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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 (리 스몰린) - 김영사

야곰야곰+책벌레 2022. 9. 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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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만큼 시간의 존재는 논란의 대상이었고, 지금 또한 그 해답의 결론은 나질 않았다. 오랜 시간 물리학은 수학을 이용하여 여러 법칙들을 발견해 내었고 그 식에서는 늘 대칭성을 보여주는 해가 등장했다. 시간은 미래에도 과거에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은 많은 부분을 단순화시켜 주었으며, 물리학 발전에 이바지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종 이론의 꿈을 꾸기 시작한 이후 인간은 어떤 진전을 했을까? 끈 이론이 나타난 지 20년째 그것은 여전히 어떤 실채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물리학의 거대담론에 맞서는 진영의 리 스몰린의 시간의 실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담은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물리학에서 시간이 실재하지 않는 것은 흔한 일이다. 뉴턴은 시간을 운동을 나타내기 위한 하나의 요소일 뿐이라고 했고 변화가 사라지는 순간 시간은 의미는 사라진다. 아인슈타인은 절대적인 관측자라는 시계에서 벗어나 관측자를 계 속에 포함시켰다. 절대적인 시간은 없고 시간은 그저 상대적인 것이었다. 우주에는 수많은 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의 시간이다. 양자 역학에서도 시간은 존재하지만 시간의 방향성은 없다 그것이 양으로 흐르던 음으로 흐르던 양자 이론은 당연한 것이라고 판단하다.

  이런 시간의 인식은 변화의 찰나를 기억하는 복합체의 특성 때문에 인지되는 것이다. 스냅과 같은 무한한 찰나가 있고 우리는 그 찰나를 순서를 맞춰 인지하고 있고 그것을 시간으로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연에는 법칙이 있다고 믿고 수많은 수식에서 도출되는 해 들은 그것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과거는 있지만 미래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의 주된 논거는 두 관측에는 동시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시성이라는 것은 같은 공간에서만 있을 수 있는 것이며 멀리 있는 두 관측자가 보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양자 역학은 어떤가 관측을 그저 확률로 얘기할 뿐이다.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확률이 높아서 그런 것 같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차원의 개념을 가져 나오는데 1차원에서 이웃은 2명, 2차원에서는 4명, 3차원이 되면 6방향에 이웃이 존재한다. 이웃은 늘 차원의 두 배만큼 존재한다. 우리가 3차원을 느끼며 살아가지만 우주는 무한한 차원의 우주일 수 있다. 이것은 소위 다중 우주로 얘기될 수 있다. 하지만 다 차원을 얘기하는 끈 이론은 여전히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9차원이었는데 지금은 초끈이론이라 하여 11차원 초중력이론까지 발표되었다. 하지만 세상이 2차원이든 11차원이든 무슨 상관이랴 세상에 실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섭렵하였고 고리 양자중력 이론에 크게 이바지 한 학자이므로 그의 말이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시간의 실재를 얘기하는 것이 자신의 철학적 신념이 바뀐 것인지 시간의 개념을 배제하고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어서 그런 것인지 그 의도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저자는 뉴턴 이론, 일반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열역학 등을 소환하며 이론을 아주 쉽게 설명하며 그들에게 있는 맹점이 무엇인지 얘기한다. 물론 그들에게 존경 또한 잊지 않고 있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을 좋아하는 듯하다. 모든 학자들이 작은 상자를 만들어 놓고 여러 가정을 한 뒤 계의 밖에서 관측하여 설명하려 했지만 아인슈타인만은 우주라는 커다란 계 속으로 뛰어들어 이론을 완성시켰다. 지금 물리학에는 과감하게 다른 시점으로 접근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그의 의견 대부분은 상대방의 맹점을 채우며 주장하지만 자신의 의견 또한 완벽하지 않음을 얘기한다.

  저자는 무언가를 주장하려고 했다기보다는 많은 과학자들의 시야를 넓히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도 아인슈타인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거대한 미끼도 잊지 않았다. 많은 과학자에게 이 의견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의 이론은 모두 이상적인 상태의 법칙이고 그것은 실재의 근사만을 표현할 뿐이라도 10의 40승이 넘는 왜란을 고려하며 연구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저자는 물리학에 생물학을 더하는 통섭을 시도하고 있었고 수학에 철학을 더한 사고를 하려 한다. 아무리 상자 속에 가둬 관측하더라도 중력이나 소립자 등의 막을 수 없는 왜란 때문에 관측은 늘 근사치일 뿐인 것이다. 우주는 생물학적이며 자라고 또 다른 우주를 놓고 한다. 엔트로피가 낮아져 결국 죽어버리는 우주가 아니라 후대에 DNA를 전달하는 복합체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뉴튼이라는 잡지에서 본 무의 세계에 떠 있는 우주의 블랙홀이 다른 우주의 화이트홀로 이어져 있는 마치 거품과 같은 우주의 모습을 기억한다. 저자는 이런 우주를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의 실재를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수학으로 우주가 설명되어 버리면 모든 현상과 변화는 정해져 있다는 숙명론적인 어떻게 보면 죽어 있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란 철학적 물음에 대한 답이기도 한 것 같았다. 우리는 과거가 있고 현재를 살아간다. 현재는 순간이지만 모든 현상들은 순간을 통한 인과관계가 성립된다. 시간의 실재는 인간의 자율 의지를 증명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저자는 그것을 믿고 싶은 것 같았다.

  저자의 논리는 굉장히 어려웠다. 하지만 타 이론들의 설명은 너무 명쾌하고 쉽게 설명되어 있었다. 저자와 철학을 공유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세상에 뿌려진 많은 이론과 법칙 그리고 과학자들의 철학을 알 수 있는 과학사의 기능도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유익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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