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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비잔티움의 역사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 더숲

야곰야곰+책벌레 2023. 2. 24.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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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작품으로부터 시작된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하는 동서양의 용광로를 지배했던 역사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다. 서양과 동양의 세력들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지배했던 이 땅은 서로를 적대하면서도 서로를 탐했다. 수많은 민족, 수많은 문화가 섞여 새로움이 만들어지던 공간. 많은 학자와 예술가를 품었던 공간. 그중 하나인 비잔티움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적혀 있었다.

  로마의 뿌리 위에 그리스를 탐하던 제국. 기독교 세계 최대의 도시였던 비잔티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더숲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서양사를 읽을 때마다 곤욕스러운 것은 역시 엄청나가 긴 이름들이다. 게다가 비슷하기도 하고 2세, 3세 등으로 이름을 붙여 나가 머릿속이 복잡하다. 소설이야 등장인물이 반복해서 등장하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는 지점이 있지만 역사는 익숙해질 만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다. 그럼에도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니 물 흐르듯 읽어 나갔다.

  이 책을 펼친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베네치아의 문화가 어떻게 오스만에 영향을 끼쳤을까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오스만의 이야기에도 비잔티움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문장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책의 마지막 부근에서 짧게나마 알 수 있었다. 비잔티움이 오스만에 의해 멸망했기에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의 7대 술탄인 메흐메트 2세는 21살의 나이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하고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켰다. 그는 비잔티움의 성물을 좋아했고 그리스어로 황실사를 편찬하기도 했다. 말년에는 베네치아 화가를 통해 초상화를 선물 받기도 했다.

  비잔티움은 이스탄불의 본래 이름이다. 후대 이 도시는 콘스탄티노폴리스란 이름으로 동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다시 오스만의 수도가 되었다. 비잔티움은 하나의 도시였을 뿐인데 이를 두고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말하는 것은 영국을 런던 제국, 프랑스를 파리 제국으로 부를 만큼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고 콘스탄티노폴리스라고 부리는 것은 '로마 황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도시'라는 뜻으로 꽤나 노골적이다.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만 저자는 그 의미는 알아 두자며 서문을 열고 있다.

  책은 여느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제국의 탄생과 발전 그리고 몰락에 대해 설명한다. 1000년의 역사를 가진 제국은 그 길이만큼이나 여러 일들이 있었다. 그 속에서도 학문과 예술을 하는 이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의 활약 덕분에 고대의 작품들이 필사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기도 했다. 로마에 기원을 두었지만 그리스 학문을 탐닉했고 이슬람 문화에 자극을 받았다. 

  지중해 교역의 중심이었기에 수많은 제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곳이었다.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서로를 탐닉하는 공간이기도 했으며 그리스교와 이슬람교가 서로를 이도교로 정하며 핍박하고 학살하던 공간이기도 했다. 그만큼 종교는 권력과 닿아 있었고 권력은 종교를 이용해 그 권위를 세웠다. 황제가 이교를 포용하면 정교회는 경멸했고 황제는 다시 그들의 권력을 몰수했다. 그리고 그리스교에서 신은 오직 하나이기 때문에 황제의 신적 존재감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성상을 숭배하는 것 또한 신에 대한 배반이라고 성상 파괴를 했을 정도다.

  기독교의 나라답게 십자군의 도움을 받은 전쟁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제국 안에는 그들이 정착하고 지배하는 지역도 많았다. 그들 사이에는 서로 다른 기록을 남기기도 하지만 대주교가 있는 비잔티움과 십자군은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기도 한 듯하다. (하지만 멋진 이름에 비해 이슬람 세력에게 자주 대패 당한다.) 비잔티움 제국에 많은 제국들이 도움을 준 이유가 이슬람에 제국을 내어주면 지중해 교역의 불리함이 생기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학술가와 예술가들은 전쟁과 제국의 여부를 떠나 자신의 업을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기도 한 듯하다. 얼마 전에 읽은 에라스무스만 보더라도 전쟁에 이기고 지기보단 자신의 학문을 지속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했던 같다. 콘스탄티노 폴리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이들은 오스만 제국이 도시를 함락하자 크레타 섬으로 이동해 열심히 활동을 했다. 베네치아가 오랜 시간 지켜냈지만 결국은 오스만 제국의 손에 떨어지고 말았다.

  비잔티움 제국은 세계사에 이름을 남긴 커다란 제국이라는 점도 있지만 고대의 학문과 예술을 세계에 전달한 점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 시대를 지낸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은 고대의 문헌을 필사하고 집대성했다. 엄청난 수의 사본이 만들어졌다.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고대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비잔티움의 역사를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된 시점으로 이후로 까지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영향이 그 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름을 이해하기도 바쁜 한 장 한 장이었지만 장미의 전쟁, 십자군, 정교회 등의 조금은 신비한 명사들의 등장에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하고 베네치아가 비잔티움이 어떻게 오스만에게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도 조금은 알 것 같은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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