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릴레오 북스 65, 66화는 피터 싱어, 짐 메이슨의 '죽음의 밥상'이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이형주 대표와 강원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최훈 교수가 함께 했다.
자극적인 제목에 우선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먹거리는 하나의 문화이며 옷이나 거주지처럼 바뀐 대로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인류의 생존에 가장 직접적인 요소인 먹거리는 그대로 바라본다면 잘못된 것이 없다. 하지만 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 벗어난 우리는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먹을 것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다. 이 책은 자극적인 제목에 비해서 꽤나 중립적인 스텐스를 취하고 있었다.
최근에 유행처럼 번지는 '동물권'과 '채식주의자'는 환경 보호와 건강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널리 퍼지고 있는 듯하다. 그 외에도 종교적으로 채식은 꽤 오랜 역사가 있다. 소위 '비건'이라고 하는 것이 단순 채식주의가 아님을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저 육고기만 안 먹는 사람, 덩어리로 된 고기만 안 먹는 사람, 달걀 우유를 포함해서 동물성은 모두 안 먹는 사람 등등 그 수준마다 다르고 지칭하는 용어도 달랐다. '비덩'이라는 덩어리 고기만 안 먹는 용어가 굉장히 재밌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동물권'과 '동물복지'에 대한 구분이었다. 동물권은 인권과 마찬가지로 매우 추상적이며 철학적인 정의다. 그리고 인권과 마찬가지도 동물로서 살아갈 권리 고통을 피할 권리 등으로 얘기할 수 있다. 동물권은 동물 또한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부터 활발해진 것 같다. 인권의 범위가 백인 성인 남성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으로 넓혀져 가듯 동물권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인간을 포함하여 범지구적으로 넓혀져 가는 중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생태계 안에 존재하고 있고 현재는 최상위 포식자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먹는 것으로 윤리 비윤리를 따지는 것은 옳은 일은 아닌 것 같다. 단지 우리가 먹기 위해서 기르는 동물들을 적어도 고통을 줄여주고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필요하다. 틱낫한의 '화'라는 책을 보면 '화'가 가득한 음식을 먹으면 '화'가 몸에 찰 수밖에 없다는 내용처럼 동물을 기르는 것은 동물을 먹는 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나온 것인 '동물 복지'다.
동물 복지는 일반적으로는 반려 동물에 한정되어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먹기 위해 기르는 동물들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10억마리가 소비되는 닭은 날개 한번 펴지 못하는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의 심한 스트레스를 주어 털갈이를 시킨다. 화가 차인 닭들은 주위 닭들을 쪼기 시작하는데 그를 위해서 부리가 잘려나간다. 돼지는 인간에게 잡혀온 이후로 줄곳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나고 있다. 원래 변을 보는 곳과 사는 곳을 구분하는 돼지는 몸을 돌리지도 못하는 좁은 Stall이라는 곳에서 키워진다. 좁은 곳에서 많은 수를 키우다 보니 암모니아 때문에 안구질환이 생기고 분뇨를 처리하는 캐리어에 다리가 끼여 상처가 나면 염증으로 번져 걷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소는 특별식으로나 먹어야 하는 곡물을 매일 먹음으로써 기름진 고기를 만드는 대신에 심장병과 같은 질환을 앓게 된다. 물고기라고 다르지 않다. 수 많은 물고기를 기름으로써 바다는 오염된다. 쌍끌이 기선의 저인망은 잡지 말아야 하는 생물들을 죽음으로 몰고 있다. 우리가 플라스틱을 쓰지 않음으로써 구하는 생물보다 저인망 어선이 죽이는 생물이 훨씬 많다.
동물을 사육하는 것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축산이 기업화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돼지를 기를 때에는 충분히 넓은 공간이었고 닭들은 돌아다니며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알을 놓곤 했다. 개들은 조금 위험했지만 동네를 발발거리며 돌아다녔다. 소들이 조금 아프다고 산채로 땅에 묻지도 않았다. 쇠죽을 끓여서 먹였다. 소는 집안의 재산이었기 때문이었다.
동물 복지는 동물 뿐만 아니라 동물을 사육하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하다. 좁은 곳에서 사육하는 동물들은 거칠다. 그리고 집약된 분뇨는 눈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전염병으로 가축들은 생매장을 당한다. 이것을 진행하는 사람들은 심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동물 복지는 그것을 사육하는 사람에게도 중요하다.
인간은 잡식성이다.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잡식성이라는 것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먹는다는 행위는 윤리적 비윤리적이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동물을 괴롭힌다던지 실험을 한다던지 등의 먹는 행위 이외의 모습에서 우리는 비윤리적임을 느낀다. 그리고 인간과 교감을 많이 할수록 인간과 동일시 하기 시작했다. 보신탕과 보양탕은 이제는 꺼리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대에 생산성, 효율성은 농업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개인의 인식 변화와 국가 시스템의 개선은 필요하다. 동물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동물을 제대로 키우자는 내용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되려면 조금 비싸더라도 좋은 시스템에서 만들어낸 식품을 소비하고 아니면 그 자체의 소비를 줄여 나가자는 내용이었다. 당장은 그것이 비싸 보이더라도 전염병으로 인한 가축의 살처분에 대한 보상 지원, 가축에서 나오는 메탄 등의 환경오염, 배설물에 의한 수질 오염 등을 고려한다면 사회 전반적으로는 더 저렴한 소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기업은 생산에 필요한 비용을 외부 효과로 만들어서 사회로 전가하게 될 때 최고의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우리가 구매하는 것이 저렴해질수록 직접 지불하는 이외의 방식으로 지불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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