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레인의 보컬 '이성우'씨의 상담 기록이라고 해야 할지, 에세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정신의학박사 한덕현 교수의 교양 심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팬데믹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립되고 생계 전선에서 강제적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공연으로 삶을 지탱하던 노브레인의 이성우 씨도 그중 한 사람이다. 무대에서 뛰어놀던 사람들은 나와 같이 팬데믹 전과 후가 전혀 다르지 않은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다. 그들이 내면에 쌓인 화와 불안감에 대한 얘기에서부터 삶과 행복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으로 퍼져 나간다.
코로나로 손발이 묶여 공연을 하지 못하고 줄어드는 수입에 동료들의 한숨이 깊어 간다. 우리 모두가 겪었을 고립과 불안 그리고 분노에 대한 록커 이성우 씨의 솔직한 질문과 담담히 대답하는 한덕현 교수의 글은 한빛비즈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실 책 속에 들어간 내용은 여느 에세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차분한 설명 또한 익숙한 말들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크게 새로울 것이 없는 책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조금 독특한 점은 상담자가 록커라는 것이고 담당의가 스포츠 정신의학을 전공한 의사였다는 점이다. 화려한 삶이면서도 비주류 속에서 세상을 헤쳐온 한 명의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괜찮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특별할 것 같은 이야기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점 또한 볼 수 있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서로 많은 부분이 닿아 있는 것이다.
우울증이 생기는 이유는 분출해야 하는 공격성이 바깥으로 향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분노는 목표를 정해 분출해야 하는데 이번 팬데믹은 그 특정 목표를 지정하기가 쉽지 않다. 정부를 욕하는 사람들도 있고 무고한 시민들에게 화풀이하는 사람들도 종종 만나게 되지만, 어떻게 보면 배려가 있는 사람들은 공격성을 내뿜지 못한 채 내면을 파고드는지도 모른다.
사실 시작은 팬데믹의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하는 상담으로 시작하지만 대화는 결국 인생 전반으로 퍼져 나간다. 나이 듦에 관한 얘기, 소울푸드, 고향의 존재뿐만 아니다. 꿈, 지속성, 정체성, 이별, 콤플레스, 페르소나 등 정말 다양한 주제가 거침없을 것 같은 라커의 문장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사실 교수님의 문장보다는 이성우 씨의 문장이 더 신성하고 좋았다.
그럼에도 정말 좋은 한 문장을 찾을 수 있었는데, (물론 전반적으로 모두 좋은 얘기다. 단지 너무 많이 보았던 문장이었을 뿐) 그것은 힘들다는 푸념에 대한 한덕현 교수의 스승님 답변이었다.
지금 네가 힘들다는 것이 커가고 있다는 것이다.
안 된다는 것은 누군가가 너를 견제하는 것인데,
그만큼 네가 큰 것이다
이런 식의 위로가 참 좋았다. 대부분의 일은 눈앞에 갑자기 등장하는 것 같지만 물 밑에서는 정말 많은 일이 있다. 우리가 물에 떠 있는 오리를 자주 예를 드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전문가 아니라도 진심을 다하면 그것이 '진짜'라고 얘기하는 이성우 씨의 생각도 좋았고 인생은 꾸준히 하면 결국 잘하게 되니 걱정하지 말고 시작하기나 하라는 얘기도 좋았다. 비주류라서 심심한 세상에 재미를 던져줄 수 있어 좋다는 마인드와 록커라는 페르소나의 그림자에 숨지 않고 당당하게 '러블리즈'를 좋아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덕밍 아웃 (워낙 유명한 일이라)도 멋있었다. 무엇보다 대단하다고 느낀 것은 자신의 목에 무리가 가는 창법을 고치려고 25년 차 보컬이 보컬 레슨을 받으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이 책은 '록커'의 입장에서의 삶에 대한 질문이라고 해도 좋고, 그저 대중 중에 한 사람의 이야기며 우리의 이야기라고 해도 괜찮다. 이런 구성의 책을 고르고 있다면 조금은 독특하고 조금은 유쾌한 이 책은 괜찮은 선택일 수 있다. 이런 책을 많이 읽은 사람에게는 몇 가지 새로움을 찾는 재미 정도는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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