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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 - 문예출판사

야곰야곰+책벌레 2022. 8. 4.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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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의 진한 향기에 취한 듯 탄성을 지르며 읽어 나갔다. 문제 제기 그리고 확신에 찬 문장들은 얼마나 많은 사유 뒤에 따라오는 결과인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었던 홉스, 루크 그리고 마키아벨리 더 나아가 그리스 철학자까지 불러들여 기존의 것에 대해 반문하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작업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니 즐겁기까지 했다. 이것이 철학의 재미인가 싶다가도 누구의 책을 읽었어도 이런 감정일까?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이재형 역자는 루소를 굉장히 심오하게 연구하신 분인 것 같다. 문장에 빨려 들여가는 나를 본문보다 많은 주석으로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 루소가 낸 책 보다 역자가 쓴 해설문이 훨씬 길만큼 책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으로도 역자가 루소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것 같았다. 

  유발 하리리가 <사피엔스>에서 농경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얘기하는 이유는 이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레이 달리오가 <변화하는 세계질서>에서 얘기한 제국의 흥망성쇠의 법칙 또한 담겨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은 누군가 '오두막'을 짓고 '재배'를 시작하면서 생겨난 '소유'. 그것은 인간의 이성에 불일 지폈지만 상호 의존적인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인간의 악덕의 시작은 바로 '사회'였고 사회는 권력이 집중되었다가 다시 폭발하여 흩어진다. 마치 항상이 만들어지고 폭발하는 것처럼.

  인간의 불평등을 얘기하려면 문명사회의 인간의 시작으로 자연인을 정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 루소의 생각이다. 사회적 인간의 특징을 자연인에게 부여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진화의 법칙을 따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숨에 자연인과 직면해야 한다. 그는 생제르맹 숲에 은거하며 사유를 시작했는데, 그것은 농경이 시작되고 불평등이 심화된 지금 미개인들이 숨어든 곳이 바로 숲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불평등을 얘기하려면 자연 상태의 인간의 정의가 필요하다. 기준을 가진 뒤에야 우리가 지금 그것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냐를 알 수 있다. 인간의 불평등이 생긴 과학적 원리를 찾는 것이 아닌 그것을 유발한 인간의 동기에 대한 고찰이다. 인간이 갑자기 도구를 쓰게 되고 농경을 시작하고 말을 하고 글자를 남길 수 있게 되었느냐는 이 책에서 다루지 않겠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자연인은 자연의 법칙에 따랐다. 그 법칙에는 물리적 법칙과 도덕적 법칙이 있다. 물리적 법칙은 거부할 수 없는 법칙이기 때문에 제외한다. 도덕적 법칙에는 자기애와 연민의 두 가지 원칙이 존재한다. 자기애는 스스로를 보존하려는 자연적인 사랑이다. 하지만 사회가 끼치는 해로운 영향을 받아 이기심으로 바뀐다. 이기심은 자기애와 다르게 독점적이며 상대적인 감정이다. 결코 만족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의존적이다. 이기심은 자연적 불평등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연민은 모든 동물이 가진 감정적 원칙이다. 모든 감각적인 존재가 죽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면 자연스럽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연민은 인간의 자연적 선의를 이루며, 선의 위에 구축된다. 연민은 자기애와 대립하지 않을 때만 작용한다. 연민이야말로 모든 사회적 미덕의 근원이다라고 루소는 주장한다.

  인간에게는 두 개의 불평등이 있다. 하나는 자연에 의한 불평등으로 나이, 건강, 체력 그리고 개인적인 체질 더 나아가 장애처럼 자연적이거나 신체적인 불평등이다. 또 하나는 합의에 의한 불평등으로 정치적인 불평등이다. 부유하든지, 유력하다든지 등의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며 누리는 특권들에 의한 불평등이다.

