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해 코로나가 덮친 세상에서 우리는 소위 선진국들의 민낯을 보게 되었고 더불어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온기가 제법 남아 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전염병 최전선으로 뛰어간 의료진들과 팔지 못할 것 같은 음식을 미리 만들어 기부하는 사람들. 임대료를 받지 않는 사람들. 좋은 일을 한 가게를 일명 돈줄 내는 사람들. 한 번 시작되는 선행은 또 다른 선행을 불러일으키며 우리 스스로를 위안했다.
모든 선행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것을 내어놓고 상대의 행복을 빌어주는 이런 행위를 크고 작음으로 따질 수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자신이 수월하게 할 수 있는 수준의 선행이라면 작은 선행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단일 종인 <호모 사피엔스>가 나약한 신체 조건으로 지구의 지배 종이 된 것은 집단을 이루었기 때문이고 상대방이 상상하는 것을 내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인류는 진화를 멈춘 채 상호 간의 네트워크를 발전시킴으로써 집단의 진화를 이루고 있다.
나눌 상대가 없다면 공동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홀로 있는 것보다 무리 속에 있는 것에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 사이에도 진화의 크기가 다를 것이라며 계급론과 노예제도 같은 것들이 존재하고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이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은 과학이 증명해주고 있으며,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다른 인간의 도움 없이 홀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동체를 결속시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밑바닥에 존재하는 것은 신뢰다. 신뢰의 바탕에는 내 것을 스스럼없이 내어주는 상대가 필요하다.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함으로써 상대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 착하다는 말이 사회나 공동체의 규범이나 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런 내어주는 행위는 <선행>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지위를 돋보기 위해서 자신의 것들을 내어 놓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의 마음을 인위적으로 얻기 위해 금전을 뿌리는 행위도 있다. 이것은 선행일까.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행위 그 자체로는 선행이 될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한 결과를 자신의 안위나 반사회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선행일 수 없을 것이다. 기부하면서도 욕먹는 것이 이런 경우가 아닐까 한다.
선행 그 자체는 사회를 결속하고 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작던 크던 그것은 중요한 것이고 사회가 더 좋아질지는 모르겠지만 더 나빠지지는 않게 붙들어 줄 것이다. 선행을 나누는 사람은 다른 선행을 나누는 사람들과의 교감이 필요할 수 있다. 앞에서 얘기했듯 선행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우리의 행동은 조금 더 수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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