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다 원치 않게 그어진 기억의 상흔들. 그 아픔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심리적 힘듬을 겪는 것을 보통의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보통 마음의 상처라고 불리는 이것은 개인의 자존감을 떨어트리며 부정적 피드백을 되풀이하게 만든다. 점점 더 깊은 심연의 영역으로 자신을 몰아넣는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증상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데, 트라우마는 이것보다 더 넓은 영역에 걸쳐 있다.
트라우마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사회가 트라우마에 대해 너무 일차원적으로 대응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세심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 책은 심심 출판사의 지원으로 읽어볼 수 있었다.
나는 아들러 심리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의 아픔으로 인해 현재가 계속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숙명적인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과거를 인정하고 최대한 버텨내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아들러 심리학은 현재의 나의 심리를 정당화 혹은 보호하기 위해서 과거의 기억을 맞게 가져다 쓴다는 논리이기 때문에 과거의 아픔을 이겨내는 것은 현재의 문제라서 능동적으로 이겨낼 수 있다.
둘 사이에는 정의가 다른 것일 뿐 당사자의 어려움과 영향에 대해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트라우마는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정의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해해 두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다. 이 책에서 트라우마는 개인적인 문제이면서도 사회적인 문제이다. 사회가 개인의 트라우마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개인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고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기피하고 조롱하는 문화는 개인을 움츠러들게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것은 개인이 아닌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글쓴이의 주된 주장이었다.
트라우마를 '오염'과 '기생충'으로 표현하는 부분이 독특했다. 맑은 물에 잉크를 떨어트리듯 상처가 생기면 잉크가 물에 퍼져서 다시 투명해지더라도 그 전의 물만큼 맑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상처는 겉으로 표현되지 않을 뿐 없앨 수 없다는 것이다. 기생충은 숙주에서 끊임없이 번식을 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다시 부정적인 생각을 낳는다. 점점 심해지면 모든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자기부정'의 상태에 이르게 된다.
트라우마는 폭력이나 성폭행, 따돌림 혹은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나 가까운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 등의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생길 수 있다. 인간의 위험에 대한 본능은 좋은 기억보다 위협의 기억을 더 잘 기억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기억은 몸속에 자리 잡게 된다. 수많은 전쟁과 학대, 학살 등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DNA에 새겨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레이디 가가의 추천 문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사실 개인적인 심리를 보듬는 힐링 도서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라우마 전반을 다루고 트라우마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반대로 사회가 트라우마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서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다. 심리학이면서 사회학적인 요소가 순간순간 나타났다. 독특하고 긴 사례들은 새로운 경험담을 들을 수 있어 좋았지만 방법과 대책에 대해서는 그렇게 세심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 책은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그런 방법론적인 심리학 책이라기보다는 트라우마의 전반적인 이해와 영향에 대해 저술한 책이었다. 생각과 다른 조금 광범위한 내용이라 읽으면서도 정리가 잘 안 되어 집중을 잘 못했던 것 같다. 대화 형식을 빌리고 싶었다는 저자의 생각과는 달리 많은 사례는 생각보다 트라우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돕는 것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트라우마가 어떤 방향으로 어떤 형식을 띠면서 나타날 수 있는지 광범위한 예를 보여줬기 때문에 트라우마가 우리 사회에 생각보다 만연하다는 것은 공감할 수 있었다.
아들러 심리학에 심취한 나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잘 읽히지는 않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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