  자연인은 상호 독립적이어서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불평등이라는 단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사냥을 위해 필요한 언어는 단순한 몇 개의 고함소리뿐이었고 강한 자가 약한 자로 강탈이 있을지 언정 그 상태로 문제는 해결된다. 남녀 사이의 관계도 필요에 의한 것일 뿐이다. 자식도 독립시키고 나면 남과 다르지 않았다. 독립적이었기 때문에 비교가 필요하지 않았고 잘생기고 예쁘고 같은 의미도 필요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어떤 이유로 '오두막'을 세우고 농경을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인간이 길들인 동물에게 그들의 능력보다 더 큰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동물의 능력을 잃게 만들 듯 사회화된 인간은 약해지고 겁 많고 비굴해졌다. 힘과 용기를 모두 잃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사회화를 가속시켰다. 일은 분업화되었고 어느 순간 가치와 매겨지기 시작했다.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개인의 능력의 비교가 시작되었다. 얼굴의 생김새나 몸매 그리고 춤과 노래. 모든 것이 비교되기 시작하였고 자신의 평가는 타인에게 전가되었다. 

  이런 몇 가지 운으로 부의 불평등은 시작되었다. 모든 불평등은 소유로부터 출발했던 것이다. 가진 자는 가지지 못한 자의 노동력에 기생하여 부를 유지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자의 부에 기대에 살아가게 되는 상호 기생의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자연이 내린 권리인 자유는 가진 자를 불안하게 했다. 가진 자는 착취를 하고 가지지 못한 자는 약탈을 했다. 가진 자는 자신의 부를 지켜줄 사회적 동의가 필요했다. 그러고 만들어진 것이 법이다. 

  루소는 주권을 얘기한 최초의 인물이고 민주주의를 지향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주권을 양도될 수 없는 자연이 내린 권리라고 했으며 법은 모든 인간의 의견이 모인 하나의 일반 의지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를 옹호했으며 대의 민주주의는 비판했다. 투표날 하루 자신의 권리를 행사하고 다시 노예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진정한 주권 행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집행자는 시민의 대리인일 뿐이고 그들은 일반 의지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라는 것도 결국 일반 의지를 유지하는 하나의 기구인 것이다.

  하지만 권력은 자연스레 하나로 모아지는데 민주 정치는 귀족 정치로 귀족 정치는 군주 정치로 바뀌고 '자유'가 있는 시민은 이를 거부할 권리도 있기 때문에 군주 정치는 다시 흐트러져 민주 정치로 회귀한다. 경제적으로 본다면 꼭 필요한 산업인 농업은 모두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격을 올릴 수 없고 부를 축적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도시로 몰리고 귀중품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된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을 포기하고 부유하지만 부유하지 않게 된다. 이는 가난하지만 부유한 국가에게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이 대목은 레이 달리오의 제국의 흥망성쇠와 똑같다.)

  그렇다고 루소는 다시 자연 상태로 돌아가자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완성 가능성'으로 자신의 능력을 완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인간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양립한다. 하지만 이 능력은 양날의 칼과 같다. 인간은 타락하면서 완성되어 간다는 문장은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이 새로운 사회라는 환경에서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으려면 법과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정치권력은 쏠릴 수 있기 때문에 그 흐름을 늦추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함께 모여 토론하는 장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마치 아테네 민주주의처럼 (단, 참정권은 모두에게 주자). 자유는 평등에 의해 보장된다. 우리 사회는 모두 계약에 의해 우리의 권리를 양도한 상태에 있으며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받는 권리로 그 계약을 파괴할 권리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자신을 더 들여다 보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인간은 원래부터 자신이 자신을 평가하는 존재였다. 소유의 출발은 자신보다 타인에게 관심을 가게 만들었고 타인을 좋아하는 마음은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는 영원한 불행 속에 밀어 넣어 버렸다. 타인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나부터 행복해라라고 말하는 문장에 의미가 있다. 

  부의 탄생은 곧 불평등의 탄생이다. 그리고 인간은 의지하는 나약함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권리를 내팽개친 채 부의 불평등에 허덕이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권리를 양도해 준 주체들을 감시하고 제대로 하지 않을 때 경고할 수도 있어야 한다. 전체주의나 독재가 되었을 때 뒤집을 수 있는 힘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원래부터 평등한 존재이고 그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돌아갈 수 없는 존재다. 가진 것에 행복하지 못하고 잃을 것에 불행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또 새로운 법칙을 만들어가며 살아갈 수 있다. 루소가 말하듯 인간에게는 '완성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전복되는 체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자연권과 그리고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법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리인들이지만..) 

루소의 깊은 사유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깊은 수렁에 빠지지 말라고 역자가 이성적으로 계속 챙겨주는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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