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소설

고마운 마음 (델핀 드 비강) - 레모

야곰야곰+책벌레 2022. 8. 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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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너무 아름다운 작품을 만나 버린 듯했다. 비판적 사고, 과학적 지식으로 뇌가 굳어 있었을까. 기계처럼 문장을 읽어나가다가 불현듯 글자만 탐독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이 듦 그리고 잃어감을 대하는 모습. 그리고 옆에서 묵묵히 지켜 봐 주는 사람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생각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치밀한 스토리로 읽어내는 책이 아님을 알아채고는 속도를 늦추고 마음을 느끼려고 했지만 사실 쉽지는 않았다. 여유로움이 있고 공감의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 읽어내었을 때 진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세 사람의 마음이 이어지는 그런 미묘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린 시절 아랫층 마쉬카 할머니의 호의를 받았던 마리는 어느새 입장이 바뀌어 보살핌을 나누고 있다. 제롬은 언어를 잃어가는 마쉬카 할머니의 실어증을 늦추는 고민을 하는 헌신적인 인물이다. 마쉬카 할머니는 자신의 언어를 잃어감보다는 제롬과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 더 많은 것 같다.

  상대에 대한 관심, 호의, 돌봄과 같은 다정함은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것일지도 모른다. 2차 세계 대전 때 자신을 돌봐준 부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은 마쉬카 할머니는 다정한 사람이다. 그런 할머니로부터 어린 시절을 견뎌낸 마리 또한 고마움을 잃지 않고 있다. 충실하게 헌신하려 했던 제롬도 자신을 걱정하는 마쉬카 할머니의 태도를 받아들이고 고마워하게 된다.

  나이듦은 잃어가는 것에 대한 익숙함이기도 하고 매일 낮아지는 자신의 최고점에 대한 적응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비참할 것 같은 상황이지만 그것에 큰 동요가 없음은 다정함을 잃고 있지 않는 마쉬카 할머니의 마음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주위 환경은 잃어가는 것을 슬퍼하고 막으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그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듯하기도 했다. 

  악몽에서 나타는 원장의 행동에 '살아가려면 자신의 공간에서 홀로 소소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얘기하는 그녀는 말에서 잃어가는 순간에도 프라이버시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살아가기 위해서 모든 것을 간섭당하는 것은 더 이상 살아있지 않은 것이라는 얘기인지도 모른다. 마리와 제롬 두 사람은 마쉬카 할머니가 하고 싶지 않은 얘기는 하지 않았다.

  완벽이 아닌 허술함은 우리 삶의 숨 쉴 공간인지도 모르겠다.

  문장은 대부분 독백이면서 마쉬카 할머니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다. 인간의 관계는 희미하면서도 문장으로 표현하지 못할 무언가로 이어진 듯하다. 그 속에 자각하지 못한 상대에 대한 감사를 문장으로 드러내고 있다. 인간은 기억과 언어로 자신의 역사를 써나가지만 반대로 언어를 잃어가더라도 왜곡되지 않고 그대로 전달되는 마음, 작가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죽음 뒤에도 마리와 제롬의 마음 한 곳에 남겨진 따스함. 그건 고마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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