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3을 시작한 알릴레오 북의 두 번째 도서는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이 책은 영국의 제국시대가 몰락하는 지점에서 두려움을 느끼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했던 역사학의 아웃사이더의 통렬한 비판이기도 했다. 유시민 작가가 40년 동안 14번이나 읽었다는 이 책은 소위 '어려운 책'에 속하기도 한다. 문장 그 자체보다는 예시가 그 당시 주류 지식인들은 당연히 아는 것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그것도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는 예시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편이 너무 좋았던 것은 주진오, 윤영휘 두 분의 교수님들의 설명이 곁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주진오 교수는 책 속의 예시를 한국사에서 찾아서 설명해 주었고 윤영휘 교수는 영국사와 유럽사에 대해 차분히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어렵다는 책을 이렇게 즐겁게 3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역사는 인간의 손에 쓰이게 되고 그 인간은 개인사와 당시 사회를 투영할 수밖에 없는 지점에 놓여 있다. 역사를 이해하려면 역사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책의 기본 논지였다. 사료는 범접할 수 없는 신성한 진실이라며 '있었던 그대로 과거'를 밝혀내는 것이 역사가의 사명이라고 얘기한 랑케와는 다른 입장이었다. 역사는 역사 철학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거의 생각이기도 한 것 같았다.
과일로 비유하자면 진실은 과육을 지나 단단한 씨 속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느끼고 해석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기 때문에 다른 게 표현될 수 있다. 모든 역사학자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자신의 입장에서 적다 보니 서로 다르게 표현되었을 것이다. 그 주장의 뿌리 깊은 곳에는 진실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 점에서 '역사는 이성의 지배를 따른다'라는 헤겔의 말도 같은 맥락에서 얘기될 수 있을 것 같다. (헤겔의 책은 아직 한 권도 못 펴봤지만..)
역사라는 것은 역사가에 의해서 간택되고 재생산된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은 시대에 남을 일이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루비콘 강을 건넜지만 기록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했지만 위화도에서 돌아온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이성계뿐인 것처럼 말이다. 결국 당시의 역사가가 혹은 후대의 역사가가 기억될만한 것을 기록하는 것이다. 기록되지 않는 것은 기억되지 않으니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얘기한다. 현재 사람이 바라보는 과거라고 얘기하는 것이 더 옳은 걸지도 모르겠다. 역사를 통해서 뿌리와 민족성을 찾아가는 것도 있지만 우리는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서 현재와 닮은 일들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현재인에 맞게 재해석해 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과거를 이해할 때에는 과거의 시대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조선에 살던 인물에게 '너무 가부장적이고 여성 차별적이라 위대한 인물 일리 없어'라고 평가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위대한 세종대왕도 첩이 50명에 다다르고 며느리를 몇 번이고 내친 왕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역사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역사가를 넘어 개인이 남기는 기록물도 많아질 만큼 미시적인 부분까지 기록되고 있다. 나아가서 칼 세이건이나 유발 하라리처럼 인류사나 우주의 역사까지 함께 기록하는 '빅 히스토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빅 히스토리의 등장은 인류를 하나의 공동체로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분명 의의는 있을 것 같다. 코로나로 갑자기 민족주의가 강해졌지만 인류는 점점 더 하나가 되어가게 되지 않을까 기대를 해 본다.
5, 6 장에서 E.H 카는 그럼에도 진보한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그것은 E.H 카 그의 희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진보는 우여곡절이 많겠지만 결국 좋은 쪽으로 나아간다는 얘기를 하면서 갈릴레오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명언을 빌려 '그래도 역사는 움직인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이 단순히 정치학 강의가 아니라 당시 독일 정치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민들이 깨어나길 바랐던 막스 베버의 절규처럼 이해해야 한다는 점은 이 토크에서 얻은 또 다른 수확이었다. 그의 말처럼 독일은 나치즘에 삼켜졌고 그의 수업을 듣던 대부분의 학생들은 죽임을 당했다. 모든 사람의 말과 글에는 시대의 그림자 속에 있고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비단 역사뿐 아니라 모든 문학을 이해하는 것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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