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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물의 소멸 (한병철) - 김영사

야곰야곰+책벌레 2022. 9. 29.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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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화 시대를 지나 엄청난 속도로 연결되는 사회에 진입하였다. 그런 사회 속에서 우리는 또 빠르게 단절되어 간다. 이번 팬데믹은 개인이 연결과 단절의 모순적인 상황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야말로 양자역학의 세상에 사는 우리의 웃픈 모습이다. 메타버스라는 가상의 세상은 빠르게 확장되어 간다. 디지털은 많은 사물을 데이터로 만들어 사라지게 만든다. 많은 사물들은 '반려-'를 접두어로 붙여가며 겨우 우리 곁에 머무른다. 사물은 소멸하고 인간은 단절된다.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우리가 관계나 소유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은 이 책은 김영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은 굉장히 친절하지 못하다. 급격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철학의 역할의 끝을 잡으려고 하는 것인지 그 자체로 성찰인지는 잘 모른다. 작가의 의도는 디지털로 바뀌는 사회에서 나올 수 있는 부조리에 대한 철학적 사유임에도 틀림없다. 하지만 딱딱한 문장, 수없이 언급되는 철학자들의 말, 전문적인 용어들은 하나의 각주도 달지 않고 달린다. 논문도 아니고 원론서도 아닌듯한데 대중적이지 못하다. 뭔 말을 하고 싶은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데 이렇게 꾸역꾸역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마지막에 등장한 '주크박스에 관한 여담' 정도만 적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었다.

  개인적 느낌은 각설하고 얘기하자면, 사물은 삶의 연속성 상에 존재하는 것이며 변하는 사람 앞에 머무르는 하나의 친숙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로 이뤄진 정보는 하염없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인간의 변화보다 빠른 정보는 인간에 안정감을 주기보다는 주의를 끈다. 존재의 증명이 진실이라고 한다면 이제는 정보의 효과가 진실이 되어 버린다. 그런 면에서 가짜 뉴스도 정보가 되어 버린다. 

  노동하는 인간(호모 파베르)은 이제 놀이하는 인간(호모 루덴스)으로 바뀌어 간다. 손은 노동과 행위의 기관이었다면 손가락은 선택의 기관이다. 인간은 행위하는 대신 선택하기 시작했다. 소유하려 하지 않고 단지 체험하려 한다. 그 속에서 사물의 존재와 가치는 희미해져 간다. 니체는 "마지막 인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노동한다. 노동이 오락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종말의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소유는 사람과 사물이 맺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라고 발터 벤야민은 말했다. 타자는 '여기 있음'으로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정보일 뿐이다. 관계되거나 의미를 부여하거나 바라보는 것들에서 멀어져 그저 '선택'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린다. 우리는 '관계'를 '소비'할 뿐이다. 느슨해진 관계는 언제든지 연결될 수도 언제든지 단절될 수도 있다. 닿을 수 있는 것의 의미는 '온기의 전달'로 얘기할 수 있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온기는 과연 전파를 타고 전달될 수 있을까?

  사물의 가치는 '변하지 않음'에 있을까.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므로 '사람보다 느리게 변함'에 있을까. 시간을 공유하는 사물에게 사람보다 느리게 변하는 사물에게서 안정감을 받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세상은 점점 더 빨라지고 아날로그가 디지털화된다고 얘기되고 있지만 그것의 구분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사물의 의미는 '소유', 물건의 의미는 '형체', 형체의 의미는 '생김새', 모양은 결국 '어떠한 방식'으로 귀결된다. 인간이 부여한 방식과 의미에서 사물은 그 형태만 바뀌어 온 건 아닐까? 석판에 새긴 글이 붓으로 쓰이고 그것이 다시 인쇄되고 현재에 이르러 화면 속에 점들의 집합이 되었다고 해서 의미가 바뀐 것일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는 결국 '정보량'의 차이다. 아날로그에서 나타나는 예기치 못한 정보의 첨가가 그것의 향수라면 그 또한 의미가 있다. 단지, 더 빨리 소비되고 더 쉽게 변경할 순 있다. 오감으로 느끼는 정보가 현재는 눈과 귀에 집중되고 있지만 그것이 신경으로의 확장을 가져온다면 디지털의 정보량은 아날로그에 가까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정보의 관리가 우주의 섭리에 의해 이뤄지는 대신 인간의 관리 아래 놓인다는 불편한 심리가 있을지라도.

  사물은 소멸하지 않고 그냥 그 형체가 변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책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인간이 사물을 소유하던 시대를 지나 사물(기계)에 인간이 맞춰지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깨어 있음을 실천하고 지속적으로 사유하지 않으면 사물의 소멸을 넘어 인간의 사물화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인간은 인간이 만든 덫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런 식의 조금은 불친절하고 어려운 텍스트를 읽어 보는 것도 나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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