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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릴레오북스 70회) 한국미술사 강의 4 (유홍준)

야곰야곰+책벌레 2022. 9. 21.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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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릴레오 북스 70회는 <나의 문화유산 탐방기>의 저자 유홍준 석좌교수님의 <한국미술사>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깊어가는 가을 멀리 여행을 떠나지 못하더라도 산새에 품어져 있는 사찰을 거닐며 때론 그 속에 보관된 여러 문화유산을 보며 즐길 수 있는 지식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유홍준 교수는 자신의 종교가 <한국미술사>라고 얘기할 만큼 한국 미술사의 진심이다. 이런저런 책을 내는 것은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기 위한 복음서라고 얘기한다. 한국 미술사를 전도하기 위한 유홍준 교수의 이야기를 듣는 좋은 시간이었다.

  우리나라 사찰에는 설계 규칙이 있다. 처음 만나는 건축물은 사찰로 들어서는 진입로다. 우리나라는 산사의 나라로 유네스크에 7곳이 등재되어 있다. 중국과 일본처럼 도시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산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템플로 등재되지 않고 모나스트리(Monastery, 수도자들이 수행하는 수도원)로 분류되어 있다. 우리나라 명당에는 대부분 산사가 들어가 있다. 대부분 건축물에 자연을 재현하지만 우리의 산사는 아름다운 자연에 어울리는 건축물을 만들었다. 

  진입로를 걷다 보면 어김없이 일주문이 등장한다. 여기서부터가 산사의 성역이 된다.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을 내어주는 것과 같다. 그리곤 개울 하나를 건넌다. 언덕을 오르면 어김없이 사천왕이 나타나고 현대 건물로 얘기하자면 경호실에 해당한다. 그리고 일직선으로 석탑과 법당이 나타난다. 법당의 이름이 대웅전이라면 그것은 '석가모니'를 모시는 곳이다. 극락전이라면 '아미타불'을 대적광 전라면 '비로자나불'을 의미한다. 법당은 부처님을 모시는 곳이 된다.

  법당의 주위로 두 개의 중요한 건물이 있는데 하나는 '관음전'이고 또 하나는 '명부전'이다.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곳이고 이 세상에 모든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한다. 대학입시를 비는 곳이 관음전이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음의 세계를 관장한다. 지장보살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중생이 구제될 때까지 스님으로 남겠다'라고 했다. 그래서 지장보살은 보살이지만 스님의 모습으로 모시고 있는 것이다. 부처가 아닌 스님이 높은 곳에 앉아 있다면 '지장보살'이고 명부전일 것이다. 지장보살 아래는 10명의 왕이 있다. 그중에 염라대왕이 있다. 사후 세계의 일을 빌고 싶다면 명부전에 가서 빌어야 한다. 응진전, 나한전은 기도하고 염불 하는 곳이다. 이것은 본인이든 스님 이하든 상관은 없다.

  재미난 것은 해우소인데, 근심을 푸는 뒷간인데, 뒷간은 공기의 흐름이 바깥으로 빠지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선사 안으로 냄새가 전해지지 않는다. 가장 아름다운 뒷간으로는 선암사 해우소라고 한다.

  조선은 숭유억불의 정책으로 기본적으로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이었지만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불교의 역할이 강해진다. 조선 후기는 송유존불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지어진 선사들은 지금의 돈으로 하나에 200억 정도가 드는데 시주를 받아서 지었을 만큼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문정왕후가 불교를 부흥시켜했고 보우 스님이 승과를 만들었고 합격자는 휴정 스님이고 4회 합격자는 사명당(유정)이었다. 이 스님들이 나중에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키게 된다. 휴정은 '선종과 교종을 정의하면서 둘은 다른 게 아니며 같은 것이다'라고 했다. 그 둘을 모두 모아 지금의 선사 내에 두었다.

  임진왜란에 불교가 승한 것은 천만 인구가 이백만 인구가 죽었으니 죽음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유교를 대체할 것이 필요한다. 종교가 필요한 이유는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다. 유교는 학문이라 유학이라고 해야 맞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건축물을 살펴보면 3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이것은 자리앉음새, 알맞은 규모, 모양새다. 우리 민족은 자리앉음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자리앉음새는 우리나라 서원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서원 8개가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 수많은 서원이 있지만 8개는 각 서원의 대표성을 가지는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고 해서 8개가 선정되었다는 사실은 지난 도동서원을 설명해주시는 분에게 들었었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소수서원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관아가 남아 있질 않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주재소를 만들며 모두 훼손되었다. 한옥은 3년만 쓰질 않으면 엉망이기 때문에 관아는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복원이 가능할 것 같은 7군데를 지정하여 복원을 시작 중이며 현재는 제주 목관, 나주 목관, 홍산현 관아가 복원되어 있다. 

  관아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었는데, 한필교라는 분이 자신이 거쳤던 지방 관아 15군데를 그림(숙천제아도)으로 남겨 두었다. 하지만 모두 하버드대학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림을 미천하게 생각하던 조선시대였지만 한필교는 후세인들로 하여금 옛 제도를 알려주기 위해 그림으로 남겼고 '아! 그림이란 참으로 역할이 없지 않다.'라고 회자했다. 화가의 이름도 남기지 않았다.

  우리의 관아는 무장 객사라고 하여 궁궐의 권위가 객으로 나와 있는 것이 그런 사람들(관찰사)이 지내곤 했다. 관리가 머무는 곳은 객사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원이라고 했다. 객사는 망궐례라고 하는 멀리서 궁궐을 바라보고 예를 올리는 곳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춘향전의 이몽룡이 동원에 앉아 사또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객사에 앉아 사또를 불러야 맞는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고택에서 1박을 해보는 한옥 스테이가 많은데, 안동 북촌댁, 강릉 선교장, 구례 운조루 등이 있다. 그럼에도 가장 추천하는 곳은 안동 의성 김 씨 종택이라고 한다. 보물 450호로 지정된 이곳은 양반집의 진가를 볼 수 있는 곳이었다. 마을의 앞에는 장승이 있었는데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이라는 의미와 이정표 역할을 했었다. 3년마다 장승을 세웠는데 이제는 몇 곳이 남질 않았다. 새마을 운동으로 마을 길을 넓히면서 장승이 사라졌고, 농촌의 인구가 줄어들며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 전라도에는 돌장승이 많이 남았는데, 남원 지방에는 사찰 장승과 마을 장승이 있다. 원래 사찰과 장승은 관계가 없지만 사람들이 사천왕은 무서워하지 않지만 장승은 무서워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지막에 나눈 얘기가 참 좋았는데, 문화나 예술을 볼 때 알면 많은 것을 보게 되겠지만 모른다고 주눅 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저 나에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말이 참 좋았다. 미적 판단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고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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