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서평+독후감)/심리학

(서평)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브루스 D. 페리, 오프라 윈프리) - 부키

야곰야곰+책벌레 2022. 4. 2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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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원주의는 인류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해석하기 힘든 대자연의 법칙을 하나씩 쪼개어 그 원리를 알아가는 노력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개별적은 부분에서 많은 진전을 보였으며, 지금과 같은 문명의 혜택을 누리게 해 주었다. 최근에는 이런 환원주의에 대한 회의적인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개별적으로 동작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확신은 전체가 조화롭게 움직이는 메커니즘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다시 개별적 사안들은 더 비약적인 발전을 위해서 통합이 필요했고 물리학에서는 '통일장 이론'에 도전하고 있고 다른 많은 학문들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 더는 '통섭'을 추구하고 있다.

  인간의 질병은 원초적인 뇌에 뿌리내린 트라우마에 기인할 수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얘기하는 이 책은 부키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나 평소와 사뭇 다른 결과나 행동을 보였을 때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가요'라고 묻는다. 증상에 대해서 일차원적으로 접근하고 그 증상을 없애려고만 노력한다. 그런 와중에 원인이 알 수 없는 질병이 많아지고 우리는 흔히 '신경성이네요' 라던지 '자율 신경계가 조금 무너졌네요' 등의 아리송한 답변을 받은 채 병원 문을 나서는 일이 많다. 서양 의학이 치료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대안책으로 '한의학'이 급부상하기도 하고 명상처럼 마음치유에 대한 관심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들이 바로 문제를 대한 자세다. '무엇이 문제인가요?'가 아니라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가요?' 라며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더 집중해야지 그 질병에 집중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학습되어 원초적인 뇌에 각인되는 많은 스트레스들은 우리가 판단에 필요한 뇌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ADHD를 포함한 많은 정신적 과민 반응은 결국 PSDT(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귀결시킬 수 있다. 원초적 뇌에 학습된 행동은 본능처럼 동작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증상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 자체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회복 탄력성'이라는 말을 우리는 자주 얘기한다. 스트레스를 받은 후 다시 원래의 상태를 돌아오는 능력을 말한다. 이것이 높으려면 긍정적인 관계와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많이 받아야 한다. 뇌가 성장하는 유아기 때에 부모와의 유대감은 그래서 중요하다. 인간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심박수 등의 여러 상호작용으로 뇌를 학습시켜나가기 시작한다. 언어를 배우기 전까지의 학습은 대부분 원초적인 뇌에 학습된다. 세 살 이전의 아이에게 훈육을 금지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육아 환경은 어떤가?

  일터로 향하는 부모, 혹은 한 가정 부모,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는 없다. 유대를 형성해야 하는 사람의 부재뿐만 아니라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자칫 짜증의 관계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출산 후 아이를 기르는 모든 사람에게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것은 상처받지 않은 아이들이 많아지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아이 한 명을 키우려면 동네 하나가 필요하다고 했다. 5인 가족이 60%가 넘었던 70년대를 지나 지금은 2인 가족이 60%가 넘는다. 가족 속에서 태어나는 아이가 유대감을 가지고 관계를 맺을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뿐 아니라 육아를 대신하는 사람의 잦은 변화는 더 심각하다. 인간이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충분한 상호교류가 필요한데, 마음을 열만 하면 그 상대가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영어 좀 배우다, 중국어 좀 배우다, 일본어 좀 배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어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게 되는 것이다.

  결국 '회복 탄력성'이 높은 사람이 되려면, 믿을만한 공동체 안에 존재해야 한다. 대가족 혹은 무리 짓고 살았던 부족사회에서는 그것이 충분해서 마음의 치유가 충분했다. 마오리족 등과 같이 고대의 치유법은 대상을 무리에 깊숙이 데려와 함께 마음을 나누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관계의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점점 더 핵가족화되고 일방적인 소통법은 SNS들로는 이런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 인간은 더 외로워지고 더 난폭하지고 더 아픈 사람이 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충분히 신뢰할만하다고 판단된 사람이 아니라면 그가 믿을 만한지 끊임없이 관찰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사람 많은 놀이공원이나 거리를 다니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생각 이상으로 피곤한 것이 이 때문이다. 우리의 뇌는 함께 무리 지어 사냥하는 100명 남짓의 인원 정도까지가 한계다. 그를 넘어서면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학은 인간이 사회적으로 진화하거나 발전하는 소리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때문에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환경 속에 놓이기 된다. 그 속에서 ADHD나 사이코패스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회사에서 심하게 깨져 좌절이 온몸을 감쌀 때, 동료나 친구들 5명 정도 하고만 얘기를 하다 보면 괜찮아지기도 한다. '회복 탄력성'은 이런 신뢰가 있는 관계 속에 있다. 특히 유아기의 아이들에게 좋은 관계를 알려주기 위해서는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은 충분히 설득력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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