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 경제학의 시초가 되는 대니얼 카너먼의 첫 교양서라는 점에 책장을 넘기 전부터 기대를 가졌다. 그동안 이성적인 인간을 토대로 만들어낸 이론적인 경제학을 흔들어 놓은 심리학자적 경제학이다. 현실은 이론 위에 올려진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오죽했으면 지금의 경제학은 19세기의 의학 수준이다라는 평을 들었을까. 세계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의 이야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인간이 생각보다 이성적이지 않고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세상이 환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다지 특별한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고 합리적일 수 있도록 노력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깨어있기를 반복해야 한다. 철학자는 수련자나 가능할까 싶다.
인간에게는 두 개의 시스템이 있다. 간단하게 시스템 1과 2라고 해보자. 시스템 1은 저절로 빠르게 작동하며, 노력이 거의 또는 전혀 필요치 않은 자발적 통제를 모른다. 시스템 2는 복잡한 계산을 비롯해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주목한다. 우리는 자신을 시스템 2와 동일시한다. 시스템 2는 스스로를 사고와 활동의 주인공이라고 믿지만 끊임없이 작동하는 시스템 1이야 말로 주목해야 할 요소다.
시스템 1은 자율성을 가졌다. 생존을 위한 빠른 판단을 위해 만들어진 시스템은 속도를 위해 진화하였다. 위험의 상황에서 최대한 빠르게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즉각 반응하는 것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은 불안감은 직감이라는 용어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 화재가 난 건물에서 갑자기 철수 명령을 내려 소방관을 구한 리더의 이야기나 대국 중에 경기의 우위를 느끼는 것 또한 이런 직감에 해당한다. 엄청난 수련을 한 많은 기술들은 의식하지 않고도 해낼 수 있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특히 몰입이라는 것은 시스템 1의 최대한 장점이 아닐까 싶다.
이런 장점을 뒤로하면 시스템 1은 합리성을 가지려는 인간에게 대단한 방해꾼이 된다. 어림짐작을 하거나 편견, 속단, 착각 등을 만들어 낸다. 보이는 것에 강하게 반응하고 자극의 크기에 민감하다. 뚜렷한 것에 끌리고 잘 생각나는 것을 사실이라고 착각한다. 원래의 상태를 바꾸는 것을 싫어한다.
시스템 2가 바로 잡아줘야 하지만 시스템 2는 놀랍도록 게으르다.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은 이 사실을 단편적으로 만든다. 시스템 2는 시스템 1의 충동에 쉽게 넘어가며 때로는 자신의 결정을 합리적이라고까지 믿는다. 무언가를 억지로 했다면 다음 작업에서 자기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줄어든다. 이것을 '자아 고갈'이라고 한다. 몽롱할 때 지름신이 내리는 것은 '자기 통제'를 귀찮아하는 시스템 2의 특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능이라는 것은 기억과 논리적 사고력이 전부가 아니다. 게으른 시스템 2를 얼마나 채찍질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문제를 해결할 때 연관된 대상을 기억에서 찾아내야 하는데 게으른 시스템 2는 대충 찾아서 그것이 맞다고 자기 담에 만족해 버린다. 의도적으로 시스템 2를 계속해서 독촉해야 한다. 아무리 배운 게 많고 유수한 대학을 졸업을 하더라도 얼토당토않은 의견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시스템 2의 게으름에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다. 집중력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라면 주의력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내는 능력이다. 주의력이 높은 아이들은 높은 지능을 보이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스템 1의 놀라운 에너지 효율과 끊임없는 간섭은 여러 가지 효과를 나타낸다. 한번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생각을 확장하는 점화 효과라던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나 더 선명하게 기억하는 과거를 사실이라고 착각하는 기억 착각 와 진실 착각이 있다.
시스템 2의 게으름은 시스템 1에게 자주 영향을 받는데 통계의 허점을 인식하지 않고 사실로 인정하는 소수 법칙이라던지 기준점에 따라 다른 가중치를 다르게 부과한다는 것이든지 기억해내기 편리한 사실을 진실로 인정한다든지 특수한 경우를 특별한 경우로 착각하는 것 또한 그렇다. 시스템 2의 게으름은 속단하기를 좋아한다. 인지의 편안함을 추구한다. 어려운 문제를 단순화해서 생각하고 결정한다.
세상에 희귀한 일도 미디어에서 연일 보도하면 엄청 많이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페라나 영화를 보고 좋고 나쁘고를 결정하는 것은 엔딩에서 느끼는 감정과 클라이맥스의 흥분이다. 기억에 남을만한 것들로만 평가된다. 기억은 생각보다 편협할 수도 누군가에 의해서 편집될 수도 있다. 인간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더 잘 기억하는데 이것은 생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엄청 맛나게 먹었던 음식에 마지막에 남겨진 머리카락으로 그 음식은 쓰레기가 되고 바퀴벌레 한 마리는 100개의 체리에 영향을 주어도 100마리의 바퀴벌레 속의 체리는 아무 영향을 줄 수 없다.
이 책에는 너무 방대한 내용이 적혀 있고 하나하나 너무 흥미롭고 중요한 내용이라 축약해서 적는다는 것이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셀 수 없는 경우의 수를 계산해서 최적을 찾아내는 AI들과 다르게 인간은 즉각 반응을 할 수 있다. 이것은 입력된 정보를 즉각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 1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 들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끊임없이 나락에 떨어지는 사람도 끝없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는 사람의 메커니즘도 알 수 있었다.
이런 인간의 비합리성은 경제를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는 왜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지도 얼핏 알 것 같다. 얻는 것보다 뺏기는 것에 더 민감한 소유 효과를 가지는 인간의 심리가 진화의 흔적일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자신은 언제나 틀릴 수 있고, 언제나 직관적으로 바라보고 깨우쳐야 한다는 철학적인 물음에 대한 과학적인 증명을 해 놓은 듯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보다 타자를 바라보는 눈이 더 객관적이고 정확한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합리적이지 못한 것이지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다소 모호한 문장으로 위로하고 있지만 비합리적이라도 그렇게 당황스럽지는 않다 (학자들에게는 멘붕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부족한 인간이고 잘못된 생각과 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깨어 있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세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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