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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구 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 (헨리 지) - 까치

야곰야곰+책벌레 2022. 8. 10.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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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가 탄생하고 45억 년. 지구의 시간에서 생명의 역사는 그저 찰나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기체와 먼지 그리고 얼음으로 이루어진 우주의 티끌이 모여 태양이 만들어지고 또 지구가 만들어졌다. 파편들은 서로 부딪쳐 합해지기도 깨져 나가기도 하면서 지구와 달도 만들어졌다. 부글부글 끓고 있던 지구는 층이 나눠지며 바다가 만들어지고 땅이 만들어졌다. 어떻게 생명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유구한 지구의 역사 속에서 생명은 한 걸음을 떼었다.

  지구가 생겨난 지 1억 년이 지나자마자 생명은 생겨났다. 운석이 떨어지고 화산이 폭발하는 그 한가운데에서도 생명은 있었다. 어떻게 보면 긴 역사이지만 각각의 개체들로 본다면 너무 짧은 지구 생명의 이야기는 까치글방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지구에 대기가 없던 시절은 충분히 따뜻하기도 했지만 태양으로부터 내려 쬐는 자외선을 막아줄 오존층이 없어 견디기가 어려웠다. 해수면 깊은 곳에 자리 잡지 않으면 모두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이용한 최초의 생물은 지금은 엽록체가 된 시아노박테리아다. 자외선을 흡수하는 색소를 진화시켜 에너지로 사용하였다. 우리가 말하는 '광합성'이다. 광합성의 부산물로 발생한 산소는 가장 위험한 물질이었다. 산소는 여러 세대에 걸쳐 생물들을 태워 죽였다. 이것은 지구 역사상 최초의 멸종이다. 이 '대산화 사건'은 지구 표면을 산화시켜 엄청난 양의 산화 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해서 '산소 혁명'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암석들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했고 지구는 최초이자 최대의 빙하기에 돌입한다. 불 같은 지구가 갑자기 눈덩이 지구가 되어 버렸다.

  산화 사건으로 발생한 진핵 생물은 영양분을 흡수하고 노폐물을 내보낼 특별한 공간인 입을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혁명인 항문이 생겨났다. 바닷속에서 살던 초기 생물들의 노폐물은 수중에 그대로 부유했는데, 단단한 배설물을 만들어 냄으로써 배설물은 깊은 곳으로 떨어지고 부패세균도 해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해수면은 보다 깨끗해지고 산소도 풍부해졌다. 항문으로 인해 머리와 꼬리가 생긴 생물은 방향성을 가지게 되었고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육지에서 살아가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첫째로 지구에서 육지는 오랜 시간 존재하지 않았고 둘째로 부력이 없는 육지에서 생물은 자신의 체중을 견딜 수 있어야 하고 내려쬐는 햇볕에 말라죽을 수도 있다. 수분막이 없어진 아가미는 숨을 쉴 수 없다. 최초의 육지에는 나무 한 그루 없었기 때문이다. 조류가 육지의 웅덩이에서 살게 된 게 발단이 되었을 것이다. 이끼류는 육지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끊임없이 만들었고 균류는 땅 속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육지에는 최초의 식물이 하늘을 향해 치솟게 되었다. 지금도 토양 균류와 식물은 공생 관계다. 균류는 식물이 영양분이 되는 무기질을 흡수하여 공급하고 광합성으로 만들어진 양분을 제공받고 있다.

  동물이 육지로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알' 덕분이었다. 물이 없는 상태에서도 완벽하게 수분과 영양분을 보존할 수 있었다. 알은 굉장히 효율적인 생식 방법이다. 딱히 돌볼 필요도 없고 어미의 행동에 제약을 받지도 않는다. 생존에 더없이 유리했다. 임신하여 입덧과 불편한 몸으로 다니는 임산부들에게 '알'은 더없이 좋은 선택지일지도 모르겠다. 포유류도 처음에는 알을 놓았다고 하니 박혁거세의 신화도 일리가 있을까?

  대륙의 생성 그리고 이동은 늘 생명체에게는 위협이었다. 그럴 때마다 화산이 분출하고 마그마는 쏟아져 나왔다. 지구가 내뿜는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와 분진들은 지구를 뜨겁게도 차갑게도 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들 뿐이다.'라는 말처럼 생명들은 절멸과 탄생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탄생의 이유는 같지만 죽음의 이유는 모두 다르다는 말처럼 때로는 너무 뜨거워서 때로는 너무 추워서 멸종했다. 공룡은 느닷없이 떨어진 직경 50km 정도 되는 운석에 의해서 절멸되었다. 

