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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한국사 1: 전근대편 (한국역사연구회) - 돌베개

야곰야곰+책벌레 2022. 9. 1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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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교학사 파동에 이은 2015년 국정 교과서 파동을 겪고 우리 역사에 대한 객관적인 책의 필요성을 느낀 분들이 오랜 시간을 걸쳐 작업을 진행하였다. 집필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탄핵도 이뤄지고 국정 교과서도 폐기되었고 교열하는 시간 또한 많이 흘렀다. 책 출간 자체에 회의를 느낀 시간도 있었지만 이 책의 필요성을 느낀 50여 명의 필자, 20여 명이 넘는 교열위원들은 결국 이 책을 발간해 내었다. 사건에 대한 해석보다는 사실 자체를 드러내려고 노력했다고 책의 서문은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두 권의 한국사 중 첫 번째로 선사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그야말로 한 권의 국사책이며 담백하고 쉬운 문장으로 풀어져 있다. 중간중간 시대를 반영하는 한자어들이 등장하지만 읽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국사 교과서를 다시 읽는다는 기분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세계사나 다른 나라의 역사보다 알고 있는 내용이 많았고 그래서 이해가 쉬웠다. 하지만 어느 책 보다 감정 이입이 많이 되었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답답해하며 역사를 다시 한번 훑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고대 국가에서 신화는 대부분 하늘로부터 선택받은 존재라는 것을 드러낸다. 이것은 고조선의 단군 신화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단군왕검은 특정 인물의 이름이 아니라, 당시 지배자를 가리키던 일반적인 호칭이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제사장을 뜻하는 '단군'과 정치적 지배자를 뜻하는 '왕검'의 합쳐진 호칭이었다. 단군만 기억하던 고조선의 역사 속에도 여러 왕들이 있었고 준왕을 몰아낸 위만이 지배하기 시작한 위만조선과 왕검 조선으로 나눠지기도 한다. 고(古)를 붙인 '고조선'은 위만 이 전라는 뜻이며, 우리는 '왕검조선', '위만조선'을 모아서 고조선으로 부르며 이성계가 세운 '조선'과 구분하기 위해서 '고'를 붙인다.

  고구려는 고을이나 성을 뜻하는 '구루'나 '홀'을 한자로 표기한 '구려'에서 유래했다. 이는 주몽이 부여에서 남하여 고구려 건국 전에 이미 문화와 정치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주몽과 계루부 세력은 주도권을 장악했다. 소서노의 아들 온조는 주몽의 아들 유리가 찾아오자 형 비류와 함께 남하하여 백제를 세웠다. 신라는 나정이라는 우물가에서 발견된 붉은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가 시조다. 박혁거세를 기른 6 촌장은 고조선의 유민이라는 기억을 가졌는데 실제로 경주에는 고조선에서 유행하던 널무덤이 많이 분포하며 철제 부장품도 다량 출토된다. 금관가야의 시조는 수로왕이다.

  신화는 나라의 시조가 모두 천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99.9%이겠지만 신화를 읽는 일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이 우리 역사이기 때문에 더욱 좋았다. 어릴 때 익힌 고구려, 백제, 신라의 이야기는 정말 재밌었다. (가야도.) 우리 역사도 세계사의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왕권이 약해지고 귀족들이 득세하며 부패와 저항이 강해질수록 나라가 위태로워졌다. 강성했던 고구려도 연개소문이 죽자마자 사분오열되었다. 연개소문이 신라에서 온 김춘추와 외교를 긍정적으로 했다면 역사는 바뀌었을까? 

  신라에는 선덕왕과 진덕왕이라는 두 명의 여왕이 존재했다. 여자가 왕을 한다고 당나라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했지만 신라는 여왕을 추대하였다. 이는 진골이라는 계급 사회가 여성, 남성을 가르는 시선보다 더 높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고 남자보다 더 대장부 같았던 여왕이기도 했다. 이는 고려까지 이어지는 면이 있다. 고려 또한 모계사회였고 결혼을 하면 남편은 처가로 들어가 살았다. 그리고 이혼과 재혼이 가능했으며 일부 일처제가 기본이었다. 왕의 경우에는 여러 처를 거느릴 수도 있었지만 대부분 한 명의 부인만 두었고 사별 후에도 재혼을 하지 않은 왕도 많았다. 모계사회였기 때문에 유산은 아들과 딸 구분 없이 나눠주었으며 외가와 친가의 호칭 구분도 없었다. 고려사를 읽다 보면 지금보다 더 평등한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깨어지는 것은 조선으로 들어서면서부터며 부계사회가 되며 장자에게 대부분을 물려주는 풍습이 생기는데 이것은 꼭 부계사회이기 때문만은 아니라 대체로 물려줄 것이 많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고 한다.

  조선으로 들어서면 세종대왕의 이야기와 붕당정치, 노론과 사림의 대립, 서인과 동인, 이것이 쪼개져 북인과 남인 그리고 노론과 소론으로 쪼개진다. 나중에는 노론과 남인이 주로 보였다. 조선은 가장 강성했던 원나라에 여러 번 침입을 겪고 신화의 나라로 지내기도 했고 왜구의 침략을 받은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피폐해졌다. 이런 전쟁으로 황폐한 땅과 줄어든 인구를 복구하는 데는 100년의 세월이 걸렸다. 영조와 정조를 지나고 나면 제대로 왕권을 휘두른 왕들이 적다. 왕비의 집안에 휘둘리며 나라는 피폐해져 갔다. 흥선대원군이 왕권을 수복하려 노력했지만 그 덕분에 서양 국가와 교류가 다소 느려지기도 했다. 서구의 배 수천 척이 바다로 몰려와 조선을 점령하고 천주교를 핍박에서 해방시킬 것이라는 예언을 인용한 황서영의 <백서>가 조정이 들키는 바람에 대원군의 서구 배에 대한 저항은 더 심각해지고 천주교가 국가전복 세력이 되어 버리기도 했다.

  사실 근현대사가 궁금해서 구입한 책이었지만 그것은 모두 2권에 담겨 있을 터이다. 개항부터 현대까지는 2권이 다룬다. 1권은 우리가 학교를 다니며 배운 국사의 내용을 답습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대로를 담아내고 있으며 여러 해석이 있는 경우에는 해당 주석을 담고 있다. 그리고 야사에서 나올 법한 정치적인 해석들은 모두 피하고 있다. 역사의 사실만 나열하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책은 독서를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한 권의 한국사 책으로 서재를 채우기에도 가치가 있다. 하나의 백과사전처럼 시대상을 여러 방면으로 쪼개어 설명하고 있다. 물론 세세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담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이어 나가기에도 충분하다. 나중에 한국사를 살펴볼 때 참고 서적이 될 듯하고 아이들의 한국사 공부나 숙제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정치색에 기울어지지 않은 담백한 역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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