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제주도 한 달 살이가 꽤나 유행을 했었다. 쉼이라는 키워드로 자신의 시간을 멈추는 방법 중에 하나였다. 숨을 돌리고 에너지를 채워 다시 달릴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저 그곳을 느끼고 싶어 떠나는 사람들도 많았다. 마음의 환기는 짧은 여행, 한 달 살이 아니면 조금 더 긴 여정으로 느낄 수도 있다.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살아 본다는 것은 꽤나 좋은 경험이 되기도 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훌쩍 스페인으로 떠나 6개월을 지낸 작가의 일기 같은 이 책은 에고의 바다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멈춤은 변화를 위한 것도 아니고 우리는 모두 길을 잃을 자유가 있다고 얘기하는 저자는 그렇게 직장을 그만두고 스페인으로 떠났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6개월의 스페인 살이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같은 직종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커리어 단절은 생각보다 큰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새로운 커리어로 그것을 엮어 내고 책도 썼으니 손해 본 것 같진 않다. 무심코 잃었던 길에서 진주를 발견하기도 하니까.
사실 스페인 살이라고 해서 스페인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얘기할 줄 알았다. 맨 처음 등장한 발렌시아는 그런 느낌을 채워주었다. 열정의 나라 스페인은 작은 도시마저 아름다울 것 같았는데, 그곳을 살아가는 소소한 재미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잠깐의 여행이고 어학과 여행의 목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상을 살아가는 소소한 시선이 아닌 한 편에 기행문에 가까웠다.
발렌시아가 지나곤 계속 다른 도시와 국가들이 등장한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모로코, 이집트, 오스트리아, 독일로 이어지는 기행기였다. 발렌시아는 유럽 여행을 위한 전초기지 느낌일까. 그래도 돌아와서 쉴 수 있다는 집이 있다는 사실은 참 좋은 것 같았다. 6개월 동안 스페인에 머물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던 이야기를 엮었는데 아마 그 점이 저자는 특별했던 것 같다.
그 긴 시간 동안 조금은 특별하지 않았을 발렌시아의 소소한 풍경들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조금 주제를 벗어나는 글들이 많았다. 기행문을 읽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다. 실세 없이 전환되는 여행지로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스페인 그 자체를 즐기고 싶은 나에게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발렌시아에서 외국인 친구들과의 티 기타가가 나는 좋았다. 잘 통하지 않는 말에 세계 각 국에서 모인 친구들의 의사소통, 친구가 되어 서로의 국가로 초대하고 놀러 간 이야기. 함께 파티를 준비하기도 하고 식료품을 사러 여기저기 다닌 에피소드가 좋았다.
문화도 성격도 다른 친구들이 모인 곳이라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법도 한데 발가락이라도 닮았지라는 옛말처럼 그 속에서 서로의 닮음을 인정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았다.
사실 이 책은 소개에서 많이 비껴간 부분이 많다. 스페인에서 6개월 살이는 맞지만 책 속에는 스페인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스페인 그 자체에 집중된 에세이를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이 남는 책일 테고, 여행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스페인을 중심으로 둘레의 국가들을 여행 다니는 방법, 모습 그리고 소소한 팁들이 좋은 책일 것 같다.
개인이 찍은 듯한 사진들이 함께 하고 있어서 그림으로 즐길 수 있는 그런 에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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