  그러는 사이 육상에 안착한 식물들은 꽃과 열매를 만들었다. 곤충과 동물을 유혹하여 번식의 매개자를 구했다. 지구 상에 가장 거대한 개체인 식물과 가장 많은 개체인 곤충의 공생 관계가 시작되었다. 

  포유류의 폭발적인 성장은 가혹한 환경에서 기인했다. 해변은 폭풍으로 파괴되고 바다와 떨어진 육지 대부분은 사막이었다. 동물들은 굴을 파고 들어가 낮의 열기를 피했다. 밤이나 새벽에 사냥하기 위해서 필요한 청각, 촉각, 후각은 포유류가 가지고 있었다. 지상의 낮이 포유류의 것이었다면 밤은 포유류의 것이었다. 변화하는 지구에서 적응하기 위해 공룡은 덩치를 키웠다면 포유류는 뇌를 키웠다. 작은 덩치에 비해 큰 뇌는 작은 개체에게는 엄청난 부담이었다. 그래서 포유류는 알의 수를 줄이고 새끼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게 되었다. '젖'의 탄생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직립 보행을 하던 호미닌은 왜 두 발로 걸었는지 모른다. 모든 동물은 두 발로 걸을 수 있어도 이내 네발로 걷는다. 공룡도 이족 보행을 했지만 그들에게는 꼬리가 있었다. 임신한 암컷에게는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들은 변화하는 몸에 적용해야 했고 태아가 지면에서부터 높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늘 불안정하다. 그리고 발을 들어 놓을 때에는 높은 수준의 제어력이 필요하다. 이런 비효율적인 이족 보행을 왜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공룡보다 더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춤을 추고, 활보하고, 회전하고, 발끝으로 돌 수도 있게 되었다. 그들이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유인원의 진화도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폐경은 인간만이 이루어낸 또 다른 진화적 혁신이다. 일반적인 동물은 나이가 들어 번식이 불가능해지면 노화되어 죽는다. 하지만 인간은 폐경을 만들어냄으로써 번식의 주체가 아니라 도움의 주체가 된다. 인간의 뇌가 성장하면서 무력한 아이가 태어났고 동시에 할머니가 등장했다. 번식의 경쟁자에서 협동의 대상자가 되어 자손을 번창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생명이 연장되었다. 진화가 압력은 여성과 남성에게 서로 다르게 작용하지만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에 여성의 진화는 남성에게도 영향을 주어 더 오래 살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성은 여성보다 오래 살지 못한다. 

  수명의 연장은 지식과 지혜 그리고 역사를 가져왔고 이야기의 저장소는 연장자들의 머리 속이었고 그들은 늘 대접을 받았다. 학습하는 종은 많지만 가르치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  

  지금 한 참 이슈 중인 기후 환경과 생태계의 문제도 지구의 입장에서는 길게 보면 10만 년보다 짧게 보면 2만 5천 년마다 겪던 일이었다. 그리고 지구가 나이가 들어 자기력이 약해지고 대륙의 이동이 멈추게 될 때까지 계속해서 보게 될 현상이다. 인간이 지구가 보존하고 있던 자원들을 사용해서 그 속도를 높였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하지만 온난화된 기후는 빙하를 녹일 것이고 그렇게 바닷속으로 들어간 빙하들은 바다의 온도를 낮추고 염도를 낮춰서 지구를 빙하기의 초입으로 옮겨 갈 것이다. 지구는 늘 빙하기와 간빙기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 속에 살아남더라도 우리는 점점 잃어가는 다양성으로 언젠가는 절멸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10억 년이면 모든 생명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절망할 필요는 없다. 지구는 여전히 잘 견디고 있고 생명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멸종은 알아채지 못한 채 진행되었지만 인간은 스스로 알아채고 있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한 편의 대하소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드는 책이었다. 너무 재미있어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 듯했다. 물론 등장인물은 러시아 소설을 보는 듯 한 알 수 없는 공룡이름들과 생명체 이름들이 쏟아져서 외울 수 없었지만 잠깐 등장하고 사라질 인물까지 우리는 외면서 글을 읽지는 않으니까. 스토리 진행에는 큰 영향은 없다.

  과학서 같지 않은 과학 서면서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었고, 지식을 정돈하고 때로는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350페이지에 100페이지가 레퍼런스라는 점은 이 책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싶었는지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부담스럽지 않게 생명의 이야기에 빠져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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