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스릴러라면 범죄자 혹은 형사가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발단부터 종결까지가 보통의 전개다. 이 작품은 그 뒷 이야기를 하고 있고 누구나 범죄자가 될 수 있고 그들이 진정으로 용서받고 사회로 돌아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얘기하고 있다. 사건의 전개보다 주인공과 피해자 가족의 심리적 묘사가 좋았고 인간임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등장인물의 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범죄자라는 낙인. 그리고 그 속에서도 인간임을 지키고 싶었던 선한 범죄자를 품는 이야기를 담는 이 작품은 소미 미디어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작가에게는 스릴러 작품이 많았고 커버에도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여름에는 어김없이 출판되는 그런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장을 넘기며 주인공이 저지른 사건에서 '어, 이건 빼박인데..'라는 생각을 하며 첫 장에서 끝나버린 사건이 의아했다. 교통사고, 당연히 CCTV는 있을 테고 차에 묻은 혈흔으로 잡아내는 건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대적인 상황도 현대였다. 스토리 역시 주인공은 당연하다는 듯이 잡히고 재판을 받고 구치소에 들어갔다.
구치소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 장을 넘기자마자 출소하는 장면이 이어져서, '어?'라는 당혹감이 살짝 들었지만 그제야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남들보다 5년 가까이 늦어버린 인생에 범죄자라는 낙인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 그런 상황 속에서 만나는 많은 심리를 그렸다. 그리고 주인공의 형량이 결정되었을 때 자신이 살아 있어야 하는 기간을 얘기하는 피해자 남편의 독백은 자연스레 복선으로 남겨 주었다.
사실 책에는 두 명의 죄인이 등장한다. 하지만 모두 죄책감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둘의 특징은 돌발적이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작가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혹은 자기 합리화해버리는 사람들을 짐승에 비유했고 자신의 죄를 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고 있다. 자신에게 내려진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는 평생의 짐이 될 것이지만 인간 됨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용서를 전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점은 작가의 메시지 같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사죄와 용서와 별개로 사회는 평생 죄를 묻는 것 또한 그들이 짊어질 짐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범죄에 대해서 죄를 지우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사회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다. 형량만 채우면 용서받는다고 인식은 우리가 만든 인식이 아닐까?
스웨덴 같은 곳에서는 수용소 시설을 잘 만들려고 애쓴다고 한다. 수용소 삶의 질을 향상한다는 얘길 한다면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정부에 대해 극노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들어보면 이해가 간다. 죄를 지어 벌을 받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인간 대우를 받지 않으면 그들의 증오는 증폭되고 다시 사회로 향한다는 것이다. 범죄자의 인식을 더 강화시킨 채로 사회에 다시 풀어주는 꼴이다.
치안의 강화와 인식 수준의 변화는 범죄자를 줄이고 있다. 하지만 구치소에 수감되는 사람들의 수는 유지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수용소의 빈방만큼 잡아들이는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다. 감옥에는 생활고 때문에 구속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사회로 복귀하면 그저 빨간 줄로 동일한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작가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끄집어내어서 질문한다. 죄는 의도하였던 의도하지 않았던 그 무거움이 있다는 것도 얘기한다. 단지 범죄자가 되었을 때 그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지 어떤 사죄가 진정한 사죄가 되는지에 대한 얘기를 한다. 더불어 그들이 진정으로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면 용서를 해줘도 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도 전달한다.
작가의 메시지는 훌륭하고 또 생각해 볼 만하다. 하지만 인간의 속 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말미에 죽음을 맞이하며 평온함을 얻은 피해자 남편의 모습은 자신의 평생의 고뇌를 벗어낸 모습인지 죄인을 용서해서 자신의 증오를 걷어냈음인지는 모를 일이다. 작가는 모든 것을 독자에게 맡기는 듯 한 중의적인 결말을 얘기하고 매년 기일마다 꽃을 들고 오는 죄인의 모습을 남겨 놓음으로써 용서는 평생에 걸쳐 받는 것이라고 얘기하며 마무리한다. 마음의 응어리는 깨지는 것이 아니라 녹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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