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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협력의 유전자 (니컬라 라이하니) - 한빛비즈

야곰야곰+책벌레 2022. 10. 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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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발간한 이후 많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유전자는 사실 이기적이기도 이타적이기도 않기 때문이다. 그가 그런 제목을 붙여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사실 유전자는 죄가 없다. 최근에는 <공진화>를 다루는 책들이 많이 출간된다. 생물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같은 개체에서 협력은 어떻게 이뤄지는지에 얘기한다. 굉장히 감격스러운 장면을 만날 것 같지만 이 책 역시 유전자에게는 정이 없다. 

  경쟁과 협력 사이, 마치 얇은 종이 한 장 차이 같은 성질은 유전자의 또 다른 모습을 설명하기 좋다. 생물은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헌신을 보이는가를 설명하는 이 책은 한빛비즈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공진화>의 감격스럽고 아름다운 스토리에 비해 이 책은 이성적이다. 생물이 군집을 이루면서 서로 협력하며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각자의 의무를 수행하고 긴급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거리낌 없이 내놓는 모습에 대한 설명을 한다. 인간에게 이런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유전 메커니즘일 뿐이다. 단독적인 개체는 없다. 모든 것이 얽혀서 살아가고 있다. 내어줄 것과 챙겨야 할 것의 손익 계산을 전 지구적으로 밸런스 있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 또한 유전자의 의지다.

  이렇게 얘기하면 너무 숙명적인 느낌일까. 하지만 인간은 유일하게 유전자의 의지를 거스르는 존재 중에 하나다. 그런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저자는 협력이라는 가치를 깨우치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은 생물체의 협력이라는 단어가 결국 개체 보존이라는 거대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인간 또한 다르지 않음을 얘기하고 있지만, 인간만이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자국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지금의 시대 저자는 범지구적인 협력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의 몸은 그 자체로 협력의 상징이다. 가장 주요하게는 미토콘드리아를 들 수 있다.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들은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소멸하기도 한다. 생존의 시각에서 본다면 세포자살은 이해할 수 없지만 생존에 불리한 조건이 되었을 때 자연스레 사라지는 것은 이치다. 이것은 노화의 의미이기도 하다. 개체에 부담이 되는 개체가 되었을 때에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생명 유지를 위한 죽음 <아폽토시스>, 세포자살의 다른 말이다.

  사회적 곤충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초유기체다. 모두 각자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군집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체와 같은 것이다. 암컷 일벌들은 유성 생식은 불가능 하지만 때때로 무성생식이 가능하다. 여왕개미가 존재한다면 그 역할을 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의 자식을 피를 잇지 않을 경우 반란을 일으킨다. 그래서 군집을 이르려면 여왕들은 여러 수컷과 교미를 해서 일벌들이 자신의 유전자가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믿게 해줘야 한다.

  줄무늬 몽구스는 암컷 대다수가 새끼를 놓지만 우두머리 암컷이 새끼를 놓지 않았을 때에는 남의 새끼를 잡아먹는다. 하지만 우두머리 암컷이 새끼를 놓으면 다른 새끼들도 안전하다. 수많은 새끼 중에 자기 새끼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붉은쌍살벌도 마찬가지다. 여왕은 서열이 낮은 암컷들이 알을 놓지 못하도록 괴롭힌다. 

  육아 협력은 암수의 개체 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암컷이 많을 경우 수컷은 교미 이후 다른 암컷을 찾아 나선다. 그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더 잘 퍼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컷이 적은 경우 수컷은 교미한 암컷에게 잘 보이려 노력한다. 다음 교미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때때로는 암컷이 와서 알만 놓아주고 가버린다. 암컷이 적은 경우에는 수컷의 고환의 크기가 커진다. 다른 수컷보다 많은 양의 정자를 내보내서 수정에서 우위를 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두머리 수컷만이 교미를 하는 고릴라보다 여러 수컷과 교미를 하는 침팬지의 정자 수의 차이는 무려 200배다.

