약품은 아편, 모르핀, 헤로인 등의 마약이면서 환각제 그리고 마취약이다. 군대의 돌격을 하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커다란 이상과 동기. 명예 등 많이 있겠지만 명분이 없는 전쟁이라면 마약만 한 것이 없다. 일본의 돌격부대, 카미카제는 이런 약품이 사용되었을 거라 얘기하고 있다.
전쟁에서 사람을 구하는 약도 존재하기 마련인데, 말라리아를 해결하기 위해 안데스의 신코나 나무가 필요했다. 이 나무 역시 목화씨를 나르던 문익점처럼 누군가가 빼돌려 재배했다. 역시 생태주권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 같다. 베트남 전쟁에서도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렸는데, 중국의 투유유가 개똥쑥에서 아르테시민을 추출해서 치료제로 공급했다.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서방 국가들은 아르테시민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결국 중국의 농민들에게 패배했다. 중국의 대량 생산은 정말 대단하다.
러일전쟁에서는 도정 흰쌀밥에 간장 종지만 먹다 각기병에 걸린 일본인과 너무 오랜 시간 갇힌 러시아인의 괴혈병이 있었다. 비타민 B와 비타민 C의 결핍으로 생긴 병이었다. 흰쌀밥을 먹기 위해 참전한 병사들에게 현미나 보리를 먹이는 것은 엄청난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바로 카레라이스였다. 흔들리는 배 속에서도 흘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고 맛도 좋았다.
2차 세계전쟁은 정말 끝없는 소모전이었다. 프랑스에는 파스퇴르가 독일에는 코흐가 있었다. 독일이 미생물학을 이끌던 시기였기도 했다. 많은 물자들이 독일로 향하는 것을 끊었지만 독일은 공기 중의 질소를 포집하여 비료를 만들고 무기 재료로 만들었다. 신코나의 수입이 막히자 버드나무에서 살리신산을 추출해 낸다. 살리신산으로 만든 것이 바로 아스피린이다.
버드나무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이순신이다. 이순신은 무과에서 낙마하여 다리를 다쳤을 때 버드나무 껍질로 다리를 고정하고 시험을 마저 치렀다. 이 버드나무 껍질은 마취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 책에서 읽은 내용은 아니지만..) 살리신산을 읽으니 이순신 일화가 생각났다.
그 외에도 당연하기 등장하는 타이레놀, 페니실린 그리고 항히스타민제 등이 있다. 마지막에는 PTSD도 등장한다. (한국전쟁 참전용사가 환대받으며 귀국했다는 점은 동의하기 어렵지만) PTSD도 초기 진단이 중요함을 알 수 있었다.
전쟁은 긴급한 사건이기 때문에 비윤리적인 실험도 조금 덜 완벽한 약품도 쓸 수 있게 만든다. 때로는 의도하지 않게 효능 좋은 약들이 발견되지만 모든 약은 곧 독일 수 있다. 약을 남용하면 질병들은 그것에 또 적응한다. 슈퍼 박테리아들이 등장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약은 적절히 계발하되 더불어 사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해 보인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약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약들은 제약 회사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다. 그렇지만 젊은이를 위한 약은 적다. 싸기 때문이다. 모든 제약 회사들이 불치병, 난치병에 도전하지만 어린이들을 위한 간단한 약에는 소원하다. 이해타산이 맞질 않기 때문이다. 혹자는 비싼 돈을 짧은 생명에게만 투자하고 있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누구를 위한 약을 만들어야 할지도 생각해 볼만 한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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