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퀴어는 아직도 악마화 되어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마치 사탄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을 대하듯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성소수자들이 살아가기 그렇게 좋은 공간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종종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읽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사회를 이루는 이웃일 뿐이었다.
레즈비언 작가의 세 가족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어떤 책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내가 성소수자들의 인식 변화에 강한 영향을 받은 것은 TED에서 만난 앤드류 솔로몬의 강의 '어떻게 삶의 최악의 순간들이 우리를 만드는가'를 만난 뒤였다. 게이로서의 삶을 살은 앤드류는 악몽 같았던 청소년기를 보냈지만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신 또한 소수자였지만 더 소수자였던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러 편의 TED 영상이 있었지만 그의 멋짐은 나의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 있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보는 영상이 되었다.
소수자의 삶은 쉽지 않다. 정상은 얼마나 다수에 가깝냐로 정의 내려지기 때문에 소수자들은 늘 비정상으로 취급받는다. 언제나 고쳐야 하는 대상이 된다. 언제부터 주변에 관심이 많았다고 소수자들이 나타나면 어김없이 비난의 목소리는 터져 나온다. 그것은 공동체를 위한 나의 다짐인지 나의 감정을 버릴 쓰레기통을 찾고 있었던 것인지 스스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레즈비언의 에세이인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전혀 비정상적이지 않다. 작가가 <L>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한 에세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겪은 삶은 여느 사람들의 에세이와 다르지 않았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잘 담겨 있었다. 뭔가 특별함을 찾는 것이 아니라 특별할 것이 있을 것 같은 사람에게서 평범함을 느낀다는 것이 특별함이 아닐까 싶었다. 세 명의 여자가 살아가는 집. 누가 봐도 녹록지 않았을 생활에 서로 티격태격하며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은 그야말로 잘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수업 시간에 야외에 나가 햇살을 만끽하고 시를 써서 제출하겠다는 학생에게 그게 공부라고 답한 교수님의 모습도 좋았고 나이를 먹을수록 멘털의 상태를 숨길 수 있는 기술이 늘어난다는 차장님의 얘기도 공감이 갔다. 동생의 에피소드에서는 가족 사이에도 생길 수 있는 무심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해서 맞담배에 도전했지만 막상 이루고 나니 구역질이 났다는 표현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자살에 관한 에피소드에 나오는 나카시마 미카의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이라는 노래에 대한 해석이 좋았다. 나도 이 노래를 좋아한다 (죽을 생각은 없지만). 죽으려는 마음은 이유를 만들려면 무엇이라도 만들 수 있다. 낙엽이 떨어져서라든지 신발끈이 풀려서라든지 이유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노래 말미에 나오는 세상이 조금 좋아진 것은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나서였다는 가사가 압권이다. 이 가사가 주는 무게와 진정성을 좋아했는데, 작가가 잘 표현해 주었다.
사실 동성을 좋아하는 것은 별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게이나 레즈비언에 심겨 있는 이미지가 우리를 잠식하는 것일 뿐이다. 브로 멘스는 작품화될 정도로 흔해졌고, 여성 아이돌에 푹 빠진 소녀들이나 남자 배우에 취해 있는 소년들을 찾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가요 프로그램 가면 널렸다.)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것은 지나친 관심이 아닐까 싶기도 한다. 그들도 그저 이웃에 사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남자를 좋아하든 여자를 좋아하든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인정하고 이해하기 싫다면 관심을 끄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생태계에는 수컷이 없을 때 암컷끼리 번식을 하는 생물들이 많이 있다. 때때로는 수컷이 멸종된 생물도 있다. 암수가 결합하는 것은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생존 본능에 가깝다. 사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지 않을까? 미국의 어느 대학처럼 성을 5가지로 분류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그들의 다양성 정도는 인정해 주는 게 어떨까 싶다. 혹시 그것이 걱정된다면 다윈의 '성 선택설'을 믿고 자연의 진리에 맡겨 두자.
그냥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에피소드가 담긴 에세이다. 저자의 이력은 전혀 신경 쓸게 아니다. 그냥 평범한 이야기, 종종 만나는 좋은 글귀 그리고 고뇌가 잘 섞인 그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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