  여러 동물 얘기를 했지만,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인간이다. 인간은 유일하게 협력을 통해서 육아를 하는 동물이다. 할머니는 손주들을 키우고 먼저 태어난 아이들은 동생들을 보살핀다. 물론 각자의 생존에 최선을 다하기도 한다. 아이가 수시로 우는 것은 배가 고픈 것뿐 아니라 젖을 자주 빨면 엄마가 임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이는 탯줄을 통해서 엄마와 유전자 교환을 시도하는데 이것은 아직 걸음마 단계의 미세 키메라 현상이라고 한다. 자연분만을 하는 아이는 엄마의 장기로부터 여러 가지 미생물을 받아온다. (조금 더럽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제왕절개를 하면 그것을 얻을 수 없다. 대략 7세 이전까지 자연 분만한 아이들이 더 튼튼할 수 있다.

  인간에게만 있는 유일한 존재 '할머니'다. 할머니는 딸과의 유전자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의 유전자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협력한다. 암컷의 아이는 암컷의 유전자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모든 생물의 모계 친화적인 현상은 당연하다. 시어머니보다 친정어머니와 친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의 딸이 낳은 자식에게는 자신의 유전자가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협력은 사회를 들 수 있다. 사회는 협력과 처벌이 존재한다. 협력은 협력하지 않았을 때보다 협력할 때가 유리한 점이 많을 때 성립된다. 처벌은 집단이 더 협력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칼을 칼집에 있을 때 효과가 있을 뿐이다. 협력의 이유 중 하는 평판이다. 평판은 과거의 일을 바탕으로 앞으로 그 사람의 행동을 추측할 수 있다. 평판의 가치는 생존에 유리하다. 흡혈박쥐는 피를 구하지 못한 동료를 위해 피를 게워내 동료에게 나눠준다. 그것은 먼 미래를 위한 투자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평판이 높은 사냥꾼은 사냥을 잘하는 인간이 아니라 가장 인심 좋은 사냥꾼이다. 그들은 사냥을 잘하지 못해 고기를 구하지 못하는 날에도 고기를 나눠 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협력과 평판의 관계는 중요한 것 같다. 평판을 추적하는 방식은 반드시 필요하며, 신뢰를 어겼을 때의 처벌 또한 필요하다. 부족 사회에서는 공동체에서 배제되었고, 지금은 공권력으로 억압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무조건 협력하지 않는다. 협력을 선호할 동기가 없으면 우리는 협력하지 않는다. 최근에 일어난 팬데믹만 봐도 알 수 있다. 선진국이라고 얘기되었던 수많은 국가에서 일어난 이기주의는 <죄수의 딜레마>와 같다.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 협력은 이뤄질 수 없다.

  협력과 방해의 행위는 다르지 않다는 것은 딜레마다. 공동체의 크기를 바꾸면 정의와 공정은 달라진다. 인간의 협력은 그 끈끈함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생명이 소중해도 내 가족만큼 소중하기 쉽지 않다. 협력과 경쟁은 굉장히 이해충돌적인 것이 되어 버린다. 누구와 협력하고 누구와 경쟁할 것인가의 선택은 늘 힘들다. 범지구적인 문제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이해를 위해 얼만 큼의 미래를 위해를 위해라는 질문의 답은 모두가 다를 것이다. 

  인간이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협력이었다. 하지만 세계는 구체적인 위협 속에서 신뢰를 잃어버리고 국경을 잠그기 시작했다. 서로를 믿지 못하며 대치하며 결국 전쟁 또한 생겨버렸다. 하지만 이대로 지속하다가는 인간은 멸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생존을 위한 속도전은 시작되었다. 전 세계적인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족을 넘어 앞으로 결코 만날 일이 없는 사람들과도 연대해야 한다. 

  고상한 말을 치우고 '인간 생존을 위한 협력'. 두려움에 우왕좌왕하다 전멸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신뢰와 협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 저자의 희망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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