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1월 뉴스에서 나오는 심상치 않은 전염병은 2월에 돼가며 항공편이 조정되고 격리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경각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중국으로 출장한 사람들의 복귀 때문에 수많은 전화와 메일을 주고받았고, 내팽개쳐져 있는 듯한 중국 사이트에 다시 사람을 보내야 한다는 굉장한 죄책감으로 시달리던 시절이었다. 그런 급박한 시절을 지나고 어느 순간부터 다시 중국으로의 출장은 일상화되었다. 코로나19보다는 입출국 시 십 수 번에 이르는 PCR 검사와 격리가 귀찮았고 한 달마다 귀국하던 일정이 3달 이상으로 조정되며 귀국의 기쁨을 만끽하는 시간의 텀이 늘어졌을 뿐이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일의 증가와 업무환경의 열악함에서 오는 힘겨움이 더 우선시되는 느낌이었다.
코로나19는 치명률이 높았던 초기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듯 불안한 심리를 전해주었다. 집 밖은 위험한 듯했고, 주문은 인터넷으로 택배 박스에도 열심히 소독제를 뿌리곤 했다. 델타 변이부터는 백신도 맞았거니와 치명율도 많이 낮아져 경각심도 함께 낮아졌다. 그럼에도 마스크와 손 소독을 하지 않는 모습에는 눈살이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원래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그렇게 즐기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삶에 대한 큰 변화는 없었다. 초기의 불안함이 사라진 다음에는 심리적으로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왜 코로나 블루니 레드니 하는지도 공감할 수 없었다. 그저 외부 생활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답답하긴 하겠다 정도로 이해하려고 했다. 쉬는 날이면 어디로 놀러 가야 하는지 애들 체험은 뭘 시켜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서 좋았다. 집에서 나란히 엎드려 책을 보면 몸도 마음도 편하기만 했다.
재택근무 덕분에 굳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좋았다. 단지, 출퇴근의 개념이 없어서 새벽녘까지 일하고 있는 자신을 자주 만났다. 낮에 집에서 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격리 또한 지속적인 미열을 빼면 그렇게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리프레시하듯 매일 잠만 잤다. 내가 힘든 것보다 아이들이 힘든 것이 조금 더 걱정되었지만 아이들은 나보다 훨씬 빠르게 하루 만에 이겨내곤 했다.
코로나19는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이 망가지고 자국 생산이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게다가 멋스러움으로 다가왔던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크게 다를 게 없었고 전 세계는 하나일 수가 없다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지구 공동체를 꿈꾸던 사람들의 생각을 산산이 부서 주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우리가 지금 스페인 독감을 흑사병을 지난날의 슬픈 역사 정도로만 인식하듯 그렇게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주의와 민족주의는 더 강해질지도 모르겠다. 미중 갈등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덕분에 신냉정 체제로 돌입하고 있다. 그 속에서 살아남는 건 또 다른 숙제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인간의 역사에는 바이러스와의 싸움의 역사가 남아 있다. 바이러스는 모든 생물에 흔적을 남겼고, 생물의 진화에도 영향을 분명 미쳤을 것이다. 앞으로도 바이러스의 변화와 인간의 대응은 계속될 것이다. 그것이 속도전이 되었을 때 인간이 받는 피로감은 상당할 것 같다.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에 대해 속도전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질병을 극복해서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새로운 질병과의 만남이라는 어느 과학자의 말을 인용해 보면 우리는 끝나지 않는 싸움 앞에 놓여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질병 사태도 종식되겠지만, 언젠가는 그저 그런 질병이었다고 얘기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질병과 마주치고 싶진 않지만 꼭 만날 것 같은 불안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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