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탐험가라는 찬사를 듣던 인물이었다. 최근에 들어서 그는 잔혹하고 망상에 빠진 제국주의의 앞잡이라는 평가절하를 겪고 있다. 제국을 이끈 수많은 영웅들의 업적은 칭송받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전쟁이라는 잔인함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로 진출해 결국은 영원히 그 땅을 차지하게 된 유럽인들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가 한 정치적인 행동 이면에는 생태학적이 변화의 바람도 있었다.
판게아 쪼개진 이후 각각의 대륙은 고유의 생태계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특히 아메리카 대륙은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그동안 분리되어 있던 생태계를 잇는 역할을 했다. 이 작업은 지구상의 거대한 번역을 일으켰다. 호모제노센(Homogenocene, 균일화 동질화)은 콜럼버스가 만든 생태학적 신기원이었고, 판게아의 재봉합이었다.
'콜롬버스적 대전환'은 아메리카의 작물들을 세계로 뻗어나가게 했고 그와 함께 병균도 전파되었다. 그와 반대로 질병과 곤충 그리고 식물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유럽인들의 노예 매매로 인해서 전 세계적인 인구 이동이 시작되었고, 멕시코의 혼혈인들이나 안데스의 머룬들처럼 엄청난 다양성을 지닌 인류가 탄생하게 만들었다. 지구는 떨어져 있지만 더 이상 다른 대륙이 아니게 되었다. 이것은 공룡 멸망 이후 가장 중대한 생태적 사건이다.
스페인이 안데스의 포토시에서 은광을 발견하면서 교역량은 순식간에 불어난다. 그 당시 중국은 외부 세계보다 월등히 앞서 있었기 때문에 딱히 필요한 물건이 없었다. 하지만 내수 경제를 책임질 현물 화폐가 필요했는데, 이것을 은이 책임을 지게 되었다. 중국은 스페인 상단으로부터 은을 끝도 없이 흡수했다. 스페인 상단도 아랍인들이 독점하던 중국의 비단과 도자기 등을 닥치는 대로 구매하였다. 안데스의 은은 중국으로 빨려 들어갔고 갑작스럽게 늘어나는 은으로 인해 중국은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겪게 된다. 이는 하층 계층들을 힘들게 했는데, 중국인들을 기근에서 구한 것은 다름 아닌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옥수수와 고구마였다.
스페인 또한 국가 재정을 위해서 아메리카에서 생산되는 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담배의 생산은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산업이었다. 그리고 남미에서 자라던 고무나무는 독점을 하고 싶어 할 정도로 탐나는 것이었다. 고무나무는 목화씨처럼 전 세계로 퍼졌지만 원산지는 남미였다. 전 세계적 생산을 함에도 고무 수요는 공급보다 앞서 있어서 고무 생산은 많은 이득을 주었고 많은 산림을 없애고 고무나무로 도배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작물은 감자였다. 안데스에서 생산되던 감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랐는데 기근에 시달리던 유럽에게는 그야말로 축복의 작물이었다. 단일 음식으로써는 최고의 식품이기도 했다. 감자의 등장으로 맬서스의 인구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럽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제국은 감자가 만들었다고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축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기근에 시달리던 중국 하층민들은 고산지대로 이동하며 산림을 불태우고 그곳에 옥수수와 고구마를 심었다. 계단식 논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무와 숲이 없어진 땅은 비가 내려면 영양분이 씻게 내려가고 산사태가 나기 일쑤였다. 유럽으로 옮겨진 감자는 다시 따라온 잎마름병과 감자 딱정벌레로 인해 대기근을 겪기도 한다. 유럽은 이를 막기 위해 농약을 개발하게 되는데, 그것은 질병과 해충도 진화하게 만들었고 천적마저 없애버리는 효과를 가져와서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결과가 되고야 말았다.
