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 자이언트북스

야곰야곰+책벌레 2022. 7. 26. 07:27
반응형

  45억 년 전 지구가 처음 생겼을 때부터 지구는 우주의 순리대로 존재하고 또한 변화하고 있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치며 혹은 지구로 떨어지는 운석들로 인해 환경은 여러 번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많은 생물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였지만 지구의 입장에서는 사사로운 문제일지 모른다. 태어나고 사라지는 생명체는 이런 순리를 따른다.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화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공룡이 사라지고 포유류가 출현하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450만 년에서야 인간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형태로 처음 등장했다. 사피엔스가 된 후, 농경을 위해 정착한 이후, 더 이상의 진화는 이루지 못한 것 같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문명을 만들었고 과학과 함께 지구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거대한 생태계에서 어느새 인간은 우세 종이 되었다. 먹이 사슬의 최상단에 위치하게 된 인류는 문명의 발달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진화를 위해 지구 환경 변화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많은 생명들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이제는 인간 또한 변화의 속도와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멈추지 않은 채 속도 경쟁에 돌입하고 있다. 적응의 시간 내에 과학은 인류를 구해낼 수 있을까?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혹은 멈추지 못할 만큼 빨라진 인간은 결국 생존과 파멸이라는 도박판 위에 뛰어들었다.

   <지구 끝의 온실>은 '더스트'라는 심각한 환경 문제가 해결된 시점에서 시작된다. 인류를 위협했던 '더스트'에 관련된 생태를 연구하는 식물생태학자 아영은 해월이라는 도시에 괴이한 소식을 접한 뒤 그곳으로 떠나게 된다. 사실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미스터리 사이트에서 이미 읽은 적이 있었다. 또한 아영은 그 사실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모스바나를 키우던 이희수 할머니 집에서의 경험을 기억하고 있다. 아영은 아프리카에서 모스바나를 약초로 이용해 사람들을 치료하던 아마라, 나오미 자매의 존재를 알게 된다. '랑가노의 마녀들'이라고 불리는 그녀들을 만나 '프림 빌리지'라는 존재를 알게 된다.

  김초엽 작가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위에 희망을 쌓아 독자에게 보여준다. 그녀의 첫 장편 소설인 <지구 끝의 온실> 또한 작가의 그런 메시지는 분명했다. 발전만 신경 쓰는 인간의 행동에 식물들이 개입한다. 식물들 또한 생존을 위한 새로운 진화를 거듭한 것이겠지만 그들은 '더스트'라는 특별한 물질을 내뿜어 인간을 자신들만의 온실로 몰어 넣는다. 돔 형태의 온실 속에 갇힌 인간들은 동족을 연구하는데도 거리낌이 없는 듯했다. '더스트'에 내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냥당하고 실험 대상이 되었다. 내성을 가지게 된 인류는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만들게 되는데, 이것은 자연이 만들어 준 또 하나의 온실이었다.

  인간이 만든 온실은 불평등의 상징이다. 기득권층들은 미리 마련한 온실 속에 도피하였다. 온실의 문을 닫기 전 그곳으로 뛰어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은 총을 겨누고 또 쏘았다. 온실은 기득권의 보금자리였다. 그들은 그들의 생존에만 관심이 있었다. 온실 밖으로 내몰려 살아남아 내성이 생긴 사람들을 잡아다가 연구했다. 기득권은 냉정하고 잔인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온실 밖의 인류는 폐허를 뒤지며 먹을 것을 구하고 때론 서로를 챙겨주기도 때론 서로를 약탈하기도 했다. 그들에게도 온실은 필요해 보였다.

  프림 빌리지는 레이첼이라는 식물학자가 만든 공동체다. 마을 외딴곳에는 그녀가 관리하는 온실이 있는데 그 속에는 모스바나가 잔뜩 심어져 있다. 그래서 그녀 외에는 접근할 수도 없고 접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마을의 규칙이었다. 레이첼은 더스트 분해제라는 해독제를 만들 줄 알았고 마을 사람들은 그것을 의지해서 온실이 아닌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었다. 프림 빌리지는 변화를 완벽하게 차단하지 않은채 조금씩 적응하며 살아가는 인류의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작품은 식물, 인공지능 그리고 인간 사이의 거대한 연대를 얘기한다. 레이첼 박사는 인공지능 로봇이었다. 그래서 더스트에 영향을 받지 않고 행동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근무하던 기업의 실수로 퍼진 '더스트'에 대한 책임도 느끼고 있었다. 마음을 가진 로봇의 헌신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생존을 위해서 이해관계를 위해서 서로를 배척하는 인간의 모습이 투영되어 더 깊은 곳을 찌르고 들어온다. 인간은 그녀가 제공하는 해독제에 기대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인지 그녀의 마음을 공유받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단지, 온실 옆 작은 오두막에서 생활하는 희소만이 그녀의 비밀을 알고 그녀에 대해 깊은 감정을 가진다.

  프림 빌리지가 외부 사람들에게 알려진 후 마을은 공격당하게 된다. 인간의 이기심과 잔혹함은 어디까지일까? 내 삶을 위해 상대의 희생을 감수한다라는 야만의 심리는 감출 수가 없는 것 같다. 뺏으려 하기 전에 나눔 받으려 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인간은 고작 그 정도일 뿐인지도. 마을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결국 마을을 떠나기로 한다. 그동안 희수의 오두막에 자주 놀러 갔던 아마라는 더스트 분해제 제조법을 익혔다. 레이첼은 마을 사람들에게 모스바나를 나눠주며 발 길이 닿는 곳에 그것을 심으라고 했다. 모스바나라는 식물이 갑자기 지구 전역에서 번식하게 된 이유를 아영은 알게 되었다.

  모스바나는 레이첼에게는 희망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희망을 소중히 했고 그녀의 말대로 자신들의 발 길이 닿은 곳은 심었다. 그동안 그녀가 보여준 믿음의 결과이기도 했다. 아마라와 나오미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모스바나를 이용해 더스트 분해제를 만들어 사람들을 치료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나쁘지 않은 의미의 '마녀'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러는 사이 기득권이 차지하고 있던 온실에서도 더스트를 해결할 수 있는 물질이 개발됐고 지구 전역에 대량으로 살포했다. 더스트를 일으킨 장본인들은 다시 역사의 영웅이 되었다.

  마지막까지 인간의 추악함을 감추지 않은 작가의 문장은 역사가 살인자와 그의 가족만 기억하고 세상을 바꾸며 죽어간 이름 모를 사람들을 기억하지 않은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상을 구한 것은 일류 기업이 개발한 물질 일지 사람들이 품에 안고 세계 곳곳으로 전달한 희망일지 알 수 없다. 글의 말미에 아영은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스바나가 더스트 시대의 모스바나의 유전자 변이 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레이첼이 마지막에 전달해 준 식물은 그녀가 인간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 준 선물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여전히 '자연을 구하자', '지구를 사랑하자'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사용한다. 누구를 위한 자연과 지구인가. 인간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이다. 지구에게 인간은 한낱 미물에 불과하고 우주에서 인간은 티끌만큼의 존재도 아닐지 모른다. '인간을 구하자'가 조금 더 솔직한 문장이다.

  인간은 결국 자연이 만들어 놓은 환경 덕분에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며 스스로의 이익을 챙겨가는 생태계 교란종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모든 생물은 공생 관계를 맺으며 진화해 왔다. 지구 상 가장 많은 개체를 가지고 있는 곤충은 가장 큰 개체를 가지고 있는 식물과 공생하고 있다. 인간도 기생을 그만두고 공생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