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는 늘 확신을 하지 않는다. 지금의 진실은 지금의 지식으로 진실일 뿐이라는 것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문명은 발달했고 진실은 늘 변화했다. 변했다고 얘기하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인류는 여전히 발달하고 있고 우리는 모르는 것을 계속 알아가게 될 것이다. 지식의 혁명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또 한 번 진화하게 될 것이다.
인간, 과학, 지식의 발달을 과학적 방법론, 철학, 정치, 예술 등 전방위적으로 고찰하는 이 책은 알에이치코리아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저자는 물리학자이면서 낙관적인 시각을 가진 과학자였다. 그는 여러 면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진화를 설명하며 인간은 생물학적 진화와 동시에 지식을 통한 진화를 하기 때문에 인간은 여전히 멸종하지 않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일어난 큰 사건들은 모두 지식의 부족에 기인하고 있으면 그것을 이겨낸 것도 지식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지식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우리가 더욱 번성하는 것도 우리가 멸종하게 되는 것도 결국 지식의 문제라는 것이다.
모든 해악은 불충분한 지식 때문에 초래된다.
인간은 지구에 출현하고부터 꾸준히 지식을 쌓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계몽, 혹은 혁명으로 불릴만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식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이것은 '무한의 시작'이고 '보편적 원리'를 찾는 과정이다. 과학의 출현은 놀라운 속도로 지식을 창조했고 지식은 계속해서 증가해 왔다. 지식의 증가는 생물학적인 진화가 더 일어나지 않는 인간에게는 또 다른 형태의 진화가 되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지식에 의존하기 시작했고 지식을 이용하여 살아가고 있다.
지구 생물권에서 진화는 위대한 종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다. 생물권은 개체를 지속적으로 무시하고 해치고 무력화시키고 살해함으로써 안정성을 달성할 뿐이다. 그러면서 지구 생물권은 인간에게 안락과 안전을 제공하지 않는다. 지금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인간은 일 년 내내 기온이 유지되면서 병균이 없어야 하는 곳이어야 한다. 지구 생물권은 인간에게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그리고 인간의 멸종의 시나리오는 여전히 많다. 인간은 수많은 멸종의 고비를 넘어야 했고 그때마다 지식은 인간을 멸종으로부터 구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지식은 그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저자는 인간 문명의 진화 방식을 도킨스의 '밈'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유전은 DNA에 의해 무작위적으로 복제되는 반면에 밈은 반드시 뇌의 기억과 행동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구체화된다. 밈은 단순 모방과 다르다. 전달자의 행동은 받는 자의 판단에 의해서 수용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가 결정된다. 밈은 전달받는 자에 의한 새로운 창조적인 활동인 것이다. 이것은 생물학적 진화와 닮은 점이 있다. 진화는 강하거나 적합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종의 행동에 가장 빠르게 확산하는 DNA가 살아남는 것이다. 밈 또한 여러 사람에게 확산되어야만 살아남아 전달될 수 있다.
인간은 지식을 통해서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인간의 진보는 완결될 수 없다. 과학의 혁명이 시작되고 인간이 '계몽'이 되는 것을 '무한의 시작'이라고 얘기한 저자의 말은 그것에 있다. 문제의 새로운 문제와의 만남이다. 앞으로 어떤 문제를 만나게 될지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문제를 해결해 감으로써 지식을 축척해 나간다. 그리고 점점 더 세상을 이해하고 더 발전된 인간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멸종하게 된다면 그것은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적 방법론으로 시작을 한 책은 좋은 지식은 어떤 지식인가를 정의한다. 지식은 '좋은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좋은 설명은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 때때론 관측에 의해 지식을 진리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잘못된 관측은 큰 문제를 만들 수도 있다. 모든 진리는 설명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진리가 설명될 수 있더라도 진리를 바뀔 수 있다. 뉴턴의 시대에는 고전 물리학으로 세상을 설명할 수 있었다. 우주에 대한 지식이 늘어가면서 뉴턴의 진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되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는 양자역학을 발전시키는 시대가 되었다.
책은 굉장히 어려웠고 문장 또한 쉽지 않았다. 여러 번 다시 읽는 경우도 생겼다. 그럼에도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굉장히 낙관적인 사람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문제 앞에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문제만 해결해 내면 우리는 또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다는 자세였다. 인류는 지금까지 그렇게 멸종을 피하면서 발전해 왔다. 앞으로의 재앙 또한 우리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기후의 재앙은 이미 예견되어 있다. 지금은 탄소 중립을 외칠 때인지 높아지는 수면에 대한 대책 연구나 이상 기후에 대비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할 때인지 묻기도 했다. 저자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 때보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기후재앙이 인간에게도 원인이 있지만 지구 생물권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진보에는 추측하고 비판하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오류와 문제의 발견은 진보를 일으키는 동력이 될 수 있다. 문제가 없는 사회는 완벽한 사회가 아니라 비판과 새로운 생각이 억압된 사회다. 지금의 진리가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다. 진실에 관해서는 어떤 인간도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인간이 그 완벽한 진실을 말할 수는 있다고 해도, 그것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지식의 축적을 시작한 인간에게 놓여 있는 것은 무한함 뿐이다. 그것이 무지의 무한 일지 지식의 무한 일지, 옳을지 그를지, 죽음인지 삶인지 그것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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