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릴레오 북스 69회는 노무현 대통령의 기록이 담긴 '깨어있는 시민 문화체험전시관' 개장 기념으로 해당 전시관 7 전시장에서 진행되었다. 초대 관장으로 차성수 관장과 노무현 대통령의 책 집필을 옆에서 거들었던 이송평 박사가 함께한 이번 책은 노무현 대통령 전집의 4번째 '진보의 미래'였다.
진보의 미래는 보수 사회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한 노 대통령의 고민이 담긴 책이다. 답을 주는 책이 아니라 질문을 하는 책이다. 대통령을 하며 풀어내지 못했던 것들의 질문인 것이다. 대통령은 어떤 고민은 하게 되는지, 좋은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 질문한다.
보수는 '이념' 보다는 '태도'의 부분이라 다툴 수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보수는 '자유'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를 취하며 그나마 '이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두 이념의 장단점을 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가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서로의 얘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건전한 토론이 이뤄지지 않는다. 여전히 반공을 외치며 서로를 재단해 버린다. 진보와 보수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찐 보수와 찐 진보라고 얘기되는 원리원칙주의자들의 공격을 양쪽에서 받게 된다.
예전 대통령님의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었다. "진보주의자라고 해도 대통령에 앉으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운영은 때로는 보수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라며 대통령의 자리는 이념의 자리가 아니라 국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을 하며 '한신의 일화'를 얘기하는 모습에서는 국정 운영은 치욕을 겪더라도 나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중국 때문에 존경하는 달라이 라마를 만날 수 없었던 것도 마찬가지고 티베트의 인권을 옹호하고 나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때의 대한민국의 지금의 대한민국에 비해서도 많이 약한 나라였다.
그런 대통령의 정책은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비난받았다. 매번 책 속의 문장을 가지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제시하지 못한 채 원칙에 어긋난다며 맹비난했다. 정권 운영에 미숙하고 정부를 비판하던 역할만 하던 진보인사들은 진보 정권에서도 그 관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양쪽의 맹폭을 받으면서도 대통령님은 진보와 보수의 개념 또한 윤곽을 잡아 주신 것 같다.
대통령님의 자료를 분석할 수 있고 돌아가시고도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님의 모든 회의는 녹취로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숨길 것이 없는 대통령님의 청렴함을 다시 알 수 있다. 정책 토론의 장인 '민주주의 2.0'을 만들고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움직이고 싶었던 대통령의 풀지 못한 고민은 이 책 속에 남겨져 있고 우리에게 쉽지 않은 물음을 하고 있다.
버스를 비유하는 이념의 설명은 기가 막혔다. 버스에 승객이 타고 있고 여전히 버스를 타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공산주의자들은 버스 기사를 사살하고 자기들끼리 버스를 탈취한 채 출발한다. 운전을 배우지 못한 자가운전을 하기 때문에 가다가 사고가 나서 전복된다(유시민 작가 의견). 보수주의(혹은 신자유주의)는 티켓을 산 사람들은 버스에 타는 것이 맞고 티켓을 구입하지 못한 사람들은 타지 못한다는 것이 맞다. 그대로 출발한다. 진보주의는 조금 비좁더라도 '손님들 안으로 좀 들어가세요'라고 말하는 버스 기사와 같다는 것이다.
버스에 사람을 태우는 방법은 승객들의 자발적인 행동에 기댈 수도 있고 덩치 큰 승무원이 손님들을 안으로 밀어 넣을 수도 있다. 여기서 덩치 큰 사람은 바로 대통령이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조금씩 양보하는 것은 시민이다. 대통령이 원하던 깨어있는 시민은 그렇게 큰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에게 힘이 있었는데 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절차의 하자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셨다.
승객들이 자신의 자리를 쉽게 양보하려면 버스가 좋아야 한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고 환기도 잘되면 좋다. 그리고 가는 도로 또한 좋으면 더욱 좋다. 국가가 강해지면 시민의 마음은 조금 더 여유로울 수 있다. 대통령은 이념의 기준으로 정책을 할 수 없는 이유다. 모든 국회의원들이 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겠지만, 적어도 대통령이라고 한다면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일해야 한다.' 그것이 잘되려면 나의 꿈을 국민의 꿈에 정렬될 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사안들 앞에서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국민의 눈으로만 보려고 했던 대통령. 그가 남긴 많은 질문들. 이제는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질문이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대통령이라면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대부분의 진보의 나라들은 철의 정치의 시대에 강한 군주의 정책으로 시민들은 진보의 효능감을 느꼈고 진보의 나라에서 보수의 정책 또한 시민의 힘을 거스를 수 없었다. 우리나라는 그런 과정이 없이 기득권과의 싸움이었다. 우리나라가 진보의 나라가 되는 마지막 희망은 시민에게 걸어볼 수밖에 없다.
한 명의 엘리트를 만들어 전부를 먹여 살리는 신자유주의는 엘리트에게도 고통이고 주위 사람들 또한 고통이다.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니다. 우리가 조금씩 나누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진보의 나라는 그렇게 먼 곳이 아닐지도. 평등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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