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스트를 제외한 모든 이념이 모인 공동체 인민전선과 이들을 저지하려는 프랑코가 이끄는 반란군 사이의 전쟁인 스페인 내전. 이 큰 사건은 굉장히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파시즘을 대항한 반파시즘 진영의 연대였을 것이다. 하지만 미온적이었던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과 공산당만 챙기던 소련. 그리고 중립을 표방했지만 양측에 무기를 팔았던 미국. 여러 이해관계 속에서 연대는 불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독일, 이탈리아가 지원하는 프랑코의 파시즘 세력이 득세하게 되었다. 스페인 내전은 길게 보면 히틀러의 2차 세계대전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었으며 열강들의 제대로 된 지원만 있었다면 그 전쟁은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카탈로니아는 스페인 내에서도 조금 다른 지역이라고 한다.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카탈로니아 주는 스페인어보다 카탈로니아어를 제1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베리아 반도는 큰 덩치만큼이나 여러 민족들이 살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언급해야 할 것이 '아나키즘'이다. 편하게 얘기하면 '무정부주의자'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노동자, 농민들을 중심으로 한 모든 제도화된 조직과 권력을 부정하는 사상과 운동이다. 물론 모든 운동이 세력을 이루고 득세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조직과 권력이 생기는데 어떻게 보면 실패를 전제하는 모순된 이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나키즘은 굉장히 나쁘게 평가되고 있지만, 아나키즘은 어떻게 보면 약자 계층의 자생적인 정치세력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마르크스-엥겔스의 사회주의가 생기기 전에 만들어진 하나의 사회주의 이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반파시즘 세력이라는 연대는 지식인들과 문인들 불러들였으며 이들은 국제 의용군을 만들어 내전에 참가하게 된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비롯하여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앙드레 말로의 <희망>, 피카노의 <게르니카의>,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 등이 있다. 국제적으로 세계 정의를 지킨다는 위기의식은 지식인들에게 호소되었고, 아나키즘은 스페인 내전 패배로 사라지게 된다. 스페인 내전은 어떻게 보면 지식인들에게는 '세계의 정의를 지키는 행동'이라는 하나의 구심점이 되어 많은 작품들이 생기는 것 같았다.
카탈로니아 찬가의 원래 제목은 '오마주 투 카탈로니아'로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조지 오웰의 작품이다. 혹자는 세계 3대 르포라고 할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다. 스페인 내전의 초기 모습은 모든 지식인들이 서로를 지위로 부르지 않고 '동지'가 되는 어떻게 보면 지식인들에게 이상향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것은 그들에게 끊임없는 향수를 자아내게 되었고 그것을 기리는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찬가'라고 해석했지만 카탈로니아를 찬양하는 내용이 아니라 스페인 내전에서 만난 수많은 동료들의 기억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의용군은 오합지졸이었고, 무기는 재래식이었다. 그마저도 부족해서 전선에서 패배한 사람들에게 물려받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적인 총기 훈련은 이뤄질 수도 없었다. 결국 그들이 전선에서 하게 된 것은 추위와 배고픔에서 이겨내는 일뿐이었다. 열악하고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장면들을 해악적으로 풀어냈지만 그 사이에 느꼈을 조지 오웰의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조지 오웰 또한 부상을 입고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바로 <카탈로니아 찬가>를 적게 되었다.
그 당시 언론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지금의 언론과 너무 똑같아서 기시감이 계속 들었다. 진정한 저널리즘은 몇몇 정의로운 저널리스트에게만 기대해야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은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열강들의 무관심 속에서 패배할 수 없었던 의용군에게 화살을 돌려 모든 원인을 그들에게 돌렸다. 이들이 가져온 무관심과 잘못된 비판은 세계 대전을 가져다주질 않았던가.
최고의 작품이라고까지 불리는 이 작품으로 스페인 내전에 대해서 이해하고 조지 오웰의 생각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또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훌륭하게 쓰인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기술적인 능력을 높이기에도 좋지 않을까 싶다.
정의도 패배할 수 있고,
무력이 정신을 굴복시킬 수 있으며,
용기를 내도 용기에 대한 급부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바로 스페인에서,
- 알베르 카뮈
클로징 멘트에서 인용된 카뮈의 글도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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