아메리카 대륙 또한 격변하고 있었다. 유럽인들과 함께 아메리카로 들어간 말라리아는 식민지 개척자들이 만들어놓은 모기 서식지 덕분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의 목숨을 걷어 갔다. 아프리카에서 몰려드는 아프리카인 노예들에게서도 말라리아와 황열병이 전달되었다. 항구에 정박하기만 해도 80% 이상이 목숨을 잃는 개척 작업을 유럽은 끊임없이도 도전했다.
원래부터 노예제도가 활발했던 것은 아니다. 노예보다 뱃삯을 인건비로 대신하는 계약 하인들이 2배 이상 저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이 병에 선천적 면역이 있던 아프리카 노예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예들은 도주를 하고 인디언들과 촌락을 꾸리며 숲 속에서 살아갔다. 밀림은 유럽인들에게는 위험한 곳이었지만 인디언이나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안식처와 같았다. 유럽인들과 이들의 싸움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이들의 전투는 거대한 미합중국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전쟁에서 지친 프랑스가 식민지를 미국에 팔고 돌아가 버린 것이다. 미국은 저렴한 가격에 땅을 모두 인수하고 거대한 미국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아프리카인들이 사피엔스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다. 인류 원조의 출발은 아프리카 동쪽 평원에서 출발했었고 대서양을 건넌 노예무역은 인간판 콜럼버스적 대전환이라 할 이동이었다. 아메리카의 초창기 도시를 채운 대부분의 군중은 아프리카인들이었고 농장에서 밀과 쌀을 재배하던 농부 또한 대부분 아프리카인이었다.
이 책은 세상이 집중하고 있는 콜럼버스가 가져온 경제적 세계화를 넘어선 생태적 세계화에 대해 얘기한다. 갑작스러운 세계화는 인류를 기근에서 구해내기도 했지만 많은 인류를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그리고 비인간적인 노예제도도 강화시켰다. 콜럼버스가 가져온 세계화로 세계 경제의 중심은 중국에서 유럽으로 넘어갔다. 모든 것이 유럽보다 빨랐던 중국은 이 세계화로 패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칭송하는 인간의 업적 이면에서는 무수히 많은 생태학적 작용들이 있었다. 인간의 자의식과 능력으로 발전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우리도 기후와 환경으로 인해 번식할 수 있는 환경과 그렇지 못한 환경을 감내해내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부처님 손바닥 위에 손오공이라는 느낌. 제국주의의 흥망성쇠도 수많은 작전의 승패도 모두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자연의 손길에 영향을 받았다.
신대륙 발견의 좁은 시선으로 바라보면 아시아 한편에 살고 있는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냐 싶었지만 감자는 강원도 감자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그 감자도 안데스 꺼야 라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옥수수나 고구마마저도 아메리카에서 왔다니.. 우리는 몇 해전에 장수말벌을 선물해서.. 미국 전역을 공포에 몰아넣어줬지만...
경제의 세계화, 생태계의 세계화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세계의 정세, 각 국가의 사정을 얘기해 준다. 뿐만 아니라 약자였을 인디언들이나 아프리카인들의 입장에 대한 얘기도 포함되어 있기도 했다. 어울려 산다는 것은 우리는 그저 인간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하나의 세계화다. 생태계도 그렇게 서로 적응하고 있다. 2세기 전의 멕시코시티의 다양성처럼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호모제노센의 정신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독서 (서평+독후감) > 역사 | 문화 |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민의 한국사 2: 근현대편 (한국역사연구회) - 돌베개 (0) | 2022.09.13 |
---|---|
시민의 한국사 1: 전근대편 (한국역사연구회) - 돌베개 (2) | 2022.09.11 |
(서평) 피지올로구스 (피지올로구스) - 지와사랑 (0) | 2022.09.01 |
STORY 안중근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 - 청파랑 (0) | 2022.08.23 |
(서평) 서학, 조선을 관통하다 (정민) - 김영사 (0) | 2022.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