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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궁녀로운 조선시대 (조민기) - 텍스트CUBE

야곰야곰+책벌레 2022. 10. 30.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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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성 위주의 역사 속에서도 불쑥 등장하는 천재 여성 과학자, 철학자,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의 옆에는 그들을 지지해주고 영향력을 줄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역사의 기록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렇게 불쑥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찢고 나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군력의 중심부에서 살았던 궁녀들 중에서는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사극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장희빈. 이제는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많은 궁녀들의 모습들은 낯설지 않다. 조선시대에 영향을 끼쳤던 궁녀들의 이야기를 모아 두었다. 

  조선 시대의 기록을 더듬으며 궁녀의 기록을 살펴보는 이 책은 텍스트 CUBE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힙한 외모에 단아한 한복을 입은 여성의 커버는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 있던 모습과 다른 모습을 기대하며 책을 만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약간의 사실에 픽션인 소설일 것이라는 기대는 가지런한 목차에서 이미 사라졌다. 역사를 기반으로 쓰인 역사서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8명의 궁녀의 이야기 여기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희빈 장 씨도 있었다. 근데 유독 숙종, 영조, 정조 시대에 몰려 있는 것은 조금 특이하긴 했다.

  8명의 궁녀는 1부에서는 본문을 지킨 궁녀, 2부에서는 사랑받은 궁녀, 3부에서는 정치적이었던 궁녀, 마지막 4부에서는 권력형 궁녀였다. 왕의 사랑을 받은 이 중에 유명할 수 없는 것은 장희빈이며 왕의 열렬한 사랑으로 왕비의 자리까지 오른다. 역사에서 희빈을 매우 악랄하게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최근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다. 인현왕후는 노론 집안의 출신이며 노론의 권세 회복은 곧 인현왕후의 복권과도 닿아 있었다. 불세출 집안 덕분일까 실록 편찬을 노론에서 작성했으며, <인현왕후전> 또한 인현왕후의 집안에서 쓰였다는 것이 최근의 주장들이다. 픽션과 논픽션을 섞어 역사를 왜곡하는 방법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용하는 방법인 듯하다.

  매력적인 궁녀들 중에서도 4부에 등장하는 조두대와 김개시가 가장 매력적인 인물인 것 같다. 조두대는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언어를 익하는 것에 남다른 재주가 있어 세력가 집안사람들도 잘 모르는 한자를 금방 익혀냈으며, 이두나 범어도 능숙하게 다뤘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을 제대로 통달한 사람은 조두대 일 것이라는 사료도 있다. 궁녀들의 서체 '궁체'의 창시자 기도 하며 불경 번역 작업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김개시는 노비였으나 영특하였고 한자를 이미 익히고 있었다. 임진왜란에 선조를 따라다니며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았고 왕들의 총애를 받아 비선 실세의 지위를 마음껏 휘둘렀다.

  노론에서 장희빈의 자리를 꽤 차기 위해 투입했던 숙빈 최 씨는 신비로운 인물이다. 모든 절차를 무시한 채 왕과 접견이 가능했다는 것은 뒷배가 얼마나 든든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자신과 왕을 위험에 빠트리지 않기 위해 성은을 여러 번 거부한 의빈 성씨 또한 대단한 인물이다. 그 당시 성은을 거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왕이 얼마나 총애하였으면 그런 거부도 인정하며 십수 년을 계속해서 찾아갔을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후대에 이를 선대의 역사를 고쳐 적는 일은 자주 목격하는 일이다. 우리 근대의 역사 또한 역사 왜곡을 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이 많다. 모두가 일정 이상의 교육을 받은 지금의 사회도 이런데 고대 문자를 아는 사람만이 했던 역사적 기록은 얼마나 많은 왜곡이 있을까. 역사학자들은 여러 사료들의 행간의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궁녀에 대한 이해는 이 책에서 시도하고 있다. 

  물론 역사는 해석의 영역일 수 있다. 같은 마음과 행동을 가질 순 없다. 조금은 다른 삶을 살려고 했던 궁녀들의 이야기를 담았는지 모르겠다. 많은 역사 사료를 바탕으로 그 속에서 궁녀들의 이야기를 찾아 서로의 이야기를 엮고 있다. 주류 속에 살고 있었으면서도 조망받지 못한 궁녀들의 이야기 (사실 책 속의 궁녀들은 충분히 주류들이지만...)가 담겨 있다. 역사를 여러 면으로 본다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중요한 일이다. 많이 언급되지 않기도 하고 때론 왜곡되기도 하는 그네들의 이야기를 이 책과 함께 만나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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