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다닐 때에 인라인은 한참 붐이 일었다. 동네마다 인라인 동호회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공원에는 인라인 트랙도 만들어졌다. 강의를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는 형이 가져온 FILA 인라인을 돌려 신어가며 인라인을 즐겼다. 한참 재미를 붙이니 아무래도 인라인을 장만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롤러블레이드의 에어로 9를 샀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다 같이 인라인을 즐기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라이딩만 하는 것을 거부했던 우리는 슬라럼이라는 것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슬라럼은 콘을 세워두고 그 사이를 지나가며 여러 가지 기술을 구사하는 인라인 종목 중에 하나다. 피시, 스네이크, 크로스, 백크로스를 지나서 여러 가지 기술들을 익혔다. 슬라럼의 꽃이라는 '크레이지'를 완벽하게 익히지 못한 채 우리는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인라인에 미쳐있다시피 하던 시절이라 에어로 9는 금방 헤져버렸고 그 당시 플래그쉽 중에 하나인 살로몬의 크로스맥스 3을 구매했다. '크맥 3'으로 불리던 녀석은 20년이 다돼가는 지금도 나와 함께 하고 있다.
회사에 입사한 뒤에 같은 동네에 살게 된 형이 있었는데 사진 동호회 회장이라 자연스레 같이 다니게 되었다. 그 형도 인라인이 취미였는데 나와는 다른 종목인 어그레시브를 하고 있었다. 어그레시브는 계단 타기, 벽 타기, 점프와 같은 아크로바틱 같은 동작이 많다. 저녁에 인라인을 들쳐 매고 파주 영어마을을 누비곤 했다. 사진도 찍고 인라인도 타고 그런 날들을 보냈다.
결혼을 하고 딱히 인라인을 즐길 일은 많이 없었다. 회사 일도 바빴고 같이 즐길 사람도 없었다. 딸아이가 자라 6살이 되던 해에 생일 선물로 인라인을 선물했다. 그저 인라인을 신기고 직접 안아서 굴려줬다. 아이는 신문물에 재밌어했고 한 살 한 살 늘어가며 인라인 실력도 늘었다.
둘째는 이미 인라인을 타고 있는 누나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인라인이라는 것이 익숙했다. 킥보드를 태우고 뒤에서 밀어주면 그렇게 즐거운 놀이기구가 없다. 그래서 인라인은 놀이기구와 같았다. 딸아이가 체격이 작아서 동네에서 놀러 나오신 아주머니들은 늘 "몇 살인데 벌써 인라인을 타요?"라고 묻곤 했다. 그리고 직접 타는 것이 아니라 늘 안아주고 끌어주고 했기 때문에 재미나게 탈 수 있었던 것 같다.
둘째도 자라서 이제 인라인을 함께 탄다. 처음 인라인을 가진 날 얼마나 좋아하던지, 지금은 누나보다 더 진심으로 탄다. 아빠가 하는 기술을 따라 하려고 안달이다. 그래서 멀지만 조금 더 좋은 곳으로 간다. 우레탄으로 바닥을 깔아놓은 인라인 전용 구장이 있는 공원에 간다. 이제는 많이 자라서 둘이서도 잘 놀지만 그래도 술래잡기해주는 걸 좋아한다.
나의 '크맥 3'은 이제 군데군데 깨지 있다. 세월의 흔적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잘 구르지 않아도 충분히 빠르게 달릴 수 있고 아이들과 타기에는 여전히 현역이다. 그리고 같은 등급의 새 인라인은 너무 비싸기도 하다! 이제는 살도 많이 붙어서 옛날만큼 잘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는 잘 타는 아빠라서 다행이다. 지금은 인라인이 그렇게 인기가 많은 종목이 아니라서 여전히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게 다행스럽기도 하다. 겨우 초급 지나가 중급 초입에서 그만두었는데도 말이다.
최근에도 주말이면 인라인 타러 가자고 한다. 나에게는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일이라 즐겁게 놀다 온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같이 놀아줄 때 같이 놀아야겠다. 더 크면 안 놀아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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