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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나의 초록목록 (허태임) - 김영사

야곰야곰+책벌레 2022. 8. 1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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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만큼 자신의 서식지를 지키는데 서투른 종족이 있을까? 어떻게 보면 무관심한지도 모르겠다. 동식물학자들의 하나같은 생각이다. 인간은 벼랑 끝으로 떨어지기 전까지 멈추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동안에도 생물은 하나씩 절멸되어 간다. 식물 또한 예외일 수는 없다. 인간들의 서식지를 넓혀가며 많은 식물들은 서식지를 잃었다. 많은 종이 지구에서 자취를 감쳤다. 그럼에도 지난 코로나로 인간의 활동이 잠시나마 중단되었을 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많은 생물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얼마나 외로운 곳에서 살고 있었을까.

  자신을 초록 노동자라로 불리는 식물학자의 삶의 기록이자 우리나라 생태계의 기록이다. 아름다운 식물들의 모습이 사라져 감을 안타까워하는 이 작품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태초의 바다에서 생명체를 만들어낸 것도 식물의 엽록체로 변화한 시아노박테리아다. 육지로의 첫걸음을 내디뎠던 것도 이끼류와 같은 식물이었다. 우주의 모든 것들은 같은 원소로 구성되어 있고 그런 면에서 식물들은 우리의 조상이라고 해도 잘못된 건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식물은 광합성으로 우리에게 충분한 산소를 공급해 주며 많은 병을 이겨낼 수 있는 약들의 재료가 된다. 우리는 발전이라는 명목 아래 식물의 터전을 없애며 우리의 서식지를 갉아먹고 있다. 목숨을 갉아먹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경쟁을 부추기던 시절이 있었다. 덕분에 치열하게 경쟁하는 사회가 되었고 이기주의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공진화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아졌다. 얼마 전에 유행했던 책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처럼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공생하며 진화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식물에 대해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동식물학자들의 책은 소중히 나눠야 한다. 

  식물은 여러 면에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약효가 있다거나 희귀해서 값어치가 나간다는 얘기가 돌면 삽시간에 사라진다. 다 인간의 짓이다. 석회 토양에는 시멘트 공장을 짓고 길을 내기 위해 산을 허물기도 한다. 해안에 들어선 제련소는 수온을 상승시키고 중금속을 내어 놓으며 식물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기후가 오르기 시작하며 침엽수들은 멸종 위기가 되었다. 간빙기에 자연스레 찾아올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빠르게 멸종하는 생물들이 늘고 있다.

  사실 책은 이렇게 거창하지는 않다. 식물을 사랑하는 이의 생각이 곳곳에 묻어 있는 것을 뿐이다. 여느 식물학자들의 책처럼 책은 잔잔하며 주위에 널린 풀떼기 하나라도 사랑스럽게 보는 감각이 있다. 남들은 잘 가지 않는 길이었지만 자신에게는 너무 맞는 길이었고 식물을 발견하고 기록할 때마다 느끼는 두근거림과 사랑 그리고 안타까움은 책 속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수많은 이름들 중에서 '수구'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자수를 놓은 듯 아름답게 피는 둥근 꽃이라는 뜻이다. 수국을 얘기한다. 향유가 지천에 깔리면 가을이 왔다는 증거다. 계절을 알리는 흔한 풀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구절초나 국화도 그렇다. 아스팔트와 빌딩으로 뒤덮인 도시에서는 보기 쉬운 광경은 아니게 되었지만.. 

  저자처럼 나도 초등학교 때 우산이끼나 솔이끼를 계곡 근처 습한 곳에서 보곤 했다. 산과 들에는 무수한 식물들이 있었고, 나물이며 산딸기며 복분자 그리고 개살구도 있었다. 지금의 아이들이 관찰 실험을 하려면 인터넷으로 구매해야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벌레를 보면 호랑이라도 본 듯 기겁하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 안되어 보인다. 시골에서 벌레들과 놀았던 나로서는 해로운 곤충과 그냥 곤충도 구분하여도 잡는 법도 알고 있다. 근데 이것도 안 하다 보니 머뭇거리게 되기도 한다. 아마 요즘 애들 중에 꿀벌과 꽃등애를 구분할 구 있는 애들은 없지 싶다. 우리는 진짜 벌에 쏘여 가며 꽃등애를 잡곤 했으니까…

  책은 흔히 접할 수 있는 것과 귀한 것을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처한 실상 또한 얘기한다. 국력이 약한 시절 우리의 식물 분류는 일본에 의해 이뤄졌고 많은 강대국들이 우리의 식물을 가져갔다. 산천에 널린 식물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하겠지만 지금은 원산지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만큼 '돈'과 '권력'으로 바뀌었다. 자생하는 식물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생물 주권이다. <식물학자의 노트>를 읽어보면 독도 자생종의 학명에 '다케시마'가 붙어 있는 슬픔도 확인할 수 있다.

  글은 식물처럼 잔잔하다. 그럼에도 저자의 호소는 그렇게 잔잔하지는 않은 듯하다. 어쩌면 사라져 버릴 식물들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식물은 인간에 가장 빠르게 경고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연에 대해 더 다정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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