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사회는 가톨릭의 사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그리스도의 영향을 받았고 예술의 영역에서는 더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피지올로구스>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자연에 대해서 박식한 자'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저 구전과 민담으로 전해져 오던 내용이 서기 200년 전후로 문자화 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일반적인 동식물과 광물을 뿐 아니라 상상의 것들도 기입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들의 특징을 그리스도의 교리에 맞추어 풀어내고 있다.
55장의 그림과 설명을 담아 중세 미술 그림 언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 책은 지와 사랑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성서와 더불어 일차 문헌으로 뽑히다는 <피지올로구스>는 그리스도를 이해하는데 좋은 길라잡이가 될 것 같다. 많은 의미를 함축적으로 담은 그림은 하나하나가 상징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데 이것을 해석하는 일은 쉽지 않고 인지하지 못하게 누락될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머리에 앉아 있는 검은색의 정체. 사람들은 펠리컨이라고 했지만 그림을 이해하려면 조류도감보다 <피지올로구스>를 찾아봐야 한다. 펠리컨은 단순한 새가 아니라 제 옆구리 살을 부리로 찢어 흘러나온 피로 죽은 새끼를 살리는 상상의 새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창조주가 만들어낸 피조물로 해석하는 많은 부분에서 <피지올로구스>의 역할이 필요하다.
피지올로구스 속의 생물들은 우리가 지금 인식하고 있는 동물의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 뱀의 경우를 보자. 뱀은 지혜의 동물이다. 뱀이 늙으면 다시 젊어지려는 작정으로 꼬박 사십일 동안 단식을 한 후 좁은 바위틈을 지나가며 낡은 껍질을 벗고 새로운 젊음을 얻게 된다고 한다. 이것은 구원으로 가는 길은 험하고 육신의 거죽을 털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고래는 어떠한가? 고래는 바닷속에 사는 괴물이다. 배가 고프면 큰 주둥이를 벌리고 주둥이 속으로 이끌려 온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때로는 크기가 섬과 같아서 배를 정박하고 그 위에서 모닥불을 피우면 뜨거움을 견디지 못한 고래는 바닷속으로 들어가고 선원들은 죽음을 맞이한다. 고래는 마귀나 이단으로 표현되며 마귀가 펼치는 헛된 희망이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 지옥 불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사자 개미는 사자와 개미를 부모로 두었는데, 두 성질을 모두 이어받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죽고 만다. 두 개의 영혼을 가진 사람은 두 마음으로 의심을 품으니 마음이 헷갈려서 행동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방황하는 자는 결국 죄악에 빠지고 만다는 것인데, 독실한 신앙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물론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식견은 가져야겠지만... 까마귀는 일부일처로 서로가 짝을 잃어도 새로운 짝을 찾지 않는다며 좋은 의미를 담아 주었다.
책 말미에는 55가지의 상징을 담은 그림을 첨부해 놓아서 그것을 보는 즐거움도 있었다. 매 설명마다 '자연학자 피지올로구스는 ~~ 에 대하여 잘 설명하였습니다.'로 끝나는 문장은 중독성이 있기도 했다. 뭔가 진지한데 웃기는 그런 문장이었다. 종교를 떠나 상징을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는 상상력이 돋보이고 또 그것을 즐기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뭔가 '박물지' 느낌도 있고,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한 즐거움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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