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기 전, 4번 정도의 이사를 했던 것 같다. 대부분 동네에서 동네로 이동하는 수준이었고 단 한 번만 지역을 옮겼다. 적지 않은 횟수지만 그렇게 기억날만한 이사의 기억은 없다. 시골이었기도 했고 전세나 월세의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집의 안정감은 나에게 굉장히 소중한 기억이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고 나서도 첫 번째 목표는 언제나 집이었다.
노는 것을 딱히 즐기지 않는 성격이라 취미로 했던 사진에 대한 지출 이외에는 크게 없었던 것 같다. 외모에도 크게 취미가 없었다. 연애에 대한 생각도 크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저 기술에 대한 욕심과 전자기기에 대한 욕심 두 가지뿐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께서 매달 부어주시는 적금 이외에도 추가적인 수입이나 남는 돈은 주식을 샀던 것 같다. 그때 샀던 삼성전자 주식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대박 났을 텐데.. 결혼과 함께 모든 자산을 털어서 집을 구했다. 지방의 집은 5-6년 회사 생활로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집에서 출퇴근을 하다가 판교로 옮겨왔다. 원래 부서의 업무의 악랄함이 점점 더해갔다. 탈출구가 필요했기도 했다. 좀처럼 늘지 않는 관리 기술은 접고 원래의 기술을 더 발전시키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술자는 퇴사를 하더라도 프리랜서가 가능하니까. 미래를 위해서도 그것이 더 나았던 것 같다. 마침 아는 분이 판교로 당겨주시는 덕분에 지금의 위치에서 업무를 하고 있다. 책도 아주 듬뿍 읽으면서.. 그래도 두고 온 팀원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판교에 오니 집 값이 어마 무시하다. 기숙사는 6개월 제공이 기본 수칙이었지만 어떻게 해서 1년을 더 살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판교로 온지도 1년 반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그날이 왔다. 기숙사 제공이 안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지내니 전세 계약 날짜를 기다리는 세입자들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그래도 나는 홀몸에 짐도 얼마 없지만, 그들은 참 큰일이 아닐까 싶었다. 부동산 정책에 분노하는 서민들의 마음은 한 마음일지도. 일터는 모두 수도권에 있는데, 수도권의 집값이 만만찮다.
지방에 일자리가 많아지면 자연스레 인구가 분산되고 그러면 집값도 안정이 될 테고, 교통체증도 없어질 텐데 계속 수도권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정책입안자는 자신의 인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 긴 숨으로 정치를 하지 않다는 얘기는 진실이기도 하다. 하긴 국민이 그 긴 시간을 이해하고 기다릴 수 있을지 의문이기도 하다. 재택근무가 점점 많아지면 지방에 살다 한 번씩 상경하는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산업 생태계의 변화에 기대를 거는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잠시 너무 거시적인 안목으로 세상을 봤지만 한 달 남짓 남은 기숙사가 걱정이다. 연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문의를 해뒀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지방으로 발령을 내주라고 해봐야겠다. 집에서 다니는 생활로 복귀는 여러모로 좋기는 한데, 회사에서 이해해 줄지는 잘 모르겠다.
집 때문에 이사 때문에 고민이 많은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공감 그리고 응원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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