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서평) 광개토태왕 담덕 1. 순풍과 역풍 (엄광용) - 새움

야곰야곰+책벌레 2022. 7. 22.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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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훌륭한 왕을 언급하다 보면 세종대왕과 함께 어김없이 나타나는 왕이 있는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다. 이 좁은 땅에 사는 우리에게 광활한 광야를 평정했던 왕의 모습은 우리의 욕구를 채워주기 충분하다. 명장 이순신의 이야기도 충분히 훌륭하나, 때론 위기에서 나라는 구하는 얘기가 아니라 넓은 땅으로 의지를 내달리는 진취성을 보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 장편의 역사 소설은 새움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고구려는 우리의 위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담당하고 있지만 그 영토가 북한과 중국에 닿아 있어 우리나라의 역사 자료는 충분치 못하다. 오히려 북한의 역사학자들의 연구가 훨씬 정확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역사 인용 대부분이 조선에만 닿아 있어 아쉬울 때가 많다. 그런 아쉬움에서 시작된 이 소설은 분명 픽션이겠지만 최대한 역사에 가깝게 담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1권은 고구려 16대 왕(고국원왕, 사유)부터 18대 왕(고국양왕, 이련)까지 등장한다. 아직 신분을 숨기고 있는 해평이 광개토대왕인지는 아직은 알 수 없다. 연약해 보이는 태자 구부가 소수림왕이었다니 책을 리뷰하려고 검색해보다가 조금 놀라기도 했다. 이때 백제는 근초고왕의 시대였던 것 같다. 백제의 기세가 잘 드러나기도 한다. 우유부단하면서도 고집이 있는 대왕 사유와 차분했지만 후손이 없었던 태자 구부. 아직은 어리지만 왕손인 이련. 사실 해평이 역모를 일으키거나 해서 왕권을 잡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고구려 왕의 연대표를 보고 내려두게 되었다. 순리대로 왕이 되는구나.

  하가촌에서 종마장을 운영하며 서역과 교역을 통해 부를 쌓고 있는 하대용과 책성의 수장 하대곤은 1권의 주요 인물이다. 대왕 사유는 태산(백두산)에서의 행사를 겸해서 하대용의 종마장을 방문한다. 이때 아들 이련을 동행하게 하는데 이를 계기로 하대용의 딸 연화와 왕태제 이련은 연분을 쌓을 수 있게 된다. 연화는 하대용의 심복인 추수와 하대곤의 양아들인 해평도 연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상도 여자가 서울 남자의 젠틀함에 끌리듯 그렇게 인연을 만든다.

  하대곤의 집사 두충은 말갈족이었지만 하대곤이 거둔 하대곤의 심복이다. 그는 하대곤을 위해 일하고 괴승 석정을 알아보고 그를 귀히 대한다. 그리고 하대용의 하인 중에 한 명이었던 사기를 거두는데 사기는 백제의 밀사였다.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사기가 두충의 역 밀사(?) 일 가능성도 없지는 않을 것 같았다. 황개에게 곤장을 친 주유의 '고육지책'처럼 두충은 사기에게 당하는 것처럼 해서 사기에게 백제의 신임을 얻게 하려 했다고까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두충이라는 인물이 너무 맘에 들어서 그가 당하는 모습이 괜히 안쓰러워 이런 생각까지도 들었다. 두충은 분명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하대용의 딸 연화의 왕자비. 자신을 죽이고 거상이 되려고 한 두충. 왕의 피를 가진 해평 그리고 그를 거둔 하대곤. 왕의 처가라는 권력을 잡았던 대사자 우신 그의 딸 소진. 결코 가볍게 소비되지 않을 인물들의 앞으로의 사건들이 기대된다. 

  백제가 평양성을 공격해 오고 대왕 사유, 태자 구부 그리고 추수, 해평 그리고 동수 장군의 아들 동관. 모두가 평양을 향하며 1권은 마무리된다.

  역사는 가장 완벽한 서사라는 얘기가 있다. 국사 시간에 지루하게 외우던 왕들의 이름이 이렇게 한 권에 책 속에 들어온다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을 쓰기 위해 고구려에 대해 공부하고 고구려의 왕들이 내달렸을 광야를 보고 온 작가의 노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민심을 거슬러고 하더라도 결국 민심의 바람에 이끌릴 수밖에 없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더라도 그것에 따라 유연하게 살다 보면 꺾이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듯한 내용을 가진 '순풍과 역풍'이었다. 광개토대왕이 등장하기까지 아직 꽤 많은 시간이 남은 듯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고구려라는 이름만으로도 가슴 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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